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있는 말 by 홍지연

 

   쓰고 있는 말 

홍지연

   10년 전 일기에서 쪽지를 발견했다
   빛바랜 종이 한 장에 꾸역꾸역 쓴
   쏟아질 것 같은 글씨
   그날부터 계속하고 있는 너의 말


   의연에게
   내가 너에게 보내는 말과 네가 받아서 읽는 말의 시간차에 대해 생각해 모든 게 깨어나는 새벽에 근심과 걱정을 담아 너에게 편지를 쓰고 있어 이 말이 너에게 닿을 때는 모든 일들이 일어난 다음일까? 
   쉬지 않고 죽어가는 나무들에 대해 생각해 너무 더운 아니 너무 추운 날씨에 대해서도 집을 잃은 철새들에 대해서도 차라리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어항 속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물이 새어나가는 어항 속이라고 그럼 온몸을 끼워 맞춰서라도 틀어막을 텐데
   네가 이 글을 읽을 때, 이미 벌어진 막지 못한 일들에 대해 생각해 아니 막지 않은 거겠지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굉음 속 세계에 대해 밟혀 죽어가는 것들에 대해 


   외면했던 너의 말을 이제야 듣기 시작했다
   이미 벌어진 일들을
   붙잡아야 할 일들을

 


* 이 시는 희음이 기획하고 마포문화재단이 후원한 <아래로부터의 백일장>을 통해 창작되고 환대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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