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 #4. 기르는 것과 함께하는 것의 경계에서

    “아가씨, 강아지 데리고 타면 안 돼. 못 타, 못 타.”

    버스 기사 아저씨는 손을 휘휘 젓는다. 순간 이동장 안에 있는 만지가 너무 불쌍해진다. 아니, 만지를 불쌍하게 만드는 건 나였다. 기사 아저씨 앞에서 한 마디도 못하고 버스에서 내리는 내가 만지를 불쌍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만지의 존재가 부끄러운 것도 아닌데, 나는 이런 순간마다 이상하게 작아진다.

    한번은 만지와 산책을 하다가 이런 일도 있었다. 만지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예쁜 외형을 지니지 않았다. 새까맣고 다소 푸석한 털에 긴 허리, 투박하게 짧은 다리를 가지고 있고 주둥이는 얼굴에 비해 지나치게 두껍고 길다. 귀는 예쁘게 접히거나 서 있지 않고 반쯤만 어색하게 접혀 있다. 그런 만지를 보고 지나가던 아이들이,

    “못생긴 개다, 못생긴 개야. 저기 있는 예쁜 개 보러 가자.”

    하고 만지를 놀린 것이다. 아이들은 곧 근처에 예쁜 말티즈에게 갔다. 아이들이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니 그냥 흘려들을 수도 있겠지만 그 말은 이상하게 내 가슴에 박혔다. 아이들한테 받은 상처는 아니었을 것이다. 오늘 버스에서 탑승을 거절당하며 내가 만지를 불쌍하게 했듯이, 아이들 앞에서 한마디도 하지 못한 나 자신의 모습이 상처였다.

    왜 난 만지를 바라보는 사람들 앞에서 작아지기만 할까. 영문도 모르는 만지는 이동장 안에서 날 바라본다. 눈빛이 까맣게 빛난다. 천진난만한 저 눈빛. 아무것도 모르는 그 표정 앞에서 나는 늘 복잡한 마음이 든다. 책임감과 애틋함과 사랑스러움과 미안함과 그 모든 것이 뒤엉킨 감정들.

    결국 버스를 포기하고 지하철을 탄다. 멀리 돌아가는 길이지만 어쩔 수 없다. 6kg이 넘는 이동장을 들고 지하철 계단을 오르내리고 나니 외출 한 번에 진이 빠진다. 집에 오자 온몸에 땀이 흐른다. 그렇지만 바로 쉴 수는 없다. 만지의 발을 닦이고 만지에게 물을 챙겨주고 나서야 나는 샤워를 했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문 앞에 만지가 서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의 만지. 저 무해하고 순수한 표정에게 나는 손을 내민다. 좋다고 배를 보이는 만지의 배가 뽀얗다. 까만 털의 만지지만 배 옆부분과 앞가슴의 털은 하얗다. 다소 투박한 겉모습과 달리 여리고 순수한 만지의 속내처럼.

    침대에 엎어져 핸드폰을 만지는 내 옆으로 만지가 폴짝 튀어 오른다. 내 허리에 턱을 괴고 내 다리에 턱을 괼 때까지도 내가 기척을 안 하자 내 어깨에 턱을 괸다. 그리고 잠시 뒤에 규칙적으로 만지의 턱이 오르락내리락 한다. 아마도 꾸벅꾸벅 조는 모양이다. 그 모습이 연상되고 귀여워서 핸드폰을 보는 내 입 꼬리가 올라간다.

    그날 밤에는 꿈을 꾸었다. 만지가 나오는 꿈이었다. 꿈속에서 만지는 두 발로 걸었다. 얼굴은 만지의 얼굴 그대로였으나 어딘지 모르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만지는 내게 무슨 말을 건네려 하였으나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만지와의 이별은 그로부터 멀지 않은 시점에 찾아왔다. 만지가 가끔 하던 잔기침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어느 날에는 기침을 매우 심하게 했고 동물병원에 가보니 심장이 무척이나 안 좋아진 상황이었다.

    입원과 퇴원, 약물치료에도 불구하고 만지는 곧 세상을 떠났다.

