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 이불 by 김선주

 


소라 이불

 

 

김선주

 

 

이불이 파도처럼 소라를 덮쳤다
엎드린 소라

소라가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동안 하루가 다 갔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소라의 하얀 발가락
망가뜨리고 싶었다
대신 아이의 발가락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소라의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는 것, 엄마의 권한, 엄마들은 턱을 더 높이 들고
아이들의 원망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아이들은 쉽게 죽었다
소라는 이미 이름 붙여진 날들을 너무 많이 통과해 온 기분이었다
그 이름을 찢고 자르고 박음질하여
전혀 다른 이름으로 탄생시켰다

이불이 이불을 낳고
소라와 닮은 소라를 기르고
이불과 소라를 덮고 자는 작은 이마, 아직 채 구겨지지 않은 점토
흔한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커지는 풍선처럼
아이는 조금씩 자랐고 다시 줄어들었다

소라는 또다시 이름 붙여질까 봐 불안에 떨었다

이불을 들추면 영혼이 다친 아이가 나처럼 울고 있을 거야
그러니 꼭꼭 감출 것이다
소라는 생각했다

밖에서 불어오는 바보 같은 이야기들… 그리고 소라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우는 건 두렵지 않았다
소라의 안이 텅 빈 파도 소리로만 기억될까 그것이 두려웠지
지나친 이름들로부터 지켜낸 소라들을 목걸이로 만들었다 걸을 때마다 찰랑찰랑 소리를 내는 껍데기들

불확실한 꿈들을 연속해서 꾸었다

자고 일어난 소라의 앞에는 
하얗고 작은 단추를 입술 속에 감춘 존재가 웃고 있었다

 

 

 


* 이 시는 희음이 기획하고 마포문화재단이 후원한 <아래로부터의 백일장>을 통해 창작되고 환대받은 작품입니다.

'주말엔 일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벌레와 예술 by 혜수  (0) 2021.11.13
쓰고 있는 말 by 홍지연  (0) 2021.11.06
보통의 가족 by 김라면  (0) 2021.10.10
당신의 첫사랑 by grun  (0) 2021.07.17
흰배지빠귀 by 김라면  (0) 2021.05.01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