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나의 스마트 자전거

 

    나는 자전거를 아주 잘 탄다. 어릴 때부터 두발자전거를 타고 양손을 높게 들어 만세 포즈를 취한 상태로 동네를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경험들이 모두 자전거 실력에 도움이 되었다.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자전거 코스는 주공 7단지에서 주공 8단지로 내려오는 급경사 길이었다. 높은 곳에서 빠르게 앞으로 돌진해나가다 보면 꼭 내가 허공을 날고 있는 기분이 들어 가슴이 후련해지곤 했다. 나는 몇 번이고 다시 그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면서, 수없이 넘어지고 무릎이 깨졌지만, 다행히 아직 남아있는 흔적은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나의 라이딩은 끝이 났다. 아무래도 다른 동에 사는 친구들이 생기니 함께 하교하고, 걷고, 놀기 위해서는 자전거가 없어야 했으니까. 버스를 타고 등하교해야 하는 고등학교를 진학한 이후로는, 아예 갖고 있던 자전거도 어디 갔나 모를 정도로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다시 자전거에 손을 댄 건 십 년 정도가 흐른, 얼마 전이었다.

    성산동 아래에는 내천이 있었다. 내천을 지날 때마다 나는 ‘나도 저기서 여유롭게 자전거 타며 운동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은 선선한 날씨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바람, 예쁜 저녁 풍경 때문이었다. 최근, 서울시에 따릉이(자전거 대여 서비스)가 생기면서, 많은 사람이 갖고 있던 자전거 매물을 싸게 내놓고 있다는 것을 떠올린 나는 바로 당근마켓 앱을 켜서 자전거를 검색했다. 역시 매물은 기다렸다는 듯 와르르 쏟아졌다.
    픽시를 사고 싶었다. 이유는 하나였다. 예뻤으니까. 그러나 브레이크가 없다는 단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다. 또, 내가 거주하던 곳은 골목이 많고 경사가 가파른 바람에 자칫하면 큰 사고가 날 수도 있었다. 대여를 시작하면 자동으로 보험이 가입되는 서울시 따릉이와 달리 개인 자전거는 따로 보험을 들지 않으면 적용이 되지 않았으므로, 만일 자전거를 타다 큰 사고가 나거나 멀쩡히 있는 자동차 등을 받아버리면 내 지갑과 통장 잔고는 아마 바닥을 치다 못해 땅굴을 파게 될 것이라는 판단으로 나는 빠르게 픽시를 포기했다. 그리고 웬만큼 평범하고 튼튼하며 십만 원대의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는 중고 자전거를 골랐다.

    문제는 결제였다. 당시 난 수중에 현금이라곤 이만 원뿐이었으며 그마저도 하루 뒤면 커피값과 담뱃값으로 나가야 할 돈이었으므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운 좋게도 때마침 경품으로 받았지만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자전거를 공짜로 받게 되었고, 나는 당근마켓을 종료한 뒤 곧 도착할 나의 새 자전거를 기다렸다. 비싼 자전거라는 말에 더욱 가슴이 설렜던 건 안 비밀이었지만, 그것은 곧 자전거 바퀴에 바람을 넣으러 동네 자전거 점포에 자전거를 가져갔을 때, 나의 마음은 완전히 탄로 났다.
    “스마트네 스마트여. 제일 싼 거.”
    자전거 점포 사장님은 은근히도 아니고 대놓고 내 자전거를 무시했다. 하지만 나는 스마트하든 말든 가격이 얼마나 하든 말든 상관없었다. 왜냐면 공짜로 받았으니까! 자전거는 바퀴만 잘 굴러가면 된다는 으름장을 놓으며 내가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돌아갈 때,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뉘엿뉘엿 지다니. 너무 뻔하고 지루한 표현인가? 생각도 했지만.

    자전거가 생기니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나를 점령하였다. 때마침 당근마켓에서는 레드벨벳 공식 굿즈를 아주 싼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고, 나는 그것을 사기 위해 신촌에서 직거래 약속을 잡았다. 예리와 조이 루키 클리어 파일, 그리고 여권 케이스가 단돈 육천 원! 이참에 나는 교통비도 한번 아껴보고자 자전거를 첫 개시하게 되었고, 육천 원을 가방에 넣고 스마트 자전거를 탄 나는 설렘과 기대에 가득 차 날아갈 것만 같은 기분으로 페달을 밟으며 신촌으로 떠났다. 휴대폰 자전거 전용 도로로 검색해본 결과, 15분이면 도착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도 초행길이니 조금 더 일찍 출발하자 해서 빨리 출발한 결과, 나의 판단은 아주 옳았다. 왜냐하면......
    분명 한 번도 쉬지 않고 미친 듯이 전력 질주를 했는데 신촌까지 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아니, 분명 15분이면 간다고 했는데. 고작 2.3km 거리를 어째서 한 시간 동안이나 간 것일까? 아니, 그보다도 그게 가능한가? 나는 분명 지도를 꾸준히 보며 맞는 길로 다녔고, 심지어 지도 앱에서는 도보로 간다면 60분이 걸릴 거라 했는데, 나는 도보도 아니고 자전거를 이용했단 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 손 들었다. 신촌에 도착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숨이 차고, 현기증이 나고, 온몸이 저리고, 힘에 부쳐 죽을 것만 같았다. 여기까진 어떻게든 왔지만, 다시 자전거를 타고 되돌아갈 수 없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던 나는 중고 거래를 마친 뒤 당근마켓 앱을 열어 하나의 글을 올렸다. 사진은 길 전봇대에 묶여 있는 스마트 자전거 사진. 글 내용은 “자전거 데려다주실 분 구합니다....” 결국 나는 6,000원의 두 배가 넘는 가격의 기프티콘을 지불하고 어떤 라이더분께 내 자전거를 맡긴 뒤 버스를 타고 귀가하였다. 내가 탔을 땐 1시간 걸리던 거리를, 라이더분은 30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하셨고 나는 그 사실에 절망하였다. 머리가 멍청해서 몸이 고생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이후로 나는 자전거를 타지 않았다. 타게 되어도 가까운 병원 정도를 오갈 뿐이었다. 수자는 내게 “그럼 자전거 나 줘!”라고 말했고, 나는 흔쾌히 “그래. 집 앞으로 갖다 줄게.”라고 대답했다. 나는 멍청했다. 신촌 중고 거래 사건의 아픔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다시는 그런 짓을 벌이지 말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한 번만 멍청한 게 아니어서,

    어느 볕 좋은 날, 나의 스마트 자전거를 타고 마포구에서 신림동으로 향했다.
    자전거로 출발지와 도착지까지의 경로를 지도로 검색했을 때 1시간 3분이 걸리는
    (내 인생 최대) 장거리 코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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