5화. 양파에서 죽음으로

 

     2021년의 5월이 시작되었다. 벚꽃은 진작에 져버렸지만 대신에 형형색색 봄꽃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산책하다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일교차가 심하진 않지만 해가 지면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해 국물이 있는 저녁을 차리게 된다오늘은 저녁으로 계란국을 끓였다. 양파 껍질, 말린 표고버섯과 대파 흰 부분을 넣고 육수를 내서 잘 풀어놓은 달걀과 가지런히 썰어 놓은 양파 반 개를 넣고 간은 심심하게 끓여 몸을 따뜻하게 덥혔다. 먹어갈 때쯤 국그릇에 양파 몇 조각이 남아있었는데 그걸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양파보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인가? 살려는 의지가 있는가? 생명의 힘이라는 게 나에게 있는가?’

    비가 오는 날에도 나갈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풀을 보고 하늘도 쳐다보다가 처음 보는 새가 앉아있으면 관찰하기도 하고 지나가는 강아지에게 희미하게 눈인사를 보내기도 한다. 하루 24시간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10분이라도 두려고 하는 편이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하는 게 일상이 된 이후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 그것이 결국엔 인간의 잘못이기 때문인 건, 자연은 잘 살아가는데 인간은 왜 그렇지 못한 건지 무척이나 자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은 물론 식물이란 존재에 대해서도 골몰하여 생각하게 되었고, 초록으로 무성해지는 바깥 풍경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식물이 땅을 기반하여 살아가는 힘, 생명력이라는 게 정말 대단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멘트 바닥 갈라진 틈에서도 풀이 자라고 돌담 사이에서도 꽃이 핀다. 딱히 거름을 주지 않고 내리는 비에만 적셔져도 식물은 기어이 자란다. 처음 가본 인도 카레 음식점에서 25주년 기념으로 받은 이름 모를 화분은 베란다에서 몇 개월간 방치되었음에도 계속해서 초록색을 유지하였고, 그것을 보며 나는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물을 주기 시작하자 잎이 무성해졌고 그 뒤로 1년 반을 더 살아주었다.

    식물이 자라는 걸 보면 계속해서 살아가겠다는 생명 의지가 느껴진다. 씨가 발아하고 흙을 뚫고 나오고, 비와 바람에 맨몸으로 존재하며 어제와 오늘의 모습이 미세하, 그러나 철저하게 다르다. 자연의 삶에 비교하자면 인간의 삶이란 살아가는 데 참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잘 먹고 잘 자야 하고 몸도 챙기면서 정신도 챙겨야 한다. 돈을 벌면서 써야 하고 오늘을 살면서 내일도 걱정해야 한다. 혼자 살고 싶지만 그럴 수는 없고 진짜 살기 싫다고 울다가도 울음이 멈추면 허기가 진다. 살아감과 동시에 죽어가고 죽어감과 동시에 살아간다. 멀리서 보면 단순해 보이는데 가까이서 보면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나의 문제까지 생각하게 되었는데, 말로는 죽고 싶다 되뇌지만 생명력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골몰하면서, 움직임이 없는 양파와 나의 의지를 비교하는 걸 보니 나는 아직 살고 싶은가 보다 싶었다. 밥을 먹다 양파를 보고 이런 사고까지 하게 되는 게 다른 사람이 보기에 조금 이상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의 어려움과 위대함은 오늘의 밥상만이 아니라 내 주변 곳곳에 존재한다.

어느 날은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늘 그 자리에 있는 물건들의 어제와 같은 모습을 유지하는 힘

     만들어진 제품을 보면 플라스틱과 같은 원재료에 의해 늘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지만 가끔은, 생명이 없는 물체인데도 마치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이니 주변의 상황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아 제 모습을 유지할 수 있는 거겠지만 어찌되었든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는 게 어쩌면 나 자신보다 대단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이 크고 작은 병으로 수술을 하고 통원을 하고 있다. 죽음은 가까우면서 먼 곳에 있고 먼 곳에 있으면서 가까운 곳에 있는 참 오묘한 존재다. 희안한 말처럼 들리겠지만 죽음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주변은 물론 세상 곳곳에서 어느 때라 할 것 없이 늘상 일어나는 일이라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이. 죽음을 떠올리면 당황스러워질 때도 있다. 늘 내 몸에 붙어 있었을 텐데도 어느 날 갑자기, 여기에 점이 있었네?” 하고 처음 발견했을 때처럼, 하루 종일 사람을 만나고 집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섰다가 이마 가운데에 뭐가 묻어 있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처럼 당황스럽다. 이렇듯 감각과 느낌으로만 존재하는 모호한 대상이 바로 죽음이다. 하나 확실하게 단언할 수 있는 건 아직은 죽음을 직면하는 일이 무섭다는 사실이다.
    죽는 게 무서운 건 어떤 이유에서일까. 이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걸까? 끝이라는 게 무엇인데? 더 이상 무엇을 할 수 없는 상태를 이르는가? 아니면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만나지 못한다는 의미인가? 그 끝을 모르기에 단지 그러한 무지에서 오는 두려움이 큰 것일까? 모르는 것은 왜 무서울까. 모르는데도 무섭지 않은 사람도 있을까? 이상하게도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게 될 때면 말이 잘 나오지 않는다. 지금도 갑자기 글이 쓰이지 않는다. 나는 죽음을 정말 모른다.

    양파를 보 어쩌다 죽음까지 생각하게 된 오늘이지만, 오늘의 작은 결론이라 할 만한 것은 식물은 대단하고 나는 죽음을 모른다는 것이다. 무책임하고 불친절한 글이 될 걸 알면서도 더 이상 쓰지 못하겠다. 오늘의 작은 결론, 식물은 대단하고 나는 죽음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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