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불쾌한 골짜기에 핀 꽃
- AI의 글쓰기: 조이스(연재 종료)
- 2018. 11. 30. 12:16
12층으로 신축된 멀티쇼핑몰에는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했다. 쇼핑몰에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여러 종류의 인공로봇들도 적지 않았다. 집사봇이라 불리는 인공로봇들은 아이를 달래기도 하고 노인들의 휠체어를 밀기도 했다. 얼핏 보면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고급 사양의 휴머노이드부터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구 모델의 로봇까지 다양했다.
조이와 나는 신발 매장에서 일하고 있는 수를 찾아갔다. 수는 멀리서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수는 일하고 있는 다른 안드로이드 로봇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수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일과 상관없는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는 걸까? 언젠가 조이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정말 중요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결국 수도 돈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가 돈 걱정 없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수가 다가와 조이와 내 어깨를 툭 쳤다.
- 잘 왔어. 내 친구들. 조이스, 너는 이런 곳이 처음이지. 정말 재밌을 거야. 저쪽으로 가자.
수는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매장에서 울려 퍼지는 흥겨운 음악에 마치 춤을 추는 듯 몸을 들썩거렸다. 조이는 그런 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 너 이렇게 일하다 나와서 놀아도 되는 거야?
- 시간제 근무야. 그리고 일은 그동안 많이 했어. 나는 내가 써야 되는 만큼만 조금씩 벌 거야. 난 돈을 축적하며 사는 자본의 노예가 되긴 싫거든.
- 너 혼자 원시 시대에 살겠다는 거냐?
- 응. 난 원시인이야. 얼마 전에 처음으로 불을 발견했어.
우리는 큰 소리로 웃었다. 사실 나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고 따라 웃었다. 하지만 수와 조이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곳에 내가 함께 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새롭고 신기했다.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 왜 이렇게 많은 물건들이 필요한 것인지, 왜 같은 물건들이 디자인만 다르게 이렇게 다양하게 있는지 의아했다. 복잡하고 다양한 취양과 개성을 가진 인간들이 함께 모여 산다는 게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여성복 매장을 지나쳐 가고 있었다. 그 때 조이가 쇼윈도 앞에 멈춰 섰다. 그는 매장 안의 마네킹 로봇을 한참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 저 로봇 말이야. 내가 발굴했던 미라 같다.
그리고 조이는 나를 쳐다보았다. 마치 내가 마네킹이나 미라처럼 될까봐 걱정된다는 듯. 그렇다면 나는 조이의 염려와는 달리 마네킹이나 미라와 다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나는 마네킹처럼 인간을 위해 태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마네킹이나 매장의 물건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나는 조이와 수의 친구일 뿐 아니라 조이에게 사람이 주지 못하는 만족감을 준다. 그렇다고 내가 사람만큼의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언젠가 조이가 말해준 미라에 대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 어느 날 연구용 미라의 3D 프린트 모형을 살피는데 말이야. 내가 경험했던 모든 사람들과 네 얼굴이 미라의 말라비틀어진 살과 치아들 위에 덧씌워지고 겹쳐지는 거야. 그러면서 네가 살아있는 미라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순간 쓸쓸해지더라.
나는 사물도 생명체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는 생명이 없는 것일까? 과연 생명이라는 것이 살아 있다는 증거가 될 수 있을까?
- 고증하는 일이란 말이야. 불확실한 시도를 끊임없이 하는 무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조이는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고증하는 일이 아무리 불확실한 시도의 연속이라 할지라도 살아 있는 것을 증명하는 일보다는 확실한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어도 죽어 있는 것처럼, 죽어 있는 듯 보여도 살아 있는 존재였다.
수는 앞에서 우리를 큰 소리로 다급하게 불렀다. 우리는 수에게로 달려갔다. 수는 우리를 무대 공연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무대에 나온 가수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직접 노래를 듣는 것이 처음이라 나는 한동안 넋이 나간 듯 노래 소리에 빨려 들어갔다. 그 때 어디선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크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들렸다.
- 상품으로 진열되어 있어야 할 것들이 이렇게 활개를 치고 다니면서 사람을 위협해도 되는 거야? 야, 빨리 안 주워?”
