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하루 by 류영숙

 

 

    새벽 640분 겨울에는 아직도 어두운 이른 아, 오늘도 새벽길을 달려 손, 손자가 기다리는 딸네 집으로 향한다.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는 방학이라지만 요즘의 교사는 방학 때 더 바쁘다. 연수에 출장에 기타 등등. 그러다 보니 애들 아침밥 챙기는 것부터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내 차지일 때가 많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있는 식자재를 조합해 창의적인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작은 손자 녀석은 숟가락을 잡지도 않는다. 떠먹여야 겨우 입을 벌린다. 어린이집에서나 또 지 에미랑 먹을 땐 잘도 떠먹는다는데 할미는 만만해서 그런가 아니면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가. 손녀 손자 아침밥 먹는 동안에도 또 점심엔 무얼 먹이지? 하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나의 숙제다. 애들 식사 챙기고 먹이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다.
    겨우 아침상을 물리면 이제 손녀, 손자 둘이서는 머리를 맞대고 그림도 그리고, 여러 가지 교구로 꾸미기, 만들기, 참 재미있게도 놀고 있다. 그러기도 잠, 무슨 심사가 틀어졌는지 드디어 1차 전쟁이 시작된다. 서로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참 냉정하기도 하다. 손녀는 너랑 다시는 놀아주지 않을 거야!”라며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손자 녀석은 그 말은 취소해야 한다고 하며 누나 방문 앞에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다.
    이럴 땐 절대 할미가 개입해도 해결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야 누나가 슬쩍 방문을 열어 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속닥속닥 소곤소곤 어쩌면 저리도 정다울까.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어린이집도 못 가고 바깥 놀이도 못해서 손자 녀석 좋아하는 축구학원도 수영장도 모두 쉬고 거의 집안에서만 지내다 보니 더 언쟁이 심하다. 때론 육탄전도 마다하지 않는다. 에미는 낮에 애들이 무료할까 , 또 내가 힘들까 봐 저희끼리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교구나 학습놀이 자료들을 잔뜩 사 준다.
    오늘은 손녀 손자 둘이서 풍선 배구 놀이를 한다. 누나는 지는 걸 못 참아 1점이라도 뺏기면 그만하겠다며 또 자기 방으로 팽하니 들어가 버린다. 작은 녀석은 요리조리 규칙을 자기한테 유리한 대로 계속 바꾼다. 그러면 또 2차 전쟁이 벌어진다. 그럼 누나는 또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이번엔 내가 나설 차례다.
    “현성이 할머니랑 할래?”
    그러면 입이 헤벌쭉.

    특히 공놀이를 좋아하는 활동적인 손자 녀석은 지난봄까지는 할미랑 간간히 축구 야구 놀이도 하곤 했는데 요즘은 할머니랑은 재미가 없어서 안 하겠다네. 사실 나도 그 녀석이랑 그 격한 놀이하느라 힘에 부쳤는데 잘됐지 뭐야.
    풍선 배구는 그나마 상대해줄 만한 놀이다. 할미랑 동생이 하는 게 재미있어 보였는지 손녀는 슬그머니 방에서 나와 끼어든다. 그럭저럭 1, 2, 3차전까지 겪다 보면 하루해가 다 간다.
    이제 제발 딸이 제시간에만 퇴근해 오면 좋겠다. 나도 얼른 내 집으로 돌아가 내 시간을 갖고 쉬고 싶다.
    카톡.
    웬걸 조금만 더 일하고 갈게요 저녁 드시고 계세요 얼른 갈게요라고 쓰여 있. 에라잇! 그래도 어쩌랴 태어나자마자 돌봐온 사랑스러운 손녀 손자인데, 그리고 내 딸인데.
    지금 내 딸 아들 키워 준 그 옛날 나의 엄마도 그러셨을 것 같다. 나는 그때 애를 둘이나 낳고도 철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것 같다. 엄마는 원래 그렇게 하는 사람인 줄 알았으니까. 내가 이제 소위 황혼 육아를 직접 해보니 아 그때 엄마도 이런 마음이셨겠구, 하고 죄송한 마음이 든다.
    얼마 전 꿈속에 그립고 그립던 엄마가 오셨다. 엄마를 생각하며 눈물이 그렁그렁했나보다. 손자가 묻는다.
    “할머니 왜 우세요?”
    “? 엄마가 보고 싶어서
    “나중에 엄마 오시면 보면 되잖아요.”
    하면서 주먹으로 눈물을 닦아준다.

