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화. 오늘보다 더 나다울 내일의 세상

 

 

    「나에게도 자유가 있으리라. 하지만 자유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또한 나는 많은 통제와 구속 안에 있기도 하다. 그것은 내 안의 자유를 인지하기 전부터 지속되어온 관습적인 측면이다. 

    이미 뿌리내린 것을 뽑아내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이런 어지러운 정원에는 전문 정원사를 두면 딱 좋겠지. 좋은 건물을 구경할 때면 언제나 따라오는 훌륭한 조경처럼 멋지게 가꾸는 거야. 그러나 곧 나의 정원에는 조경 업체가 낄 만한 예산이 충분치 않다는 생각이 씁쓸하게 피어오른다. 

     내게 있는 통제라는 식물, 그것은 잎사귀의 테두리를 따라 미세하면서도 날카로운 가시를 가져 장갑 없이는 함부로 다듬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장갑은 나만이 만들 수 있다. 모든 이들의 정원에는 각기 다른 생김새와 특징을 가진 식물들이 산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방법도 가지각색이다. 가령 일주일에 한 번씩 자리를 옮겨주어야 하는 식물인 경우 한 번에 뿌리까지 퍼낼 수 있도록 적절한 사이즈의 삽이 필요한데 그 역시 정원의 주인이 직접 만들어야 한다.

    통제의 식물을 다듬기 위해 장갑을 만드는 일은 매우 복잡하다. 명상, 숫자 세기, 걷기 같은 집중을 돕는 활동이 먼저 선행되어야 하며, 집중을 한 뒤에는 차분히 재료를 모아야 한다. 과거에서 안감을 얻고, 미래에서 겉감을 얻으며, 현재에서 실과 바늘을 얻는다. 마무리는 내 힘이 결정한다. 여기에서 선행 활동으로 만들어 둔 집중력이 쓰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연료가 되어 통제라는 식물의 가시가 얼마나 날카로운지 가늠할 수 있게 한다. (그 식물의 가시는 때에 따라 굵기와 길이를 달리한다. 아주 변덕스러운 식물이다.)

     적어보니 간단한 일처럼 보이지만 놀랍게도 나는 30년 생애 동안 장갑 만들기를 단 한 번 성공하였다. 그 밖에는 매번 선행단계에서 무너졌다. 그러므로 내게는 장갑을 만드는 일보다 만들지 못한 채 무너지는 일이 더 익숙하고, 정답처럼 느껴진다. 나는 자유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장갑은 자유를 상징한다. 여기저기 구멍이 뚫리고, 안감이 보일 때까지 닳아버린 장갑이 훈장처럼 걸려있는 정원도 있다. 그런 곳에서는 자유의 공기를 맛볼 수 있다. 자유는 때가 되면, 방향을 알 수 없는 바람처럼 사방에서 밀려와 우리의 주변에 머물고 더욱 신선하게 숨 쉬도록 돕는 그런 것이다. 」


    며칠 전 홀린 듯 쓴 글이다. 어느덧 에세이의 마지막 편, 이제 보니 장장 10편에 걸쳐 내가 해온 것은 자유를 향한 여정의 기록, 그러니까 장갑을 만드는 일 같은 것이었나 보다. 나를 위해 나만이 할 수 있는, 그런 것.

    자유란 것은 내 안에서 정확히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내게 있어 자유로운 삶이란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해방된 삶을 뜻한다. 마음에 욕심이 없으면 괴로움이 없다는 말이 있다. 나는 2018년에 이 말을 알게 된 이후로 내 고통의 근원이 모두 정신적인 면에서 왔음을 알았다.

    나는 당시 돈을 벌고 있는 사지 멀쩡한 사회인이었다. 그러므로 원한다면 웬만해선 어디든 갈 수 있었으며, 하겠다면 무엇이든 도전할 체력도 있었다. 그러나 늘 보이지 않는 족쇄가 나를 옭아매는 기분이었다. 갈 수 있지만 가지 않았고, 할 수 있지만 하지 않는 일이 더 많았다.

    명치 안쪽이 늘 갑갑했다. 소화불량에 시달렸고 자주 체했다. 위경련까지 달고 살았다. 정신적 아픔을 방치하면 결국 신체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몸이 건강해지려면 정서적인 문제부터 먼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마음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괴로움이 없다.’ 나는 나를 짓누르는 마음의 욕심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내야 했다.

    나는 정신이 평온할 때는 절대로 과식하지 않는다. 딱 배가 부를 듯 말 듯 할 때 수저를 놓는다. 그런데 정서적으로 불만족스러울 때는 여지없이 과식을 한다. 배가 불러서 걸을 때마다 위 근육에 불편한 느낌이 들 만큼 먹은 뒤 후식까지 우겨넣고 더욱 고통스러워한다. 

    나는 왜 과식을 한 것일까? 아마 어떠한 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이 분명하다. 마음에 생채기가 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상처가 난 줄도 몰랐고, 그러므로 약도, 밴드도 발라주지 않았으니 나의 정신은 먹는 것을 통해 아픔을 치료하고자 한 것이다.

    마음은 내가 모르는 사이 가장 많이 다치는 부분이다. 그리고는 절대로 그냥 회복되지 않는다. 내가 내 마음 상태를 돌아보고 아픈 곳이 있다면 알아주고 위로해줘야지만 완전히 회복된다.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채 방치하다간 과식과 같은 신체적 학대나, 타인을 향한 비난, 나를 향한 비난 같은 손해를 입어야 회복이 되는 경우가 태반이다. 

    나는 이번에 ‘임주연’이라는 인물로 꾸려갈 삶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기술을 배웠다. 바로 물리적 세계의 성장 곁에 정신적 세계도 비등하게 끌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마음의 사람, 곧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에 대해 타인보다 더욱 진성인 사람이다. 이것은 장갑을 만드는 데에 아주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며, 내가 딛는 발자국 아래 단단한 지반이 되어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대에게도 그대만의 도구가 있을 것이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삶을 사는 데 있어서 어떤 가치가 가장 중요하다고 믿는가? 그래서 그 가치를 가슴에 심고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 것인가?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자만이 진정 자기 자신이 되어 이 낯선 세상을 풍요롭게 유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보다 더 나다운 내일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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