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배지빠귀 by 김라면
- 주말엔 일탈
- 2021. 5. 1. 08:44
목이 부러진 새였다. 목을 아래로 꺾고 노란 다리를 하늘로 치켜든 독특한 자세로 흙먼지가 가득한 바닥 위에 누워있었다. 올리브색이 감도는 갈색 깃털이 아직 보드라워 보였다. 손을 가져다 만지면 금세 일어나 담장 너머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가만히 새를 바라봤다. 감긴 것인지, 이미 부패해버린 것인지 모를 눈, 꽉 다문 부리, 회색 머리와 솜털 같은 흰 배, 엊그제 먹었던 야식과 닮은 샛노란 발까지.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서 보았던 글을 떠올렸다. 유리창 충돌 사고와 관련된 글이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시 가만히 새를 바라봤다. 그 글의 주인은 따뜻한 어딘가로 새를 옮겨주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릴 적 시체를 만지는 느낌이라며 눈을 감고 친구의 두 손가락을 만졌던 기억이 되살아나서일까. 온몸에 돋아난 닭살을 쓰다듬으며 뒤돌아섰다. 약속 시간에 이미 늦은 상태였다.
안락한 카페의 유리창은 정원을 가득 담았다. 빼곡히 들어찬 꽃들이 계절감을 잊게 만들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맞아 노랗게 마른 잔디, 헐벗은 느티나무가 겨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친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마가렛이니 메리골드니 희고 노란 꽃들을 네모난 기계-휴대폰 속으로 옮겨 담았다. 요즘 기술이 참 좋단 말이야. 안 그래? 친구가 묻는 질문에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고는 커피를 주문했다. 카페 안 공기가 따뜻해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서 다시 창가로 향했다. 한 걸음을 뻗으면 정원으로 나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한겨울에도 꽃을 볼 수 있다니. 친구가 감격에 찬 음성으로 기쁨을 토해냈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온실을 찬미하며 휴대폰을 톡톡 두드렸다. 요즘 플라스틱을 줄여보려고. 플라스틱? 응. 그가 빨대로 얼음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얼음의 냉기와 공간의 따뜻함이 만나 투명한 유리컵은 저도 모를 땀을 흘려대고 있었다. 쪼로록. 빨대가 남은 액체를 빨아들이며 경쾌한 소리를 냈다. 플라스틱이 자연에 얼마나 해가 되는지 알아? 그가 휴대폰으로 무언가를 찾는 듯하더니 눈앞에 사진 하나를 가져다댔다. 빨간색 파란색 투명한 색의 플라스틱이 나무 탁자에 놓인 사진이었다. 플라스틱 일기를 쓸 거야. 꽤 즐거운 목소리로 다른 사진을 찾아 눈앞에 가져다댔다. 봐, 나 이 사진 보고 정말 충격받았다니까. 콧구멍에 빨대가 꽂혀 고통스러워하는 거북이, 플라스틱 병을 집으로 사용하는 가재, 고래의 위장에서 나온 과자봉지…. 매일 쓰는 플라스틱 양을 인지하면서 조금씩 줄여갈 거야. 봐, 나 방금 텀블러도 주문했어. 친구가 안타깝지 않느냐며 사진을 가까이 들이댔다. 나는 가만히 입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집에 텀블러가 서너 개 더 있다는 사실도, 어제 배달을 시켜먹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그저 그의 말에 나도 동참해보겠노라고 긍정하는 수밖에. 이야기는 벌써 내가 쓸 텀블러를 고르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 제로웨이스트샵에 가기 위해 샴푸를 바꿔볼까 하는 이야기가 덧붙여졌다.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라며 내게 건네진 휴대폰을 어정쩡하게 받아들며 그의 게시물을 살폈다. 최근 일주일의 게시물 대부분이 플라스틱에 관한 글이었다. 손가락을 슥슥 움직여 위아래로 당기니, 방금까지 찍고 있던 꽃들도 그녀의 커피와 함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새를 봤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은 꺼내고 싶지 않은 말인데다, 아직까지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겠던 터라 분명해질 때까지-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행동할지 정해질 때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아주 충동적이었지만, 한편으로는 계산된 것이기도 했다. 그의 반응이 궁금해서, 그가 제시해줄 대안이 궁금해서, 그 대답을 내가 따를지 여부가 궁금해서. 무수히 많은 질문들이 내게 말을 하라고 독촉을 한 결과였다. 꼴깍 삼킨 침이 목에 걸림과 동시에 그와 눈이 마주쳤다. 계속 말해보라는 듯 강렬하게 응시하는. 죽은 새를 봤어. 입을 떼자마자 그는 조잘거리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논란이 되어왔던 일이며, 자기가 올린 게시물도 있다며 다시 휴대폰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인스타그램 속에 있는 듯했다. 그의 행동, 그의 신념, 그의 관점, 그 모든 것이.
“사진은?”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 사진은 안 찍었어? 그 질문에 당황하지 않았다면 거짓이다. 나는 그의 입에서 나올 말들을 예측하려 애썼지만, 그 말은 그 모든 예상을 비껴간 것이었다. 사진이 중요해? 중요하지. 그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사진으로 알 수 있는 정보와 말할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많은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꼭 사진을 찍어달라며 덧붙였다.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가 저물고 있었다. 공간에 가득 들어차는 햇볕을 따라 정원도 공간 속으로 점점 커졌다. 꽃밭 위에 앉아있는 기분이었다.
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발레를 하듯 두 다리를 하늘을 향해 뻗고서. 나는 새를 바라봤다. 찰칵. 사진을 찍고 그에게로 새를 전송했다. 고개를 들어 새가 부딪혔을 창을 바라봤다. 투명한 벽은 탐스러운 쓰레기장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답장이 날아왔다. 새의 종류와 유리창 충돌사고의 안타까움을 담은 인스타그램 링크였다. 다시 새를 바라봤다. 내가 이 가녀린 지빠귀가 되어 플라스틱을 위해 몸을 부딪치고 싶은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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