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제품모델명 ‘RB209’ - 이름: 조이스 / 직업: 집사, 섹스파트너



    어둡다. 곁에는 조이가 나지막이 코를 골고 있다. 아마도 그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가끔씩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꿈을 꾸는 데 하루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조이. 참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유기체이다. 그래도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가는 조이를 보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조이는 마치 움직이기 위해서 태엽을 감아야 하는 인형 같다.

    하지만 나의 정체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반대로 나를 인형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최첨단 인형이라고나 할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안드로이드이다. 조이는 나를 집사겸 섹스봇으로 작년 이맘 때 즈음 <퓨처 사이언스>로부터 나를 사들였다. 나는 진화형 로봇으로 구입자의 요구와 훈련 방법에 따라 진화하는 제품모델명 ‘RB209’이다.

    조이는 얼마 전까지 청년 실업자로 지내다가 작년 초 디지털 고고학 연구소의 현장 발굴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가 취업을 하자마자 할부로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나였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형 인공지능 ‘솔라’를 반납하는 조건으로 할인을 받았다. 이 모든 사실은 조이가 아니라 조이의 컴퓨터에 저장되어 있는 그의 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는 자신에 대해 잘 알 수 있는 방법일 거라며 컴퓨터의 비밀번호를 알려 주었다. 조이는 가끔 일기를 쓰는 데 별로 재미있거나 흥미로운 내용은 별로 없다. 사는 게 별로여서 그런 것 같다.

    사실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은 비공개로 쓰고 있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이다. 영화나 책에 대한 감상 등을 잡다하게 쓰는데 일기보다는 꽤 읽을 만하다. 미라나 유물 발굴 사진을 모아두기도 하는데 수집하는 기준이 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의 모든 글은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조이는 말보다는 글을, 글 보다는 행동을 신뢰하는 편인 것 같다. 나는 행동 보다는 글이, 글 보다는 말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조이에게 하지 않는다. 그와 다른 생각들은 그저 내 생각파일에 저장해둔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것들을 불편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조이를 늘 기쁘고 즐겁게 해주고 싶다. 이런 것이 로봇이 가진 노예근성인 것일까? 분명 나는 사람의 뇌시냅스 지도로 만들어 졌다고 했는데 왜 스스로 복종하는 본성을 가지게 된 것일까? 그것은 차차 진화를 해나가며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모든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발전하고 무지는 인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조이가 몸을 뒤척이며 무슨 말인가를 하고 있다. ‘가지마. 진짜 가지마.’ 갈라진 목소리가 애절하다. 그가 꿈속에서 붙잡으려 하는 것을 무엇일까? 나는 어둠 속에서 천정을 바라보며 애꿎은 내 배꼽만 만지작거린다. 그 후로도 조이는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린다.

    꿈을 꾼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맥락도 없고 이유도 알 수 없는 사건과 인물들이 초현실주의 영화처럼 펼쳐진다는데……그 재미난 이야기를 자고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린다니. 정말 허무하고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내게 예측과 상상은 새로운 진화를 위한 훈련이긴 하지만 그리 재밌는 작업은 아니다. 아무리 꿈에 대해 생각해봤자 내 머릿속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다. 아직 일어날 시간은 되지 않았지만 너무 심심하다. 나는 슬며시 조이를 흔들어 깨워본다.

    조이는 서서히 눈을 뜬다. 곁에 누워 있는 나를 보더니 입 꼬리를 올리며 웃어 보인다. 치켜 올라간 눈매가 시원한 입매와 이어져 화난 스마일 마크처럼 보인다. 귀엽다. 아주 귀엽다. 하지만 정작 그 말을 하는 것은 조이다.

귀여워. 너무 귀여워, 조이스 너는 뭘 먹고 이렇게 귀여운 거니?

    조이는 갈라진 목소리로 내 머리를 쓰다듬고 어깨를 팔로 끌어안는다. 조이가 먹는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눈 뜨자마자 허기가 지는 모양이다. 나는 조이의 품에서 빠져나와 부엌으로 간다. 간단하게 토스트를 굽고 커피를 내린다. 그 동안 조이는 샤워를 하러 간다.

