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골드 셀렘과 함께한 시작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없다. 독립과 홀로서기에 대한 열망은 매우 컸지만, 청소년 시절엔 부모님과 살았고 스무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부모님과 살다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와서는 친구들과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배우자와 산다. 별일이 없는 이상 나는 이대로 평생 2인 가구로 살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공유 공간이 사유 공간보다 넓다는 이야기이다. 공유 공간과 분리된 사유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좁았고 그곳에서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야했다. 내가 선택한 건 유튜브 시청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대학을 다니는 내내 은은하게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가끔 블루 오션 시절 업로드를 시작한 유튜버들을 질투하기도 했다. 인정 욕구와 자의식, 명예욕에 사로잡혀 살았던, 그러나 인간관계도 좁고 사람 만나는 것도 무서웠던 나는 유튜버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하지만 20대 초반의 나는 행동력 제로, 용기 제로였다. 늘 시작을 망설일 수밖에 없는 핑계가 잔뜩 있었다. 망설이면서 혼자 꼼지락거리는 동안 누군가가 알아서 나의 가치를 알아주기를 바랐다. 방구석에서 글만 쓰면서 알아서 명예를 얻어서 유명해지고 인정받고 사랑받으면 좋겠다고 한숨만 쉬었다.
    그러던 내가, 스물일곱이 된 마당에, 정말 뜬금없이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버의 꿈은 대학을 졸업할 때쯤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 말 퇴사를 결정하고 나서 ‘내년에 해볼까?’, ‘그래, 시간 나면 해보지, 뭐!’ 정도로 다이어리에 메모해둔 게 다였다. 그렇게 올해가 되었고 상반기가 지나갔다. 우여곡절이 많았고 그만둔 것도 시작한 것도 생겼다. 바빠서 영상 작업은 도저히 염두에 둘 수 없었다.
    정신없이 일만 하다가 쇼핑을 하며 쉬던 날이었다. 좋아하는 식물 카페의 인스타그램 피드에서 골드 셀렘이 입고됐다는 글을 보았다. 몇 달 전부터 가지고 싶은 식물이었으나 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선뜻 사지 못하던 친구였다. 그날은 돈도 있었고 그 식물 카페는 집에서 제법 가까웠다. 10분 정도 고민하다가, 구입하고 싶다고 다이렉트 메시지를 보냈다.
    타이밍. 그때가 바로 ‘타이밍’이었다. 골드 셀렘을 사기로 한 순간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루트가 정해졌다. 좋아하는 식물 카페에 가서 작업을 하고 오랫동안 사고 싶었던 골드 셀렘을 구매하고야 마는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자. 그리고 유튜브에 올리자. 그게 시작이었다. 그게 바로, 꼼짝없이 뭐든 떠먹여주기만 바랐던 나를 ‘시작’하게 해준 사건이었던 것이다.
    골드 셀렘의 풀네임은 ‘골드 셀렘 바르세비치 아우레아’이다. 밝은 형광 노란색의 화살 모양 잎이 우아하기도 하고 시원시원하기도 하다. 처음 사진으로 만난 골드 셀렘은 수입된 지 얼마 안 됐는지 정보도 별로 없었지만, 설령 키우기 어려운 식물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가지고 싶었다.
    그토록 원하고 원하던 골드 셀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들떴다. 골드 셀렘 버프라도 받았던 걸까? 몇 년 동안 촬영을 다짐하고 카메라를 켜기면 하면 입이 꾹 다물어지고 얼굴이 붉어졌는데, 그날따라 혼자 길을 나서며 카메라에 대고 쫑알쫑알 말이 잘도 흘러나왔다. 움츠러들어 있던 지난 시간들이 허무할 정도였다.
    골드 셀렘을 분양한 하루를 담은 영상을 편집하는 건 신선한 경험이었다. 실제로 보는 것만큼 잎의 색감이 아름답게 잡히지 않아서 아쉽기도 했지만 내가 직접 보는 시각과는 또 다르게 잡히는 화면 속 모습도 새로웠다.
    무엇보다 골드 셀렘을 구입하고 분갈이하고 빛에 비추어 보는 나의 태도를 한 발짝 떨어져서 보고 있자니 참 이상했다.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식물 이야기를 신이 나서 혼자 떠들고 있는 내가 부끄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즐거워 보였다. 화면 속 ‘나’의 즐거움이 느껴졌다. 골드 셀렘을 드디어 식구로 들인 기쁨과 첫 촬영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골드 셀렘 영상을 올린 지 2~3주 정도 지난 시점이다. 조회수도 구독자수도 아직 많지는 않지만, 없지도 않다. 시작을 하지 않았을 때는 내가 이룰 수 있는 숫자가 적을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숫자는 0에서 머물게 되고, 하여간에 뭐라도 하면 0은 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어떤 것을 때려치우고 싶을 때 베란다에 가서 골드 셀렘을 골똘히 쳐다보게 되었다. 겁이 나서 끝을 내려고 할 때, 시작을 함께했던 친구와 마주하는 건 의욕을 일으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골드 셀렘은 베란다에 입주한 지 3일 만에 새순을 내어주었다. 그 역시 새로운 공간에서의 시작점을 맞이한 셈이었다. 둥글둥글했던 이전의 잎들과는 다르게 새순은 제대로 화살 모양을 띠고 있었다.
    셀렘은 수형이 자유롭게 자라는 식물이므로, 앞으로 나올 가지들은 위로 솟기도 하고 아래를 향하기도 하고 옆으로 뻗기도 할 것이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은 제멋대로일 테지만 그런 골드 셀렘의 모습도 아름다울 것이다. 나의 시작들도 그처럼 아름답게 남기를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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