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웹진 <쪽>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이트였고, 처음 보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카테고리를 선택하여 하나하나 올라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어떤 교감이나 공감대를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때마침 웹진 <쪽>은 일정 기간 동안 원고 투고를 받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쓸 것인지, 이것으로 하여금 내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엇인지. 그것의 대답을 내놓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나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비정상’ 가족에 대해 쓰고 싶었고, 우리가 겪은 일이지만 타인 또한 겪을 수 있는, 혹은 이미 겪었을 일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최대한 어렵지 않고 쉽게 쓰는 것. 대신 솔직하고 생생하게 털어놓는 것. 이것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한 대답이 되었다.

    달성하려는 목표는 딱 하나였다. 연재를 하면서 쓰는 원고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간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목표가 생긴 건 그렇게 오래 되지 않았으며, 이러한 다짐은 동료들과 함께 술을 먹던 자리로부터 비롯되었다.

    자주 술을 마시고 함께 시 이야기를 나누는 동료 유운, 휘석과 함께하는 술자리였다. 여느 때처럼 술을 마시면서 웃고, 떠들고 놀다 문득 우리는 각자의 단행본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제도권에 관해 이야기하고, 권위에 관해 이야기하고, 목표에 관해 이야기하다가, 문득 유운이 내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소리 님은 그래서 뭘 하고 싶어요? 등단하고 싶어요, 시집을 내고 싶어요?”

    살면서 가장 크게 나를 바꾼 질문으로 꼽을 정도로 유운의 질문은 날카로웠다. 그 질문에 나는 잠시 생각을 했고, 수많은 물음을 들춰보고 수색하고 수사하길 반복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에세이집을 내고 싶어요.”

    “우잘살(우리끼리도 잘 살아)을 내고 싶어요.”

    그때부터 내 태도는 조금 더 가벼워졌고, 조금 더 솔직해졌고, 조금 덜 비밀스러워졌다. 성의가 없어졌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다만 사람들에게 나를 들키고 싶었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고, 이런 일을 겪는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다고, 낱낱이 해부되고 공개되고 싶었다.

    이런 것은 대체로 재미있다.

    연재해온 지 몇 달이 지나고 나는 그동안 써둔 원고와 기획안을 작성하여 여러 출판사의 문을 쾅쾅 두드렸다. 처음이었으므로 어떤 식으로 투고해야 하는지, 이렇게 하면 되는지 물어볼 곳도, 또 대답해줄 사람도 없었으나, 무식하게 일단 부딪쳤다. 그러다 문이 열렸고, 누군가 내게 들어오라 이야기했다. 대화를 나눌 수 있냐기에, 나는 그것을 원한다고 이야기했고 그와 나는 만나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건 제가 누구보다 가장 잘할 수 있는 이야기예요.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은 수두룩하고 또 널렸다. 이를테면 시를 가장 잘 쓰는 시인, 사랑 시를 가장 잘 쓰는 시인, 자신의 경험을 자신만의 색다른 언어로 우리에게 충격을 안겨주는 시인 등등…….

    실제로 나는 이런 말을 자주 했었다. “이것에 대해서는 나보다 더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거야.” 라거나, “나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이야기에 대한 것을 말해보고 싶어.”라거나, “시 잘 쓰는 시인들은 많으니까, 나는 문신이 제일 많은 시인이 되겠어!” 같은 말들. 이것은 열등감이 아니고 나는 행복했다. 언젠가 꼭…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그런… 작가가 되기를…

    작가가 되는 법은 간단하다.
    글을 쓰고,
    그 글을 읽어주는 독자가 있으면 된다.
    단 한 명이라도.

    내년에 출간될 우잘살(우리끼리도 잘 살아)의 완성을 위해 나는 연재 중단을 결정했고, 완성하고 떠날 수 있을 줄 알았던 ‘나의 스마트 자전거’는 분량 조절 실패로 인해 결국 뒷이야기를 들려주지 못하고 가게 되었지만, (그 다음에 나올 이야기가 무려 40매나 된다) 대신 그보다 더 재미있고 생생한 일들이 내 글을 읽어왔던 사람들과 읽고 있는 사람들, 앞으로 읽어나갈 사람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

    ‘처음’을 만들어준 웹진 <쪽> 운영진분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매번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해 허우적대던 나는 아무래도 그리 좋은 연재 작가는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세히 들여다봐준 희음 님과 독자분들께도 더 큰 감사를 드리겠다.

    암 진단을 받은 뒤, 20여 년 만에 이혼 도장을 찍게 된 50대 수자와 일찍 독립해 집을 나온 첫째 딸 소리, 엄마와 함께 사는 바이섹슈얼 둘딸 윤희, 중성화한 암컷 고양이 이랑의 이야기.

    우리끼리도 잘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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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 잘 살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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