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위한 노래
- 녹아내리는 프랑스 시: 시간결정
- 2021. 4. 2. 11:00
4월을 위한 노래
밤새도록 이슬비가 툭툭
총총 미끄러져 내렸어
깊은 숲속으로 들이쉬러 와
씁쓸한 초록의 향기를.
네 마음은 싹트기 시작하는 하루처럼,
서글프고, 어둡고 지쳤어
사랑 어린 라일락의 향기가,
순식간에 저물어 갈 거야.
오늘, 가여운 영혼은
몽롱한 고통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느낀다.
축축하고 죽어가는 잎사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들으러 와.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chanson-pour-avril.php
민주
<4월을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
독자 여러분, 「4월을 위한 노래」가 마음에 드셨나요? 왜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한데, '음... 그냥'이라고 대답하신다면 제일 기쁠 것 같아요.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는 것처럼 후기를 써보려고 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시간결정이 녹기 시작한 지 세 달째를 기념하기 위해서’라고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는데요. 계절이 바뀌고 한 분기가 지나는 동안 무사히 연재해서 보람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만, 솔직히 말해 어조를 달리하는 이유는 따로 없고 정말 ‘그냥’이랍니다. 무언갈 그냥 다르게 해보는 건 괜찮은 일 같아요. 어떤 시를 읽고 단박에 마음에 들었을 때, 그게 좋았던 이유를 문장으로 말해보기도 전에 이미 목구멍이 울렁거리거나 볼 쪽에 닭살이 돋는 경험을 해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그냥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고 계실 거예요.
햇살로, 꽃잎으로, 그리고 먼지로(!) 공기 중에 봄이 가득하네요. 꽃을 샘내는 봄비가 2주째 주말마다 내리고 있는 모습도 과연 봄이고요. 주말 비 소식으로 볼멘소리를 하는 주변 사람들을 많이 봤지만 사실 저는 기뻤답니다. 우리 시는 금요일에 공개되는데, 마침 ‘밤새도록 이슬비가 툭툭/ 총총 미끄러져 내’리는 이야기니까요. 상상해보세요. 독자님은 비 오는 주말 아침에 늦잠 자고 일어나서, ‘아 오늘은 어제보다는 쌀쌀하네’라고 생각하며 따뜻한 차를 내리고,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휙휙 내려보다가 마주하게 된 웹진 쪽 게시글에서 ‘잎사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들어간 4월 시를 발견했습니다. 싱거웠던 만우절이 지나간 오늘은 마침 4월의 첫 주말. 독자님은 밀린 다이어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이달의 첫 페이지에 시의 한 구절을 써넣을 수도 있겠지요. 비구름과 속상한 표정의 이모지를 그려 넣으려던 독자님은, 봄의 물방울로 가득한 오늘의 낭만을 깨닫고 ‘오늘 읽은 시와 꼭 맞는 날씨’라고 멘트를 고쳐 쓰고 있을지도 몰라요. 제목에 4월이 들어가서 생기는 이 계절감으로, 다은이와 연재 계획을 짜던 1월 초부터 이 시는 4월 첫째 주에서 첨벙거리고 있었답니다. 첨벙첨벙. 프랑스어가 다 녹은 물속에 떠 있는 한국어가 헤엄쳐서 여기까지 왔네요. 웹진 쪽이라는 풀장으로요.
이번 시를 번역하면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의성 의태어와 행갈이였습니다. 느낌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한국어와 프랑스어 모두 형용사가 다채롭게 발달해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는 사전에 한 단어로 간단하게 번역돼 있는 의성 의태어를 조금 더 시 분위기에 맞는 유의어를 찾고 다듬어야 해서 3연이라는 짧은 분량에도 꽤 까다로운 작업으로 느껴졌습니다. 이슬비나 물방울이 장대비나 물대포처럼 느껴지면 안 되기에 한국어 의성 의태어에서도 비슷한 표현 안에서 제일 찰떡궁합인 것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행갈이를 새롭게 해본 것도 마음에 듭니다. 동사가 시작되는 부분부터 새 행인 프랑스 원문과는 다르게, 명사를 수식하려 나열된 형용사 중에서 하나를 위의 행으로 보내서 비가 내리는 것처럼 말이 재미있게 끊어지도록 의도했습니다. 툭툭, 총총, 뚝뚝… 여러분의 귓가와 입가에 4월의 물기가 촉촉하게 내려앉기를 바랍니다.
다시 ‘그냥’으로 돌아와서. 시 이야기보다 그냥에 진심인 건 아니냐고 웃으시려나요? 제가 3월 마지막 주에 접한 콘텐츠들이 모두 그냥의 엄청난 점을 소개하고 있어서 저도 그냥의 가치에 몰두하게 되었답니다. ‘교훈이나 다짐이 없어도 되니까 비장하게 쓰지 말고 그냥 쓰세요!’라고 말하는 글쓰기에 관한 책의 한 구절이나, 한 트위터리안이 정리해둔 ‘이유 없이 나를 미소 짓게 하는, 그냥 좋은 것들 모음’ 목록을 보고 기분이 아주 좋았거든요. 사실 저는 이 시의 내용을 보기도 전에 avril[아브힐]이라는 글자를 제목에서 발견하고 바로 번역하고 싶었어요. 4월이 왜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신다면, 4월은 제가 태어난 달이기 때문이랍니다. 생일파티나 선물 때문이 아니라 4월이 되면 그냥 제 생활이 활짝 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기분이 아니라 사실이겠죠. 피부도 좋아지고 활력이 넘치고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으니까요. 기분이 좋아진 저는 좋아하거나 잘할 수 있는 일을 찾고, 능률이 높아지고, 실패에도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갖게 되더라고요. 어떤 달에는 태어남에 대해서 비관적인 말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생일이 떡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만으로 봄에는 에너지가 많이 충전돼요. 그래서 겨울에 컨디션이 저조한 것도 이해가 된답니다. 오래 버텨온 봄의 건전지가 제 용량을 거의 다 소진한 시점이라 할 수 있으니까요. 이유 없이 좋은 것을 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며, 조바심이나 한심함의 정서는 품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냥에도 노력을 하려는 제가 우습지만, 점점 그냥에 자연스러워지겠지요?
그래서 저의 마지막 한 마디는요. 제 글에서 ‘그냥’이 몇 번 나올까요?
농담입니다.
여러분이 그냥 좋아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다은
작가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 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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