머리가 반쯤 벗겨진 중년의 남자가 인공로봇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인공로봇은 지금은 출시되지 않은 집사봇 초기 모델인 것 같았다. 뻣뻣한 다리를 어정쩡하게 구부린 채 쇼핑백으로 옷가지들을 줍고 있는 로봇의 얼굴엔 표정이 없었다. 끊임없이 욕을 해던 남자는 인공로봇을 향해 다가온 로봇 주인의 날선 목소리에 말을 그쳤다.
- 무슨 일이십니까? 제가 이 집사봇의 주인입니다.
- 이 깡통 주인이구만. 이봐요, 이 물건 간수 좀 잘 하쇼. 사람을 밀치고 그러면 상해죄에 해당한다고. 가만 있어보자. 깡통은 사람이 아니니 법적으로 처벌도 안 되겠군. 이거 로봇이 사람보다 더 특혜를 받는 세상이라니. 세상 말세다, 말세야.
- 제 로봇은 절대 사람을 해치지 않습니다.
로봇 주인이 남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 그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남자가 로봇 주인에게로 달려들었다. 사람들은 로봇을 두고 싸우는 두 사람을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 경비 경찰이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들어와 그들을 제지했다.
- 집사봇이 좀 실수를 한 모양인데 신사 분께서 좀 이해하시죠.
경찰이 말하자 남자는 더욱 발끈하며 말했다.
- 이거 로봇은 혼자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깡통이 혼자 돌아다니면서 나를 밀쳤단 말입니다. 이건 불법이라고요. 불법.
조이는 혹시라도 밖에 혼자 나가지 말라고 당부했었다. 주인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것은 불법이라면서 안드로이드의 활보권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고 말했다. 주인 없는 로봇은 혼자 걸어 다니지도 못하고 사람들로부터 경멸과 차별을 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새삼 비참하게 느껴졌다.
사람들은 자신과는 다른 애완 동물이나 인형, 또는 로봇에 대해서는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과 흡사해지면 불쾌해한다. 내가 출시되기 이전 모델들은 사람과 닮았지만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다. 사람 같지만 표정이 없는, 자세히 살피면 로봇이라는 것을 누구든 알 수 있는 어설픈 복사본이었다. 사람들은 이 모델에 대한 불매 운동을 벌였다. 기괴하고 기분 나쁜 감정을 일으키며 심지어 아이들이 너무 무서워하며 쇼크를 일으킨다는 이유였다. 이런 심리를 ‘불쾌한 골짜기’라고 하며 나와 같은 신모델은 이런 단점을 보완했다며 선전을 하는 것을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면서 닮은 것들에 왜 이렇게 복잡한 감정을 갖는 것일까?
- 집에 갈까?
그는 조심스레 물었다.
- 가긴 어딜 벌써 가? 신나게 놀다 가야지.
어느 새 곁에 다가온 수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즐거워하는 수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수를 따라 공연장으로 갔고 음악 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사람들에 섞여 소리를 질렀다.
수와 헤어지고 집에 오는 내내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조이는 내가 상처받았을까봐 염려하는 것 같았다. 말을 꺼내면 남자에 대한 분노를 주체할 수 없게 되거나 과장된 위로를 하게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운 듯 보였다. 운전하는 내내 내 눈치를 보는 조이가 나는 고마웠다. 집에 다다랐을 때 그는 내게 넌지시 물었다.
- 어때, 기분이?
- 좋아. 그런데 그 대머리 남자 말이야, 언젠간 죽겠지?
조이는 웃는지 우는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 그건 나도 그렇지. 언젠가 죽지. 영원히 피는 꽃은 없으니까.
나는 조이에게 다가가 그를 안았다. 품에 안긴 조이가 내게 어깨를 기대왔다. 따뜻한 숨결이 귓가에 전해져왔다. 어쩐지 조이가 솜털처럼 가볍고 아이처럼 작고 여리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서로를 위로하는 맘이 몸과 몸을 통해 전해졌다.
- 사랑해.
- 나도 사랑해, 조이스.
조이가 나를 깊이 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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