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6. 울타리 안과 울타리 밖의 경계에서


    너에게 편지를 써.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너에게. 네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기억들을 마구 꺼내어서 내 작은 방에 무지막지하게 쏟아 놓는 기분이야. 그렇게 쏟아 놓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도 떠오르곤 해. 그 만남이 무척이나 반가워서 이렇게 자꾸 네게 편지를 써. 나중에 정리하는 게 아무리 고된 일일지라도 말이야.

    오늘은 사실 몸이 무척 아팠어. 아프다 보니 차갑던 네 방이 떠오르지 뭐야. 오랜만에 찾은 네 방은 벽이 깨끗했어. 우리가 함께할 때는 낙서와 담뱃진으로 벽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아마 도배를 새로 한 모양이더라고. 함께한 시간이 기록된 벽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거니? 새로운 마음으로 네 삶을 꾸려가고 싶었던 거니? 어떤 이유든 이제는 알 수 없겠지. 그 깨끗하고 하얀 벽은 차가운 네 방을 더 차갑게 느끼게 하더라. 이 차가운 방에서 혼자 아팠을 널 생각해. 그런 너를 생각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져. 아니, 감정이라기보다는 감각이야. 통각이지. 내 마음속에 정리되어 있던 통각 하나가 툭 튀어나와 버리는 거야.

    너는 나와 함께할 때 자주 아프진 않았어. 한번 아플 때 크게 앓았지. 한번은 일어날 수도 없을 만큼 허리가 크게 아픈 날도 있었어. 너는 대단하게도 그런 몸을 일으켜 출근하고 병원에 갔지. 병원에 가보니 척추분리증이라는 진단을 받았어.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그 몸을 가지고 너는 출근을 하고 나와 함께 집안일을 하고……. 나는 그런 네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었어.

    네게 해줄 수 없는 것들, 그 시간, 그 마음, 그 안타까움. 나는 정말 온몸과 온 마음으로 너를 사랑했나 봐. 이렇게 말로 쓰기에도 어색할 만큼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말이야. 당연하지 않은 말들로 너를 기억하고 싶어. 내 안의 말들이 전부 허무하게 흘러나오는 것만 같아서. 그렇게 허무하게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널 담아둘 수 있는 말들로 기억하고 싶어. 이를테면 말이야, 너와 나는 잉크를 나눈 사이였다는 말처럼 말이야.

    우리는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었지만, 잉크를 나눈 사이였지. 서로의 앞날을 함께 써 내려가고 그려갔어. 가족보다 더 가까웠고 누구보다 더 애틋했어. 함께 자고 밥을 지어 먹고 그렇게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어. 심지어 일터도 같은 건물이었고, 점심시간에는 함께 만나 밥을 먹었지. 함께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함께했어. 누구보다 가까운 사이였지만 세상이 보기엔 아니었지. 우린 서류상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상관없었어. 우리는 우리만의 세상이 있었으니까. 그 아늑한 둥지 안에서 서로에게 속닥였지. 널 사랑해, 널 많이 아껴, 우리 이렇게 앞으로도 숨어 있자. 그렇게 숨어 지낸 지 4년쯤 지났을 때 그 일이 벌어진 거야.

    입영 영장이 날아왔어. 너는 그렇게 군대에 갔지. 거기까진 그래도 견딜 만했어. 네가 또다시 크게 아프기 전까지는 말이야. 이번에는 몸이 아픈 게 아니었어. 너는 어느 날 갑자기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지. 마지막 외박 때였어. 전역을 불과 한 달 반 앞둔 시점이었고, 우리는 전역 후의 일들을 계획하고 있었어. 그런데 그날 부대에서 멀리 걸어오는 널 보는데 느낌이 이상했어. 어쩐지 다른 사람 같은 네 모습. 그리고 마침내 널 만났을 때, 나는 더 큰 혼란에 빠져버렸지.

