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어로
정수
검은 바닷속으로 몰래 사라진다면 어떨까
유례없이 꼼꼼한 계획을 세웠다.
나를 찾진 않겠지만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나는 없지만 있는 듯하고 싶었다.
언제나 나는 죽음을 탐하고 죽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신뢰하지 않았다.
가만히 웃고 있으면 나는 사라졌다.
투명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 담고
언제나 나쁜 것을 믿었고
내 진심은 거짓이 되었고
모든 감정을 당기고 밀어냈다.
내 믿음은 비었고 실망만 내 것이다.
함께 죽음을 말하고 싶었다.
나는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남겨진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나는 언제나 쓸쓸해 보였다.
나는 언제나 걸으면서 습관처럼 울었다.
거리에 하나들이 많을수록 크게 울었다.
늘 젖어 있는 텅 빈 손
그런데 내가 정말 하나였던 적이 있었어?
가만히 울음을 멈추고 다짐할 때마다 모르는 사이에 주변에 있던 또 다른 하나가 슬그머니 등장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필살기 없는 히어로처럼.
내 빈손을 가득 채워줄 준비를 하고.
내 손을 잡아 준 너의 손은 나와 꼭 맞았다.
그렇게 내 손은 수많은 너와 닿았다.
우리는 손아귀가 빨개지고 끝내 하얗게 변하고 투명해져
흘러내릴 때까지 꽉 손을 잡았다.
손이 사라질 때까지.
* 이 시는 희음이 기획하고 마포문화재단이 후원한 <아래로부터의 백일장>을 통해 창작되고 환대받은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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