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만난 적 없는 새벽이

 

    어린 나에게 ‘돼지’는 가장 화가 나는 욕이었다. 스스로 뚱뚱하다고 여겼다. 확실히 마른 몸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금방 비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변인들에게 돼지 소리를 들을 것 같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돼지 호칭을 경멸하면서도 삼겹살 냄새를 맡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동생이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에 자주 갔다. 외식을 하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먹게 되었고, 고깃집에서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뱃살이 평소보다 더 나와 있었고 그런 나의 몸이 징그러워 보였다.

   그런 날들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고 난 돼지는 물론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처음 비건 선언을 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런다고 살 안 빠진다’였다. 살이 빠진 후로는 ‘채소만 먹어서 날씬해졌나 보다’로 바뀌었다.
    사람들은 돼지를 먹어 치우는 거로도 모자라 생활 습관이나 겉모습을 폄하하며 부정의 아이콘으로 사용한다. 돼지는 뚱뚱하고, 더럽고, 게으른 동물이라는 인식. 그런 인식이 나에게도 있었고 그래서 돼지처럼 되는 게 무서웠다.
    그러다 ‘메갈년 따먹는 중’이라며 삼겹살을 굽는 사진을 올린 게시물을 보게 되었다.
    저런 인간 앞에서 ‘여자는 돼지가 아니거든요’라고 하는 게 옳을까? 죽임 당해 마땅한 동물이라는 프레임에서 나(여성)만 도망쳐 나오면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될 수 있을까? 돼지를 먹는 사람과 여자를 돼지에 비유하는 행위, 그리고 돼지가 되는 게 무서웠던 나의 과거가 맞물려 머리가 복잡해졌다. 인간인 여성과 동물인 여성, 음식이면 안 되는 여성과 음식이어도 되는 여성. 나는 어떤 사회적 위치를 점유하고 있을까.
    결국 그 게시글은 보고도 못 본 척, 조용히 넘겼다. 아무에게도 그 게시물에 대해 얘기하면서 열을 내지 않았다. 저 인간의 불판에 올라간 돼지를 되살리고 싶다는 생각만 종일 했다.
 
   내가 살리고 싶다는 생각만 하며 살 때, 실제로 돼지 한 명을 구조하고 살려낸 이들도 있었다. 구조되어서 살아남은 돼지의 이름은 새벽이. 새벽이가 지금 사는 곳은 국내 1호 생추어리인 ‘새벽이생추어리’로 2020년에 문을 열었다.
    처음 본 새벽이의 영상이 아직도 생생하다. 새벽이는 환한 햇살 아래에서 땅에 코를 박고 흙을 파며 놀고 있었다. 그 영상을 시작으로 새벽이의 모든 콘텐츠를 몰아봤다. 새벽이가 과일을 먹는 사진, 노을을 등지고 하늘을 보고 있는 사진, 눈을 꼬옥 감고 잎을 아삭아삭 먹는 영상.
    그 뒤로 새벽이생추어리의 모든 SNS를 주기적으로 들여다보며 새벽이와 내적친밀감을 쌓고 있다. 점점 건강해지는 새벽이를 보면 기분이 좋고, 새로 입주한 잔디가 반갑고, 그들이 과일 먹는 모습을 보며 같이 입맛을 다시기도 했다.
    왜 ‘돼지 같다’는 욕이 되었을까. 자연스럽게 살 수 있는 돼지는 전혀 더럽거나 추접하지 않은데. 새벽이생추어리에 살고 있는 생명들을 보며 다짐했다. 평생 비건해야지. 절대 고기를 먹지 말아야지. 누가 돼지 같다는 말을 쓰면서 나를 욕보이려고 하면 되레 고맙다고 해야지.
    새벽이생추어리에 봉사하러 가본 적은 없다. 혼자 부채감을 가지고 있는 지점이다. 현장 봉사를 망설이는 이유는, 남들이 보면 우스울 수도 있는 이유지만, 내가 조류만 보면 몸이 팍 굳어버리는데 생추어리 이웃인 꼬꼬(닭)들이 생추어리에서 지내고는 한다는 글을 봐서이다.
    그런 이유로 일단 직접 가고 있지는 않고 이따금 후원을 보내는 정도로 새벽이와의 연결고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꼭 새벽이와 잔디를 보러 가고 싶다. 진짜 자연스러운 ‘돼지’의 모습을 두 눈에 담아오고 싶다. 돼지 같다는 말을 쉽게 욕으로 쓰는 사람에게, 진짜 돼지의 삶에 대해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새벽이생추어리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dawnsanctuary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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