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운명의 파키라

 

    날씨는 더워졌고, 나는 가난해지고 있었다. 직장이 구해지지 않아서 일하지 못했던 여름은 겪어본 적 있었지만, 나의 의지로 일하지 않는 여름은 처음이었다. 2020년 연말에, 2021년의 목표를 ‘직장 구하지 않기’로 잡았었다. 글을 쓰고, 창작을 하고, 나의 양에 알맞은 정도만 일을 하는 삶을 시작하고 싶어서였다.
    12월에 다니던 직장의 계약이 만료되고 실업 급여를 받으며 2021년의 상반기를 버텼다. 실업 급여 수급을 할 수 있는 마지막 달이었던 7월이 되었고, 잔고와 모아놓은 돈을 보며 일주일 넘게 우울해하기도 했다.
    운명에 대해 고민했다. 올해는 온라인 신점을 두 번이나 봤고, 오프라인 타로도 보고 타로 어플도 계속 들락날락했다. 누군가 미래를 점지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창작을 하겠다는, 감히 가난을 ‘선택’하겠다던 내 선언은 과연 옳은 방향이었을까?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지, 나의 운명과 나의 분수와 나의 인연에 걸맞게 가고 있는지, 제발 누가 답을 알려주기를 바랐다.
    그런 상태로 폭염이 찾아왔다. 에어컨을 틀어야 했고, 상반기에 잔뜩 사들인 식물들을 돌봐야 했다. 곰팡이가 슨 화분을 닦고 서큘레이터를 틀었다가 껐다가 물을 주며 얼룩진 흙바닥을 청소했다. 베란다에서 그런 수고를 하고 있으면 이게 취미인지 아닌지 헷갈리기도 했다.
    베란다 식물들은 비교적 큰 말썽 없이 여름을 나고 있었다. 몇몇 식물들은 오히려 여름이 되니 무서운 속도로 잎을 내고 건강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오롯한 식구는 파키라였다.
    식물을 이렇게 많이 좋아하게 될지 예상도 하지 못했을 때, 당근마켓을 통해 파키라를 구매했다. 원래 사려고 했던 식물도 아니었고, 수채화 고무나무를 올려놓은 판매자가 같이 사면 싸게 해주겠다고 해서 골랐었다. 막상 그날 데려온 수채화 고무나무는 과습으로 죽어버렸는데, 파키라는 지금까지 묵묵하게 자리를 지켰다.
    파키라는 몸통 두어 개를 한 화분에 같이 심어서 크게 팔기도 한다는데, 우리 집 파키라는 몸통도 한 개였고 그마저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평소 내가 생각하던 파키라의 이미지와는 좀 달랐다. 다른 집 파키라는 나무처럼 생겼는데, 우리 집 파키라는 화초 같았다.
    가끔 낙엽 지는 잎을 잘라주는 것 외에는 손이 많이 가지 않는 식물이었다. 파키라는 그렇게 몇 개월 동안 알아서 잘 자랐다. 그래서 (내가 생각했던 이미지와는 다르게 자라도) 크게 불만이 생기지 않았고, 또 크게 정이 가지도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파키라를 당근마켓에 올려야겠다고 결심했다. 유흥비가 모자랐고, 스타벅스에 가고 싶었다. 한 끼라도 좋으니 외식을 하고 싶었다. 파키라를 얼마에 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당근마켓에 파키라를 검색해보고 평균값을 내서 가격을 결정했다. 내가 정한 내 파키라의 가격은 만 오천 원이었다. 당근마켓에 올릴 사진을 찍으려고 파키라를 처음 가지치기해주었다. 이 정도에 만 오천 원이면 괜찮겠지? 팔리겠지? 벌써 만 오천 원이 수중에 들어온 것처럼 만족스러웠다.
    그 당시만 해도 기대와는 달리 파키라를 사겠다는 연락은 금방 오지 않았다. 판매 글을 끌어올리는 것도 까먹어갈 때쯤에야 채팅이 왔다. 채팅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만원엔 안 될까요?] 오전 8:21
    [저희 집으로 가지러 오시면 그렇게 드릴게요] 오전 10:59
    [어디로 가야 하나요? 불광역 쪽으론 못 오시죠?] 오전 11:51
    [제 쪽으로 와주심 감사하겠습니다~] 오후 12:00