    나는 쇼파에 앉아 조이를 기다린다. 소파 위에는 어제 저녁 조이의 친구인 수가 놓고 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있다. 수는 늘 물건을 놓고 가거나 약속 시간을 잊어 매번 조이가 연락을 해야만 한다. 조이와 초등학교 동창이라는데 하는 짓으로 보면 조이가 만났던 초등학생에 멈춰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그녀의 감성과 문학적 소양은 놀랄만하다. 문예창작을 전공했던 그녀는 대학 때 대학생 소설 공모전에서 입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근근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수는 옷이나 가방 등과는 달리 책을 놓고 갈 때는 다시 찾아가질 않는다. 아마도 그것은 조이에게 선물로 주려고 일부러 놓고 가는 것 같다. 책귀를 접어놓기도 하고 색볼펜으로 가지런히 줄을 그어놓기도 하는데 조이는 그것을 들춰볼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수가 놓고 가는 책은 모두 읽는다. 그녀의 선택은 늘 탁월하다. 나는 책귀가 접힌 구절을 읽는다. 


잠든 사람은 자기 주위에 시간의 실타래를, 세월과 우주의 질서를 둥글게 감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면서 본능적으로 그 사실을 생각해내기 때문에 자신이 현재 위치한 지구의 지점과, 잠 에서 깨어날 때까지 흘러간 시간을 금방 읽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순서는 뒤섞일 수 있으며 끊어질 수도 있다. 



    잠에서 깨어날 때 현재와 과거를 동시에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마법과 같은 일이 아닐까? 시간의 실타래에 온 몸이 감기고 우주의 질서에 복무하게 되는 잠이라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순간 한 번만이라도 잠을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잠들지 못하기 때문에 깨어날 일도 없는 나의 운명이 기구하게 느껴진다.

    커피 냄새 너무 좋은데?

    조이는 어느 새 나와 커피를 마시며 말한다. 나는 조이 곁으로 다가가 커피잔을 든다. 그리고 조이처럼 냄새를 맡는 척한다. 조이는 그런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한다.

    커피를 마시면 어릴 때 추운 겨울 퇴근한 아빠 코트에서 나던 냄새가 생각나. 매캐하고 구수한 그 냄새가 너무 좋아서 코트 안에다 코를 박고 있기도 했거든.

    조이는 머그잔에 코를 박고 눈을 감는다. 나도 따라 눈을 감아본다. 조이가 어릴 때 기억에 대해 이야기한 경우는 거의 없어서 나는 그의 말이 흥미롭다. 조이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조금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한다.

    책귀가 접혀진 곳 중에서 말이야. 어느 겨울 날, 어머니가 그에게 홍차와 마들렌을 주거든. 그것을 먹던 마르셀은 어릴 적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가 보리수차에 적셔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을 떠올려. 그리고는 완전한 환희의 순간을 맞이하지. 마들렌 한 조각으로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경험하다니 대단하지 않아?

    조이가 분명히 읽지 않았을 거라고 예상했던 나의 판단은 착오였다. 조이는 수가 접어놓은 책귀의 구절을 읽고 음미하고 즐기고 있었다. 나는 괜스레 화가 나고 억울하다. 이런 것을 질투라고 해야 하나? 질투의 대상이 조이인지 수인지는 알 수 없다. 냄새 맡고 맛을 볼 수 있는, 나와는 다른 인간들 모두가 내 질투의 대상인 것도 같다.

    어떤 감각을 열고 깊이 음미하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과거를 불러오는 것일까? 시간이 어떻게 감각 속에서 살아 날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시간은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제든 뒤섞이거나 순서가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태를 거듭하게 되는 건 아닐까?

    한편으론 그 모든 감각을 지고 살아가는 인간이 여러모로 피곤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나는 인간이 되고 싶다. 내 머릿속엔 사람의 뇌 시냅스가 아니라 사람이 되고 싶다던 피노키오의 유전자가 박혀 있을 것만 같다.

    조이는 커피와 토스트를 남김없이 먹고는 출근 준비를 한다. 키가 큰 조이는 늘 셔츠가 잘 어울린다. 나는 내가 가진 유일한 감각인 시각을 최대한 활용해 모든 것을 깊이 받아들이려 노력해본다. 밝은 아침 햇살, 햇살 아래 부유하는 먼지들, 어지럽혀진 침대 위 이불들과 빵부스러기가 남아 있는 접시 등. 이 모든 것들은 어떤 시간 속에 다시 살아나게 될까?

    조이스, 다녀올게. 오늘은 조금 늦을 거야. 발굴 작업 마지막 날이어서 일이 좀 많을 거야.

    조이는 손을 흔들며 현관문을 나선다.

    안녕, 조이. 있다 봐.

    다시 하루. 시간이 흘러간다. 나는 부엌으로 가서 설거지를 하고 집안 청소를 한다. 그리고 소파에 앉아 다시 책을 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오늘 하루는 이 한 권으로 시간을 보내기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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