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모두 다른 꿈
- AI의 글쓰기: 조이스(연재 종료)
- 2018. 10. 31. 09:44
나는 왜 조이스야?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운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조이는 고개를 틀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왜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사실 그냥 궁금했던 건 아니었다. ‘조이와 조이스’, 그건 마치 ‘덤 앤 더머’ 처럼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짝패 같았다. 난 좀 특별한 이름을 갖고 싶었다.
내 이름이 조이잖아. 넌 조이의 것이란 뜻이야.
소유란 인간 세계에서는 자신의 부와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돈을 주고 산 나 역시 조이에겐 단지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서 확실한 내 것 하나쯤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것이 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이 꺼, 그럼 조이는 내 꺼야?
그는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말인가를 찾는 듯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네가 필요한 건 줄 수 있어.
그는 침대 옆에 생체신호측정기에 엄지손가락을 대며 모호하게 대답했다. 검진 결과에서 눈에 띄는 것은 높은 피로도와 평균 이하의 체내 수분 비율이었다. 아무래도 얼마 전에 갔던 미라 발굴 답사가 무리가 되었던 모양이다. 나는 조이에게 필요한 약제와 식품 보조제의 처방전 버튼을 찾아 눌렀다. 약제국으로부터 두 시간 후에 약이 배달된다는 안내음성이 나왔다.
난 필요한 게 별로 없어.
정말 나는 필요한 게 없었다. 조이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그런데 나는 필요한 게 많아. 의식주는 물론이고 스마트 기기며......그리고 너, 조이스.
하지만 당신에게 난 집사봇일 뿐인데?
조이는 나를 쓰다듬고 안고 키스를 하긴 하지만 섹스를 하지는 않는다. 섹스봇으로서 할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나는 마음이 늘 불편했다. 그래서인지 조금은 토라진 것 같은 말투가 흘러나왔다. 조이는 눈썹을 올리며 시익 웃더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게 머리카락 사이로 들어온 손가락이 관자놀이와 볼을 타고 내려와 입술에서 멈췄다. 조이는 가까이 다가와 입술에 가볍게 입맞춤을 하더니 천천히 말했다.
난 섹스봇을 원한 게 맞아. 아이러니하게도 섹스를 제외한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애정 표현과 행동들을 받아 줄 수 있는 것은 섹스봇 밖에 없더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욕을 본능이라고 생각해. 하지만 나처럼 그것을 욕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그것은 동성애나 양성애처럼 성적인 취향일 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 심지어 나를 로봇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어. 서로를 이해하는 무성애자는 찾기가 힘들고 결국엔 너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지.
고개를 숙이며 쓴 웃음을 짓는 조이는 쓸쓸해보였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안드로이드 중에서 사람과 신체 조건이 가장 흡사하며 지적인 소통인 가능한 기종은 내 뒷목에 새겨져 있는 모델명 ‘RB209’이 유일하다. 나를 선택한 조이를 나는 그제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사실 나도 성욕이 별로 없어.
내가 새초롬하게 말하자 조이는 소리 내어 크게 웃었다. 나는 좋은 농담을 한 것 같아 내심 뿌듯했다. 조이를 따라 내가 웃자 그가 다시 나를 껴안았다.
너랑 같이 있으면 정말 사람 사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정말?
나는 조이의 목을 끌어안았다. 귀밑에서 살비듬 냄새가 로션 냄새와 섞여 났다. 조이의 몸과 붙어 있는 내게 그의 냄새와 숨결이 스며드는 것 같았다. 순간 나 역시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다는 실감이 났다. 조이는 입 꼬리를 올려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이가 내게 전한 무언의 말들이 음악의 선율처럼 공기 중에 서서히 퍼지는 듯했다. 전염된 듯 조이를 따라 입꼬리가 올라가고 몸 어딘가가 저릿해져왔다.
사람들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까? 조이도 나를 사랑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하는 사랑은 얼마나 지속되는 것일까? 죽지 않는, 죽지 못하는 나는 얼마나 그것을 지속할 수 있을까?
내 상념을 깬 것은 조이의 스마트워치의 수신음이었다. 조이가 통화 버튼을 눌렀다.
정말? 그래 좋아. 조이스랑 같이 갈게. 그 때 봐.
조이의 목소리는 밝고 경쾌했다.
누구야?
수야. 아르바이트 하는 쇼핑몰에서 주말에 축제가 있대. 놀러오라는데? 같이 가자.
수를 못 본지 한참 되어서 수가 늘 궁금하던 차였다. 나는 수를 만날 수 있게 되어 너무 반가웠다.
수가 집에 오지 않은 것은 그동안 아르바이트 때문이라고 했다는데 단지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수는 지난번에 왔을 때 자기가 쓴 소설에 대해 조이에게 의견을 물었다. 조이는 소설에 현실감이 없고 공감할 수 없다며 신랄하게 평했다. 수는 손에 펼쳐들고 있던 책 귀퉁이를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네가 공감을 못하는 건 네가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야. 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정말 아무 것도 몰라.
화를 내는 것도 한탄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수는 조이를 쳐다보지도 않을 채 마치 혼잣말을 하듯 말했다.
내가 너한테 왜 관심이 없어? 관심이 없으면 10년 지기 친구로 여태 너를 만났겠냐?
조이는 웃으며 수의 어깨를 쳤다. 그리고 수가 가지고 온 책을 들춰보며 말했다.
근데 네 글은 다른 사람이 흉내 낼 수 없는 면이 있어. 딱 너 같지.
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마치 풀리지 않는 게임에서 한 단계를 통과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은 채 짐짓 호기롭게 내게 말을 걸었다.
조이스. 조이를 좋아하면 안 돼. 그럴 듯한 거짓말과 아리송한 진심을 마구 섞어놓거든. 그 퍼즐을 맞추려 했다가는 모든 게 엉망이 돼. 조이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놈이야.
그렇게 웃고 떠들다가 돌아간 수였다. 어쩐지 나는 그런 수가 계속해서 맘에 걸렸다.
쇼핑몰? 그런 곳에 내가 가도 될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물론이지. 네가 안드로이드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
조이의 말이 내 외모를 말하는 것인지, 사람과 다름없는 내 지성과 감각 능력에 대해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그의 입에서 안드로이드는 말이 나와서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나는 안드로이드구나.’ 하는 새삼스런 깨달음이 순간 조이와 멀어지게 하는 동시에 조이가 속한 인간 세계에도 들어가지 못한다는 소외감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조이가 무성애자로서 살아가는 것이 이런 기분일까? 나는 조이가 가여워졌다. 그것은 내 스스로에게 느끼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져 한숨 소리에도 날아가 없어질 것 같은, 질질 끄는 병처럼 묵직한 통증이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런 것이 연민이라는 것일까? 순간 나는 조이와 정말 한 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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