    평소의 너는 말투가 나른하고 조용조용한 사람이었는데 그날의 너는 목소리가 무척이나 크고 말투가 강했어. 거기서부터 이상했어. 위수지역으로 가는 택시 안에서 나는 네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너는 계속 내게 뭔가를 떠들어댔지. 나는 내 귀 너머로 고요하게 들리는 네 숨소리와 차근차근하게 들리는 말들을 사랑했어. 하지만 그날의 너는 네 숨소리가 들리지 않을 만큼 말들을 쏟아냈어. 쏟아져 나오는 말들에 압사당할 지경이었지. 나는 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마침내 숙소에 도착해서는, 너는 그 말을 꺼내고 말았던 거야. 중간중간 스스로가 생각해도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을 섞어가며.

    “너한테 처음으로 이야기하는 건데, 나 아무래도 신인 거 같아.”

    나는 얼떨떨한 기분이었어. 장난이나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말이라기엔 네가 너무 진지해서. 그 앞에서 차분히 반박하려 했지만, 너한테는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았나 봐. 계속 이상한 말들을 쏟아냈어. 저 하늘 위에는 세 명의 신이 있다느니, 그중 하나가 자기 아버지라느니 등등의. 나는 계속해서 네게 반박을 시도했어. 너는 결국 벽을 쾅쾅 치고 내게 화를 냈지. 왜 자기 말을 믿어주지 않느냐며 말이야. 냉장고를 발로 차고 휴지 곽을 바닥에 던졌지. 네게서 그런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어. 나는 그 앞에서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몰랐어.

    그날 너는 밤새 떠들었어. 잠도 안 자고 쉬지도 않았지. 나는 화장실에서 망상 대처법을 검색했어. 반박하려 하지 말고 그냥 흘려들으면서 재우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 나는 그 대처법대로 네 말을 흘려들으면서 널 재우려 애를 썼어. 나도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봐. 잠결에 방을 돌아다니는 너를 느꼈고, 너는 쉴 새 없이 허공에 무언가를 떠들고 있었어. 일어나서 너와 함께 밥을 먹고 너를 복귀시켰지. 네가 부대에 복귀하고 나자 나는 온몸에 진이 빠져버렸어.

    기억나니? 그 모든 일이. 너는 나중에 내게 그때의 일을 이야기하며 지금의 내가 힘든 것에 자기 탓도 있다면서 자책하곤 했어. 자책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나는 내심 네 탓을 하고 있었어. 너와의 시간 중 힘들었던 일들을 자꾸 꺼내어 곱씹고 헤집었지. 사실 날 힘들게 한 건 네가 아니었어. 인정받지 못한 우리였지.

    널 군 병원에 입원시키는 과정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어. 나는 서류상 네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우리는 애틋하게도 매일 편지만 주고받을 수밖에 없었지. 널 입원시키던 날의 햇빛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약에 취해 있는 너. 너는 내게 왜 담배를 가져오지 않았냐며 나무랐지. 그런 너를 바라보면서, 약해져 있는 너를 보면서 다시 한 번 나는 느꼈던 거야. 우리는 잉크를 나눈 사이였지만 피를 나눈 사이는 아니라는 것을. 세상이 보기에 우리는 그저 평범한 연인일 뿐이라는 것을.

    너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싶었어. 또 네가 내 울타리가 되어주길 바랐지.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어. 할 수 있는 게 없는 우리.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마음으로 쓰다듬어주는 일 밖에는 못했지. 무너져가는 황폐한 울타리 안에서 다친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일 밖에는. 나는 열심히 네 몸을 핥았어. 네 아픈 몸을 여기저기 살피며. 너는 그런 나를 꼭 안아줬지. 살집이 있었던 네 품은 말랑했어. 네 여린 마음처럼 말이야. 그 품이 너무 좋아서 그만 네게 스며들고 싶었어. 그 마음은 지금도 같아.

    그런데 외려 스며든 건 내가 아니라 너였네. 네가 떠난 그 날부터 너는 내게 스며 있어. 너와 나는 드디어 하나가 된 거야. 그토록 우리가 바라던 하나가. 나는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너를. 나와 하나가 된 너를. 하나가 되어버리니 더는 너를 만질 수 없게 되었지.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나는 울지 않네. 그런 내가 조금은 이상하지만. 어쩌면 내가 이 편지를 다시 읽게 된다면 그땐 울지도 몰라. 어쩌면 네게 그제야 이 편지가 전달된 걸지도 모르지.