    가격을 깎고, 자신이 편한 쪽으로 부르는 태도에서부터, 그를 차단했어야 했는데. 그는 세 시가 편하다고 해놓고 두시 반이 다 되도록 연락이 없었다. 그러다 대뜸 세시 십구 분에 지금 출발한다고 했다.
    그는 내가 불러준 주소로 오지도 않았고 그가 도착한 곳은 우리 집에서 한참 걸어 나가야 했다. 그쪽은 너무 멀다고 했으나 반복해서 ‘이리로 오시면 안 될까요?’, ‘이리로 오시나요?’ 하고 물어대서 결국 난 파키라를 챙겨 골목을 한 바퀴 돌아 그가 말한 아파트 앞에 갔다.
    더운 날이었다. 난 그날 처음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입속에서 걷고 있는 것 같았다. 공기가 축축하고 뜨거웠다. 종이백에 들어 있는 파키라가 걱정됐다. 이런 더운 날 밖으로 나오게 되다니, 얼른 새집으로 보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파트 앞에는 아무도 서 있지 않았다.

    [어디 계시죠?] 오후 3:41
    [000인데요 다시좀내려왔어요ㅠ] 오후 3:41
    [아…어디로 내려가신 건가요??] 오후 3:42
    [000] 오후 3:43
    [지도 검색이 안 되는 곳이에요] 오후 3:44

    등을 따라 땀이 흘렀다. 이 사람은 왜 가만히 안 있고 움직인 거야? 여기로 오라고 해서 애써 더위를 뚫고 왔는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높은 오르막이었다. 그 길을 떠올리면서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야지 생각하던 차에 답장이 왔다.

    [저 지금 그냥 갈게요] 오후 3:45
    [이쪽으로요?] 오후 3:45
    [이쪽으로 오고 계신가요~?] 오후 3:48

    상대는 답이 없었다. 그냥 간다는 게 내가 있는 쪽으로 온다는 게 아니라 자기 집으로 간다는 이야기였던 모양이었다. 바닥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뜨거웠다. 그 사람을 차단하고 비매너 평가를 보냈지만,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라는 사실이 갑갑했다.
    바닥에 내려두었던 종이백을 들어 올렸다. 파키라의 무게가 손가락 마디의 살을 꾸욱 눌렀다. 파키라의 잎, 줄기, 목대, 그를 받아들이고 있는 흙과 그 속에서 엉켜있을 뿌리까지. 새삼스러운 파키라의 부분들이 손가락을 누르는 무게를 통해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와서 파키라를 원래 있던 자리에 두었다. 서큘레이터를 틀어 그와 함께 바람을 쐤다. 베란다는 더웠지만 땀은 식힐 수 있었다.
    그 사람은 왜 갑자기 거래를 파기했을까? 그 사람도 덥고, 모종의 이유로 지쳐있는데, 그걸 견디고 기다릴 정도로 파키라를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원하지 않았으면서 왜 파키라를 사겠다고 채팅을 보냈을까. 나는 그 지점에서 조금 화를 내고 싶었다. 화분을 들고 더운 날 바깥을 나갔다 온 것보다. ‘사면 사고 아님 말고’라는 태도로 나의 식구를 대한 것이 싫었다.
    “쟤는 아무래도 나랑 살 운명인가 봐.”
    들어오는 길에 사 온 아몬드 브리즈를 인정과 나눠 마시며 말했다. 그날 난 파키라 판매 글을 당근마켓에서 삭제했다.
    같이 살 운명. 운명이라는 게 식물과 인간 사이에도 작용이 된다면 파키라와 나는 운명일지도 모른다. 혹은 운명이 아닐지도 모른다. 운명이든 아니든 지금 나와 함께하게 되어있는 것들은, 내가 선택하고 말고는 상관없었다. 버리거나 남에게 줘버리려고 해도 나에게 되돌아왔다.
    글도 창작도 내게는 그랬다. 계속 글을 쓸까 말까 고민하는 게, 사실상은 의미가 없었다. 안 쓰려고 해도 쓰게 되었고 쓰다 보면 누군가 읽어주었고 그게 좋아서 또 쓰고 싶어 했다.
    난 아직도 직장 없이, 모아놓은 돈을 깎아 먹었다가 다시 채우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런 삶이 내 운명이 맞을지, 잘 가고 있는 건지, 이대로 가는 게 미래의 나에게 좋을지 어떨지는 여전히 자신 없다. 단지 이대로 흐르고 있다. 적어도 파키라 화분 하나 정도는 내 곁에 남아있을 거라는 작은 확신을 가지고 있으니까. 이 정도의 작은 확신들이 점점 많이 쌓여가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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