    -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편지를 보내요. 엄마, 제 세상은 엄마로 가득 차 있어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리디여린 제가 의지할 곳은 엄마뿐이었는걸요. 우리 강아지들은 태어나서 1년간의 시간을 평생 기억한다고 해요. 제 기억 속의 엄마는 저를 예뻐하는 모습이에요. 귀여워하고 예뻐하고 사랑스러워하고 칭찬하고. 물론 혼난 기억도 있지만요,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에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강아지로서의 삶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기다리는 일은 세상에서 제일 견디기 어려운 일이죠. 게다가 저희 강아지들은 시계를 볼 줄 모르니까요. 기약이 없는 기다림이 저의 일상이었어요. 버림받는 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매일 버림받는 듯한 우울함을 느꼈어요.

    알아요. 엄마도 저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는 것을. 저에게 괜히 화를 낸 적도, 저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한 적도 있었어요. 산책을 거의 하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어요. 그래도 엄마, 저는 단 한순간도 엄마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은 없었어요.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엄마도 저의 마음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엄마가 저를 바라보는 눈빛을 떠올려보면 그래요. 저를 바라보는 사랑과 연민이 뒤섞인 눈빛. 엄마는 저를 자주 안쓰러워했어요. 그리고 또 가끔은, 저에게 애증의 감정을 품었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 모든 감정은 지금의 엄마에게 흔적처럼 남아 있을 거예요. 그 흔적들이 부디 엄마를 아프게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어요. 좋은 기억들만 간직하고 있기를, 그리움은 있겠지만 고통으로 남지 않기를.

    엄마에게 남긴 것이 전부 좋은 것들이기를 바라요. 저는 강아지라서 엄마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전하지 못했어요. 늦은 게 아니길 바라면서 오늘은 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을 엄마에게 전하려 해요.

    제가 살아가면서 엄마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것은 기쁨이에요. 저라는 존재가 엄마에게 기쁨이기를 그 무엇보다 간절하게 원했죠. 엄마의 삶이 힘들었다는 걸 알아요. 가끔 어느 밤이면 엄마는 혼자 훌쩍이곤 했죠. 일상을 살아갈 힘조차 없어서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엄마 옆을 제가 지키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저를 산책시키기 위해서 무거운 몸을 일으킨 고마운 엄마.

    저는 그런 엄마에게 기쁨이 되고 싶어서 엄마를 자주 쳐다보고 애교를 부리고 엄마가 원하는 행동을 했어요. 때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죠. 그렇지만 엄마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잠시라도 웃음 짓는 엄마를 보면 그 모든 일이 저에게는 보상처럼 다가왔어요. 물론 간식을 받아먹을 때도 기뻤지만요, 헤헤.

    제가 엄마 앞에서 엄마에게 온몸으로 행동할 때는 기쁨을 주고 싶을 때 말고도 많은 이유가 있었어요. 그중 하나는 위로였어요. 힘든 엄마에게 제 작은 존재가 위로가 될 수 있기를 바랐어요. 어쩌면 너무 큰 욕심이었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엄마가 울 때면 옆에서 낑낑대던 저를 기억하시나요? 우리는 서로 언어를 나눌 수는 없었지만 저는 온몸으로 엄마를 느끼며 살았어요. 엄마 또한 때로는 저를 온몸으로 받아들였다는 걸 저는 느낄 수 있었어요. 가끔 엄마가 가만히 있는 저에게 말을 건넬 때, 마침 배가 고프고 목이 마를 때 배고프냐고 목마르냐고 물어봐주고 밥과 물을 줄 때, 쓰다듬어지고 싶을 때 쓰다듬어지고 싶은 부분을 정확히 쓰다듬어줬을 때.

    우리는 온몸으로 서로를 느끼고 안았어요.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어요. 우리의 입은 말을 하기 위해 서로에게 존재하지 않았어요. 서로를 핥아주고 뽀뽀해주기 위해 존재했죠. 엄마에게 뭔가를 전하고 싶을 때 저는 엄마를 핥았어요. 위로, 사랑, 소통 그 모든 것들을 저의 입으로, 저의 방식으로 표현했죠.

    기쁨과 위로. 우리의 소통은 언제나 따뜻한 색이었어요. 몽글몽글한 구름 같은 기운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죠. 가끔은 엄마에게서 찌릿찌릿한 전기 같은 기운이 날카롭게 뻗어 나와서 저를 아프게 한 적도 있지만, 그것도 엄마인걸요. 무엇보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우리 엄마. 어쩌면 구름에 번개가 치듯, 그렇게 아주 가끔 우리 사이에도 번개가 쳤던 걸지도 몰라요.

