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속이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일

더는 속이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일

 

더는 속이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일.

어떤 계략도 필요 없어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달아나는 몸을

따뜻한 팔이 꼭 안아줄 때면.

 

꿈꾸고 노래하고 너의 낙원을 짓는

내 목소리를 믿어봐.

만약 네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내가 못됐다는 걸, 넌 알았을까?

 

마음속에서는, 조금 짓궂긴 하지,

때로는 다시 깨닫곤 해

너를 사랑하면서 포기했던

그 분별 있는 외로움을!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aimer-c-est-de-ne-mentir-plus.php

 

민주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에도 솔직함이 필요하다. 방어막은 대부분 좋아함의 주체가 치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쉽게 좌절하는 것도 본인일 터다. 내게 있어 이 사실은 다른 사실들이 그랬듯 ‘안다고 생각했지만 깨달음이 목덜미를 사악 감싸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던 것들’ 목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제목부터 솔직한 이번 시를 조용히 읊어본다. ‘그 어떤 계략도 필요 없’다라… 마음이 가는 대상이 어떤 행위이든, 동물이든, 사물이든, 인간이든지 간에 나의 무언가를 숨기는 상태라면 매우 불안한 상태로 애정하기가 지속되다가…… 끊어질 것이다. 그 마음을 쏟아내는 사람이 모종의 불안과 분노, 자기혐오로 기울어져 있거나 뚜껑이 열려 있다면, 애정은 갈아엎어진 길 위로 엎어져 별 소득 없이 생각지도 않은 곳, 그러니까 자주 갈아엎어지는 인도 위 벽돌 같은 퍽퍽함으로 스며들고 말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의 표정을 보면 팔팔 끓는 바람에 누구도 맨손으로는 만지면 안 되는, 뒤뚱거리는 주전자가 떠오른다. 영화 <트루먼쇼>에서처럼 내가 꼭지가 돌아버리는 순간까지 희한한 구도로 찍히게 된다면 딱 주전자 같을 거라고, 얼굴은 찡그렸는데 피부는 잿빛인 것이 꼭 끓은 물을 토해낸 은색 주전자 같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모두가 그렇듯이 여러 가지를 좋아해왔다. ‘이때 그만두지 않고 더 했으면 좋았을 텐데.’라는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일들도 많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을까. 내가 한눈파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좋아하는 일에서 한눈을 팔았던 나. 또 어떤 이유로 좋아함이 씁쓸한 기억이 되었는지 복기해보다가 흠칫했다. 좋아함을 망친 요소는 위에 언급한 것 딱 하나였다.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자꾸만 더 중요한 일로 나를 떠민 일. 같은 말로는, 좋아하는 일을 덜 중요하다고 착각해 나를 속이고 그만두는 길로 빠져버린 그런 안타까운 일. 내가 이제까지 진짜로 그만두고 싶어서 중단한 일들은 주말에 국기원에 가는 게 싫어서 태권도 학원을 빨간띠까지만 다닌 일과 임파선이 갑자기 부어서 무급 인턴 비슷한 일에서 빠져나온 일 정도가 되겠다. 아, 수영도 있다. 90년대 출생 어린이를 괴롭혔던 질병(Z세대도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아토피 때문에 물에 들어가기도 이미 힘든데 성추행 수영 강사의 깽판으로 초등학생 때 울면서 그만둔 일… 엄마한테 이유를 설명하기 힘들어서 그냥 끝내버린 일이다. 이 일들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아...니...못...해…’라는 소리가 울렸었다.

    음악, 힙합 춤, 발레, 스페인어, 글쓰기, 시 쓰기, 뜨개질, 사진, 비디오, 연출, 꽃, 여행, 번역, 독서 모임, 그림… 내가 얼마나 좋아했고 즐겁게 했었는지 재미난 에피소드만 뽑아 수다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일들이 잠깐만 생각해도 이만큼이나 된다. 시간의 흐름으로 자연스럽게 멀어진 일보다는 쭈글쭈글해진 자아가 ‘내가 진짜 지금 이 일을 해도 될까’라고 물음표를 띄워대는 통에 흐릿해진 일들이 더 많다. ‘지금의 시간에 헌신하지 않는 건, 나에게 헌신하지 않는 것이고 그건 나중에 굉장히 미안해져서 마음에 걸리게 되어서…’라고 적다가 안나 드 노아이유의 시를 읽으면서도 한국인의 한을 발견해버리는 나에게 놀라고 말았다. 그 한, 없는 글자라고 생각하고 무언가에 몰두하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라고, 당장의 성과가 없어도 괜찮고 다 쌓이고 있고 이건 한량의 시간이 아니라고 다시 적는다.

   
인스타그램에 이상한 버튼이 생겼다. 사진을 올리려고 어떤 버튼을 누르면 갑자기 틱톡 영상 같은 짧고 웃긴 콘텐츠가 재생된다. 화면을 갑자기 뒤덮는 시끄러움에 바로 종료하려는데, 영어로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누가 내 성격 좋다고 하면, 나는 다른 성격 여섯 개 더 보여주고 너넨 내 모든 성격을 좋아할 거라고 말해^0^~!] 목소리에도 얼굴이 있다면 선글라스를 쓰고 콧대가 높을 것 같은 재질. 너스레를 떠는 유쾌한 말투. 이제 이런 뻔뻔함과 아량을 나에게 많이 베풀 수 있겠지. 진심으로 그러고 싶은 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작가 소개

안나 드 노아이유 Anna de Noailles (1876~1933)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작가이자 페미니스트. 1901년 출간한 첫 시집 『헤아릴 수 없는 마음 Le cœur innombrable』 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시집 『사랑의 시들 Poèmes de l'amour』(1924)을 비롯 소설과 자서전을 남겼다. 공쿠르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으나 여성이라는 이유로 수상이 불발되자 여성 심사위원들로 구성된 페미나 문학상의 창설을 주도했다. 그는 이후 프랑스어 문학을 드높인 공로로 여성 최초로 아카데미 프랑세즈 대상을 수상하고 프랑스 내 최고의 명예로 꼽히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수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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