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스스로 찾아낸 세상

 

    내가 글을 쓴다는 걸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나를 응원했다. 물론 면전에 대고 네 수준에 무슨 연재를 하느냐고 말할 수는 없겠지. 하하. 하지만 나도 사람이다.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다. 다들 내 도전을 진심으로 기뻐해주었다.
 

    그러니 여러분, 나처럼 똥을 싸라. 농담이고, 시도를 해봐라. 뭐든지 일단 해야 한다. 혹시라도 나처럼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고 늘 비관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면, 또는 우울증에 오래 시달렸다거나 만성 불안으로 일상생활에서조차 어려움이 있다면, 내가 지금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게 뭔지를 꼭 생각해봐야 한다. 이런저런 의심, 부정적인 생각이 피어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재미있을 것 같고, 기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면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로 그걸 해야 된다.

    ‘내가 왜 태어났지’, ‘이럴 거면 왜 살지’, ‘진짜 다 X같다’ 이런 생각보다는, ‘뭘 해야 이 기분이 나아질까? 나는 그걸 찾아낼 거야’ 같은 생각이 필요하다. 이런 말이 재수 없게 들릴 수도, 허무맹랑하게 들릴 수도 있다. 그런데 내가 겪은 바로는 저것 말고는 정말 답이 없다.
 

    법륜스님이 말씀하시길 왜 사느냐는 물음, 내 존재에 대한 의미를 찾는 물음은 답이 없다고 하셨다. 내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 이미 태어나 있었기 때문에, 즉 존재가 사유(‘왜?’라는 의문)보다 먼저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성립이 안 되는 질문을 가지고 억지로 머리를 싸매니 자살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흐르기 쉽다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멋진 말이 있다. 나는 결국 사유로 존재를 앞질러 보려다가 제 꾀에 된통 당해버렸다. 불안이 몸까지 망쳐버려 어떤 약도 듣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이렇게나 무섭다. 내 불안정한 정신의 꼭두각시가 되어 살았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투명 안대를 쓰고 삶을 살았던 것 같다. 후회는 의미가 없다지만 여전히 아쉬운 마음이 든다. 나의 마음이 7살 어린아이에서 자라지 못했을지언정, 그 미성숙함을 인지하는 또 다른 내가 나를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마땅했다.

    나를 비롯한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이들에게, 우리는 이 시점에서 자신을 미워하거나 한심하게 보지 않도록 조심해야 된다. ‘어쩌라고 마인드’를 장착하고, 과거는 cool하게 넘겨버려야 한다.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지금의 나 자신과 주변의 상황을 최대한 냉정하게 파악한 뒤 앞으로 걸어 나갈 초석을 쌓는 게 중요하다.

    요즘 읽는 책 『스톱 씽킹』에서도 비슷한 맥락의 이야기가 나온다. 나의 부정적인 생각이 부정적인 기분을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우울해서 비관적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언제부터인지 나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이런 저런 상황에 의해서 자꾸 비관적인 생각에 빠지다보니 우울감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됐다는 논리다. 심리 역학이 그렇다고 한다. ‘감정’은 반드시 ‘생각’으로부터 나오게 되어있다고. (저자 리처드 칼슨이 심리학자이니 믿어볼 만하다.)

     그러니까 나는 우리가 부정적인 기분에 빠지거나 삶이 힘든 때일수록 흔히 말하는 좋은 생각, 기분 좋은 활동에 몰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런 글을 적어 내려가는 나 역시 매일 나를 위한 일보다는 남의 기분을 만족시키기 위한 일에 쉽사리 매혹된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특히 그것의 무대가 한국이라면 나 자신을 축소시키는 것이 나를 위한 생각을 하는 것보다 더 간단하다.

    이쯤에서 2020년 하반기부터 2021년 상반기까지 학원에 다녔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쩌다보니 3D조형학원을 다녔는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 머릿속 관념공장에 환기구를 내어줬고, 결국 앞서 말한 ‘나를 위한 일’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학원을 등록했던 당시 나는 정신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했던 친구의 죽음을 막 겪은 상태였다. 마음의 길을 잃고 집에만 박혀 있다 코로나로 인해 집에서 쉬고 있던 언니를 따라 홀린 듯 사업자까지 내버렸다. 이미 일을 저질렀으니 핸드메이드 제품을 판매하기로 결정하고 그것에 활용할 기술을 배우기 위해 급하게 학원을 찾은 것이다.

