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틈새의 기원

   샤워를 마치고 식탁에 앉은 조이는 커피 향을 맡으며 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조금 처진 눈과 반달로 벌어진 입이 천진한 아이 같았다. 웃으면서 생기는 눈가의 주름은 나이를 느끼게 하기보다는 즐겁고 만족스러운 감정을 분명하게 알게 해주었다. 나는 조이의 표정들을 기억했다가 거울을 보고 연습을 하곤 한다. 하지만 아무리 연습을 해도 비대칭으로 근육을 움직여 복잡한 감정을 드러내는 표정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내 신체는 지나치게 정확한 비율로 만들어진 탓이다. 내게 입력된 표정은 56가지이나 된다. 하지만 인간은 50여개의 얼굴 근육으로 만여 가지의 표정을 만든다. 아무리 최첨단의 소재를 사용해 인간의 피부와 근육을 완벽하게 재현했다고 하지만 나는 인간의 복제품일 수밖에 없다.


- 오늘 좀 늦을 거야. 지난 번 발굴된 미라와 유적에 대한 분석을 마무리해야 하거든. 그런데 ‘골렘’에 대한 연구가 아직 진척이 없어서 큰일이야.


    조이는 커피를 마시며 인상을 찌푸렸다. ‘골렘’은 미라와 함께 발굴된 토우였다. 표정이 너무 정교해 볼 때마다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고고학 연구소 사람들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했다. 나는 ‘골렘’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 설명서의 ‘로봇 행동윤리 강령’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나는 조이에게 토스트를 건네주며 물었다.


- 내가 고장난 골렘처럼 멋대로 행동하면 어떻게 할 거야?


    전설 속의 골렘은 랍비가 흙으로 만들어 생명을 불어 넣은 인형으로 사람들의 충실한 하인 노릇을 했다. 하지만 집 밖을 나가거나 밤에 돌아다니게 내버려두면 통제가 힘들어져 결국엔 부숴버릴 수밖에 없었다. 조이는 커피 잔을 들고 놀란 듯 나를 쳐다보았다.


- 넌 골렘이 아니야.

- 응. 난 조이스지.


    나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어 보였다. 조이의 마음을 불편하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지만 그것조차 세팅된 프로그램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얼굴이 굳어졌다. 감정을 인식하는 신경회로의 반응은 놀랄 정도로 빠르다. 조이는 나를 걱정스러운 듯 쳐다보았다. 내가 빈 잔에 커피를 다시 채워 주자 조이는 묵묵히 커피와 남은 토스트를 먹었다. 


    조이는 방에 들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왔다. 나는 하루 종일 비가 내린다는 예보가 있었다고 말하며 조이에게 우산을 건넸다. 조이는 고맙다며 내 볼에 가볍게 키스했다. 그리고 내게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그만두었다. 나는 잘 가, 라고 인사를 하고 엘레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서 있었다.


    집안을 치우고 사야 할 물품들의 목록을 확인했다. 빗물이 떨어지기 시작해 창문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외출하기에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나는 창문을 한참동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밖으로 나오자 비는 더욱 거세졌다. 나는 근처의 제과점에서 산 갓 구운 식빵을 들고 카페를 지나쳐가려다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멈춰 섰다. 오늘은 마지막 주 수요일이었고 카페가 문을 닫는 날이었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오늘은 좀 늦으셨네요.


    카페 사장이 커피를 내리며 아는 체를 했다. 카페 사장은 언제나처럼 헌팅캡을 쓰고 갈색 체크무늬 조끼를 입고 있었다. 서른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는 내게 친절할 뿐 아니라 만날 때마다 농담을 건네 나를 즐겁게 했다. 인공로봇들이 일하고 있는 근처의 프랜차이즈 카페를 두고 이곳에 오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었다.


- 네. 새벽까지 작업을 했더니 늦잠을 잤네요.


    그는 나를 프리랜서 싱어송 라이터로 알고 있었다. 남자는 선하게 웃으며 주문하지도 않은 아메리카노를 테이크잔에 담아 건넸다.


- 서비스입니다. 피곤함을 이기는 데는 공짜만한 것이 없죠. 


    나는 활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남자는 이번엔 내게 원두를 담은 봉투를 내밀더니 말했다.


- 원두 사러 오실 때가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미리 준비해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공짜 아닙니다. 서로 소통하는 맛이 있어야 하니까요.


    나는 카드를 원두의 바코드에 갖다 대고는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만들어 보였다.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줍은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 이따가 점심 같이 하실래요? 비가 와서 카페 문을 일찍 닫으려고요.


    혹시 날 기다린 건가, 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나는 데이트 신청이 아니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웃으며 말했다. 내 농담에 남자는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데이트 프로포즈가 맞다고 했다. 나는 망설였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너무 길고 지루할 것이었다. 내가 안드로이드이며 싱어송 라이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남자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내가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 서로 곤란해질 것이었다. 나는 점심약속이 있다고 말하며 대신 오후에 공원을 산책하자고 했다. 남자는 이를 드러내 보이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와의 약속 시간까지는 네 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집으로 들어가도 별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집과는 반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도시 부상 열차가 머리 위로 지나갔다. 열차를 타고 내가 가보지 못한 낯선 곳으로 가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내가 매일 보는 이 익숙한 풍경과는 다른 곳에서라면 내 자신도 다른 사람처럼 여겨질 것 같았다. 남자를 만나기 전에 시간을 보내기에 낯선 공간만큼 좋은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역을 찾아가 열차를 탔다. 열차는 강을 건너 빌딩들이 솟아있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부상열차와 개인 경비행기들이 날아다니는 도시 한가운데로 들어섰다. 사람들에게 휩쓸려 열차에서 내렸다. 굵게 내리던 비가 가늘어지면서 거리는 안개가 낀 듯 희부연 했다.