    아, 니 엄마가 아니고 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아름다운 황혼의 붉은 시간 _ by 정수

 

    “나도 손주 있으면 애도 봐주고 엄청 예뻐해줄 건데.”  
    “엄마 애들 안 좋아하잖아. 엄마는 그런 성격 아닌데?”
    “……완전 아가야는 별로 안 좋아해도 말 조금씩 하는 애들은 너무 귀엽더라.”
    “거봐라. 우리 가족은 애들 별로 안 좋아한다.”
    “다들 맨날 손주 자랑하고 나도 자랑하고 싶다.”
    “자랑하고 싶으면 엄마 자식 자랑이나 해라~”

    엄마는 내게 직접적으로 아이를 낳으라고 말하진 않지만 주변에서 손주 자랑하는 걸 부러워한다. 하지만 손주가 귀엽다는 만큼 황혼 육아로 힘들어하는 소리도 많이 듣는 것 같다.
    엄마의 동생 숙이 이모의 하루는 대부분 손주들과 함께이다. 나는 본 적이 없는 조카들이지만 분명 아주 귀엽고 예쁠 것이. 하지만 예쁘고 소중하다고 아이들을 돌보는 게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친척들과 거의 교류가 없지만 아주 어릴 때는 방학 때 외할머니가 계신 숙이 이모댁에 가끔 가곤 했다. 숙이 이모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촌들이 있었다. 바쁜 이모를 대신해 외할머니가 사촌들을 많이 돌봤다고 한다. 그러니까 외할머니도 지금의 이모처럼 황혼 육아를 하신 거다. 비슷한 상황의 반복이 조금 재밌기도 하, 한참 오래전 일인데 변한 게 전혀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선생님이라는 직업 때문인지 나는 숙이 이모를 조금 무서워했다. 이모는 엄마 형제 중에 가장 공부를 많이 했고 제일 예뻤다고 한다. 엄마도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기회를 놓쳤고, 그 이후로 선생님이 된 이모를 부러워했던 거 같은데 이모의 자식들도 공부를 잘하고 예뻐서 내가 괜히 위축되고 열등감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작, 오랜만에 만난 이모는 여전히 멋지고 똑똑하고 내가 어릴 적 봐왔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렇지만 무섭지는 않았다. 엄격한 선생님으로만 남아 있던 이모가 아니라 그저 엄마의 다정한 동생이자 절친한 친구였다.

    황혼. 해질녘 황혼은 정말 아름답다. 경험이 쌓이고 쌓여 이제 무르익은 시간 위에 접어든, 노년기의 아름다움 황혼이라 이름 붙이는 건 참 그럴 듯하. 단순히 해가 지고 인생의 한창이던 시절이 끝났다고 해서 황혼이라 하는 건 아닐 것이다. 황혼에 물든 그 시간은 저녁의 시작이기도 하다. 나에게 이모는 여전히 재주 많고 똑똑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직도 많은 것 같은, 어느새 조카들의 할머니가 되어 육아가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삶은 변함없이 계속되는데 노년의 삶은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치부되고, 세상을 이끌어 갈 젊은 세대의 아이들을 돌보는 게 그나마 가치 있는 삶인 것처럼 돼버렸다. 그렇게 아름다운 황혼을 누릴 새도 없이 이제 시작될 저녁이 삭제돼버리는 것만 같다.

    왜 외할머니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이는 걸까. 사회에서 황혼 육아라는 말을 만들며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것도, 보완책도 없다.
    일단 가장 먼저 부부간에 제대로 된 육아 분담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모의 이야기 속에 사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가사, 육아 분담의 비율이 전보다야 나아지고 있다지만 여전히 육아는 여성의 몫인 것이다. 그 부분이 해결된다면 황혼 육아, 저출산 문제 등 아마 많은 문제들도 해결의 출발 위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모는 손주들을 돌보면서도 우리 엄마가 아플 때 달려와 챙겨주고 의지가 되어준다. 여유가 있을 때는 친구들과 여행도 가고 꽃놀이도 간다. 요즘 부쩍이나 의욕 없는 내 삶을 돌아보, 긍정적인 자세와 정신력으로 부당한 세상을 굳세게 살아 왔을 윗세대 여성들의 삶에 대해 새삼 경외감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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