    나는 그 학원에서 생애 처음으로 다양한 인생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조형을 배워 삶의 새로운 길을 꾀해보기 위해 찾아온 직장인도 있었고, 본래 조형에 관심이 많아 파트타임 일을 하며 배우는 사람도 있었으며, 이미 관련 사업자를 가지고 심화적인 기술을 익히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다. 또한 본래 이런저런 분야에 관심이 많아 호기심으로 조형을 배워보러 온 사람도 있었다.

    그동안 나는 회사에 다니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며 살았고, 조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을 매우 한심하게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삶의 모습을 갖고 있었다. 인생에 있어 선택지는 단 한 가지뿐이라고 믿었던 내게 그곳 사람들과의 소통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 것이었다.

    나는 애초에 성격에 맞지 않게 충동적으로 사업자를 냈기 때문에 목적이 매우 불명확했다. 학원을 다니고 처음 몇 달 동안은 이곳에서 배운 것이 헛되이 되지 않도록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런데 학원 동기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뚜렷한 목표가 있는 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과연 학원을 다니면서 진정 완성해야만 하는 것이 있는가? 나의 환상은 아닐까? 그냥 재미로 다녀도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중압감으로 지지부진했으나, 재밌게 하자고 마음을 먹은 뒤 끝내 나는 우수수강생으로 상장을 받았다. 월등하게 잘해서 받은 게 아니라, 처음과 비교했을 때 발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생각의 변화를 겪은 뒤 ‘진솔한 나 자신의 모습’을 보았고, ‘그 모습’으로 과정에 임했으며, ‘그 모습’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은 것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를 결과물을 내야 하는 책임감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는 것을 하고 기뻐하는 내 모습’ 말이다.

     그리고 그 기분은 정말 끝내줬다. 한 사람이 백만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짧은 글 몇 편으로 모두 설명하기엔 부족하지만, 어쨌든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 순수한 순간은 많지 않았다. 엄마의 기대, 세상의 눈초리, 내면의 비판자… 그것들과 함께 살아오면서 내 마음은 늘 무거웠고 ‘나’는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글을 쓴다. 집에는 학원에 다닐 당시에 구매한 60만 원짜리 3D프린터까지 있지만 종강 이후에는 손을 댄 적이 별로 없다. 스토어는 개설했지만 어떤 것도 판매하고 있지 않다. 사실상 내 계획은 모두 무산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그러나 학원을 다녔던 것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그곳에서 공부할 때 무척 재밌었고, 적성에 잘 맞았으며, 다양한 삶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를 표현하는 창작활동을 삶의 주(主)로 두기 위해 9 to 6인 회사를 그만두고 1 to 6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만의 생활 루틴을 만들었고, 아침과 저녁에 반드시 작업 시간을 갖는다. 비록 이러한 삶의 모습이 안정적인 재정 상태와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내가 선택해서 만든 나의 영역이기 때문에 어떠한 기준 범위 바깥을 아우른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그것을 느낄 때 나는 삶의 따스한 다채로움 안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러나 내게는 30년간 다져온 삶의 기준이 있다. 창작활동이 제아무리 재미있을지라도 내가 원하는 것만 하면서 살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한 번에 자유로워지기는 어려운 것이다. 잘못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루에도 몇 번씩 괴로운 날이 있다. 그럼 나는 다시 또 되뇌어본다. 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니라, 충만한 기쁨이라는 섬을 찾아나가는 어느 배의 선원이 된 것이라고. 그리고 나는 결국 선장이 되고 말 거라고. 누군가에게 빌린 배가 아니라, 내 이름이 박힌 나의 배를 타고, 나의 손때가 뭍은 핸들로 삶이라는 바다를 항해할 거라고.

댓글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