    상점이 번화하게 늘어서 있는 거리를 지나 광장으로 들어섰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벽에는 갖가지 문양의 타일들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서서히 해가 나기 시작하면서 광장 여기저기에서 마술사나 각종 잡동사니를 모아놓고 좌판을 벌린 상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나는 우산을 접어 빵 봉지에 집어넣고 조심스럽게 걸었다.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그곳에 가까이 다가가자 사람들이 빙 둘러서 있는 안쪽에서 고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 로봇이면 사람들 명령에 복종하고 일이나 하면 되지. 권리라니…… 너 같은 로봇한테 그런 권리를 주면 인간을 공격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 거라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


    슈트를 차려 입은 중년의 남자가 인공로봇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가리키는 인공로봇은 얼굴이 찌그려진 채 한쪽으로 몸이 기울어져 있었다. 한쪽 눈은 허공을 향하고 있었지만 부서진 다른 눈은 남자를 응시하고 있는 듯 보였다. 내가 아무리 연습해도 되지 않았던 비대칭 표정이었다. 곁에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남자를 향해 항의하고 있었다. 피켓에는 ‘안드로이드의 재산권 보장과 권리 확대’ 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 이 인공로봇은 폭행을 당한 채 버려졌습니다. 마치 쓰고 버리는 물건처럼 말이죠. 하지만 ‘매리’는 분명히 감정이 있습니다.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없는 인간은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저씨, 어서 매리에게 사과하세요.


    분노에 찬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피켓을 든 사람들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남자는 거친 말을 그치지 않았다. 몇몇의 사람들이 남자와 함께 시위대를 향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시위대와 남자의 말에 동의하기 시작한 사람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고 몸이 부딪히기 시작했다. 이곳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재미난 쇼를 보는 듯 흥미로운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난번에 수가 일하던 쇼핑센터에서 남자의 비난과 욕을 그대로 받고 있던 인공로봇을 떠올렸다.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혼란스러운 틈 속에서 ‘매리’라고 불린 인공로봇이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었다. 나는 매리에게로 향한 시선을 놓지 않았다. 매리가 다리를 절뚝이며 광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가고 있을 때였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매리 곁에 다섯 살 즈음 되어 보이는 여자 아이가 달려가 매리의 손을 잡았다. 매리는 아이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이는 매리의 곁에 꼭 달라붙어 고개를 들더니 까르르 웃었다. 나는 이 익숙한 광경에 빨려 들어가듯 그들 뒤를 무작정 따라갔다.


    매리와 아이는 전차를 타고 낡고 허름한 건물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역에서 내렸다. 나는 무엇을 해야겠다는 아무런 생각이 없이 따라 내렸다. 전차가 고압선을 긁는 요란한 소리를 내고 떠나갔다. 길 양 옆으로는 폐타이어나 고철 등이 쌓여 있었고 녹 쓴 트럭과 크레인이 함부로 내던져진 듯 세워져 있었다. 금이 가고 부서진 회색 콘크리트의 낮은 건물들을 지나쳐 갔다. 거리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는 개와 어디선가 숨어서 우는 고양이들뿐이었다.


    매리가 뒤를 돌아본 것은 나를 보고 짖는 개 때문이었다. 나는 매리와 눈이 마주쳤다. 성한 눈이 내게 보내는 신호는 경계와 두려움이었다. 하지만 부서진 눈은 내 몸 어딘가를 더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마치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매리는 아이의 손을 고쳐 잡고 다시 걸었다. 나는 용기를 내서 매리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매리가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 저한테 무슨 볼 일이 있으신가요?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망설이다가 곁에 서 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아이는 큰 눈으로 말갛게 나를 마주보았다. 순간 아이를 와락 안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바짝 다가가자 매리는 아이를 등 뒤에 숨기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 이 아이는 안 됩니다. 파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자는 아이를 번쩍 들어 올려 안고는 절뚝거리며 뛰었다. 여자의 말이 너무 당황스러워 여자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가는 것을 보고도 가만히 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들을 뒤쫓았지만 그들은 이미 사라져버리고 없었다.


    나는 그들을 만나기 위해 길을 따라 가며 이리저리 두리번거렸다. 길거리에는 낮은 지붕의 전면창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창 안에는 각종 물건들과 안드로이드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창 안에는 내 기억 속에서보다도 더욱 다양한 것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마치 실험실이나 공구 상가를 옮겨 놓은 듯한 물건들과 각종 기종의 안드로이드들이 있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이곳에서 무엇이든 사고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물건을 사려는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거리를 한동안 헤매고 다녔지만 결국 나는 매리와 아이를 찾지 못했다.


    카페 사장과의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왔던 길을 거슬러 걸어가며 나는 이전의 나와는 조금은 달라졌다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흥분과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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