    엄마를 번개로부터 지켜주고 싶었어요. 엄마를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어요. 제 몸은 작지만, 엄마를 향한 제 마음은 누구보다 컸는걸요. 문밖에 누군가가 서 있을 때는 온 신경을 문밖으로 쏟았어요. 문을 두드리기라도 하면 그 소리는 천둥소리 같았어요. 그래서 있는 힘껏 짖었어요. 저리 가라고, 우리의 안전한 구름 속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천둥번개로부터 엄마를 지켜야 해요, 저는.

    기쁨, 위로, 지켜주고 싶은 마음. 그 모든 것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랑일 거예요. 엄마, 저는 엄마를 사랑해요. 어째서 엄마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엄마가 우리 엄마니까요. 비록 날 낳아준 엄마는 아니지만 날 먹이고 기르고 함께 걸어갔는걸요.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저는 사랑에 빠졌어요. 그래서 엄마 품속을 파고들었죠. 그리고 엄마는 그런 저를 꼭 안아주었어요.

    엄마, 제가 떠난 지금 엄마는 어디서 기쁨을 얻나요. 어디서 위로를 받고 누가 엄마를 지켜주나요. 그런 생각을 하면 너무나 슬퍼져요. 제 쫑긋 선 귀가 아래로 축 쳐져요. 구석에 가만히 엎드려서 우울해하던 제 모습처럼요. 엄마 곁을 언제까지나 지켜주고 엄마를 언제나 반겨줄 존재는 나뿐인 것 같은데. 적어도 제가 엄마 옆에 있었을 그때에는 그랬던 것 같은데.

    엄마 옆에 사랑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엄마는 늘 외로워 보였거든요. 가끔 오랜 친구와 통화를 할 때를 빼고는요. 제가 떠나며 엄마 옆에 남기고 간 것에 좋은 기억뿐 아니라 사랑도 있기를 바라요. 저의 사랑이 남아서 엄마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고 지켜줬으면 좋겠어요.

    아, 제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엄마한테 아직 말하지 못했네요. 이곳은 매일 신나는 일투성이에요. 흙냄새를 마음껏 맡고 여기저기 마음껏 뛰어다닐 수 있어요. 먹을 것은 항상 풍족해요. 아프지도 심심하지도 않은 세상이에요. 천둥번개도 치지 않고, 비도 오지 않아요. 언제나 10월의 서늘하고 맑은 날씨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제일 좋은 건, 엄마가 보고 싶을 때는 언제든 엄마를 볼 수 있다는 거예요! 기다리지 않아도 저는 언제든 엄마를 찾아갈 수 있어요. 엄마는 저를 볼 수 없겠지만 저는 그런 엄마 옆에 다가가서 턱을 괴고 누워있기도 하고 꼬리를 치며 엄마를 핥아주기도 해요. 가끔 엄마가 자고 있을 때는 옆에 가서 잠을 청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니까 엄마, 제 걱정은 하지 말아요. 엄마 옆에 사랑을 더 많이 만들고 키우고 간직해주세요. 엄마와 제가 함께한 시간처럼요. 그리고 지금도 함께하고 있는 것처럼요. 제가 엄마에게 가장 전하고 싶었던 건 사랑이에요. 사랑. 사랑하는 마음. 사랑받는 기분. 사랑을 나눈다는 것. 사랑을 느끼는 것. 사랑의 따뜻한 온도.

    말하고 말해도 부족한 마음. 사랑해요. 지금 제 꼬리를 보여줄 수 없는 게 너무 아쉬워요. 헬리콥터처럼 흔들리고 있어요. 엄마는 제게 그런 존재예요. 제 귀를 쫑긋 세우고 제 꼬리를 흔들고 저를 웃게 하는 존재. 언젠가 엄마가 제가 있는 이곳으로 올 때 이 아쉬운 마음들을 전부 담아서 힘껏 엄마에게 달려갈게요. 엄마, 그러니까 엄마도 조금만 기다려줘요. 우리가 다시 같이 이 들판을 뛰어다니는 그날까지. 사랑해요. 사랑해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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