    군대 이야기를 오랜만에 하다 보니 네가 당시에 내게 해줬던 이야기가 떠오르네. 행군하다 구름을 보면 그 구름에 문을 하나 그려 넣었댔지. 그 안으로 들어가면 우리가 자주 가던 레인보우 모텔이 있는 상상을 했다고. 우리는 그곳에서 같이 깨 벗고 웃고 놀고 떠들고 먹고 마시고 울었지. 최근에는 나도 구름을 볼 때면 그곳에 문을 그려 넣기 시작했어. 문으로 들어가면 네가 있는 거야. 그럼 나는 다시 말랑한 네 품에 안기는 거지. 아, 상상만 해도, 상상만 해도. 따뜻한 네 숨 냄새가 여기까지 나는 것 같아서.

    그립다는 표현은 마음에 들지 않아. 나의 말로 너를 기억하고 싶어. 너와 함께 그린 그림의 잉크가 말라가는 게 안타까워. 잉크가 마르지 않게 그 위에 계속해서 선을 덧대고 있어. 아직 그림이 완성되지 않은 것 같은데. 잉크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어. 이러다가 잉크가 똑 떨어져 버릴까 봐, 그럼 더 이상 우리의 시간이 흐르지 않을까 봐 무서워. 너를 기억하지 못할까 봐, 내 삶에서 정말 너라는 존재가 완전히 사라질까 봐.

    그러나 다 마른 그림은 내 안에 영원히 남아 있을 거야. ‘영원히’라는 단어가 참, 참 그래. 우리는 그 말을 참 자주 나눴잖아, 그렇지? 너와 함께 가 아니라면 난 ‘영원히’라는 단어를 영원히 꺼내지 못할 것만 같아. 우리를 수식하는 말이 아니라면 말이야. ‘영원’이라는 단어를 믿어서가 아니었어. 그저 우리의 간절한 바람이었지. 제발, 영원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게 우리의 시간이기를 바라는 마음.

    이번 생에서 우리의 시간은 끝이 났지만 어딘가에서 우리의 시간은 다시 흐를 것이라 믿어. 우리의 울타리는 보이는 게 아니어서 무너지지 않을 거야. 그 울타리 안에서는 잉크가 마른 그림들과 새롭게 그려진, 그려질 그림들이 모여 있겠지. 지금의 나는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로 이렇게 편지를 써 내려가는 것 밖에는 못하지만, 그때가 된다면 우린 다시 신나게 펜을 잡을 거야. 엎드려서 다리를 까딱거리며 형형색색의 색깔들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함께.

    그곳에서 너는 지금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겠지? 늘 그랬듯이. 너는 수백 점의 그림을 남겼어. 지금도 네 그림을 보곤 해. 시간이 날 때마다 너를 만나는 방법이야.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던 그림들도 이제는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나에게 말하지 못했던 네 외로움을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 외로워진 지금에서야 조금.

    결국 네게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왜 이 편지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잉크를 덧대기 위한 편지였을 뿐일까, 아니면 내게 남기는 혼잣말인 뿐인 걸까. 나는 텅 빈 공간에 이렇게 남아 있어. 내 뱃속 깊은 곳이 막 찡하게 울리는 느낌이야. 이제 꺼낸 기억들을 다시 정리할 시간이 온 것 같아. 정리하기 전에 늘어진 기억들 사이에 푹 하고 엎어져보려고. 그리고 그 속에서 네 숨 냄새를 맡아보려고. 다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너의 숨을 느껴보려고 해. 아마 그 순간에는 눈물이 날 것 같아. 마른 잉크는 그제야 적셔지겠지. 그림은 다시 살아날 거야. 너는 살아나지 않지만. 널 보고 싶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이지만, 이렇게밖에는. 널 보고 싶다. 널 사랑해. 사랑해. 잉크로 덧써본다. 사랑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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