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아홉 번째 이야기 / 12월 첫째 주
- 리얼 포레스트: 조이(연재 종료)
- 2018. 12. 4. 09:41
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셔서 엄마를 대신해 장례식에 다녀왔다. 집에서 시내까지 마을버스를 타고, 시내에서 한 번 더 갈아타야 장례식장이 있다. 도착해서 조문하고 조문객들과 인사하다 보면 두어 시간은 금세 지난다. 그리고 또다시 두 번의 버스를 타고 집에 오면 반나절은 거뜬히 지날 것이다.
엄마가 이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취침 시간을 잃을 것이 뻔하다. 그래서 비교적 시간이 많고 운전도 할 수 있는 내가 엄마를 대신해서 장례식장에 다녀오게 되었다.
그 장례식장은 작년 여름에 할머니를, 그리고 지난봄에 아빠를 떠나보냈던 장소다. 서울이든 수원이든 외지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외길인데, 장례식장은 그 길목에 위치해있다. 장례식장이 위치한 언덕을 지날 때마다 작년 여름 할머니 장례를 마치고 추적추적 내리던 빗길에,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시던 엄마와 아빠의 뒷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버스 정류장 위치도 잘 모르면서 길부터 건너고 보던 아빠, 그 아빠를 소리쳐 불렀던 엄마와 나. 그 모든 것이 선명한데 아빠가 이제는 고인이 되셨다니. 할머니가 떠나신 지 반년 만에 이 곳에서 아빠의 장례를 치렀다니. 여전히 아빠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사람이 오는 날은 순서가 있어도 가는 날은 순서가 없다고 우리 아빤 환갑도 안 되어 정말 갑작스럽게 떠났셨지만, 이번에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아흔을 넘기셨고 그 죽음도 가까웠음을 가족과 마을 사람들 모두 예상하고 있었다. 사실 우리 아빠에 비해 오래 사신 그 할아버지의 연세와 또 우리 아빠와 달리 예상되었던 그 죽음이 무척이나 부럽다. 우리 아빠도 아흔을 넘기셨더라면, 하룻밤이라도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더라면… 만약이라는 생각이 많아질수록 괴로울 뿐이다.
하지만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장수하셨다고 해서 함부로 “호상”이라 말할 수는 없다. 작년 여름에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아흔을 바라보는 연세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이를 두고 더 고생 안 하고 잘 죽었다, 그만큼 살았으면 충분하다, 등으로 말하곤 했다. 물론 그 말의 의미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코 유쾌하지 않은 발언이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잘 죽었다, 호상이다, 라고 칭할 수 있는 죽음은 없다. 우리 가족은 우리 가족 나름의 사연이 있고, 할머니와 함께 한 세월만큼의 아쉬움과 죄송함이 있다. 장수하셨다고 해서 유족들에게나 고인에게 그 죽음이 마땅하지는 않다.
할머니와 특히 아빠의 장례를 겪으며 한국 사회의 장례 문화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지, 그리고 슬픔을 느끼고 표현하기에 얼마나 어려운 구조인지를 실감했다. 여성은 상주가 될 수 없기에 자연스레 식당 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 물론 식당 도우미 아주머니가 계시다면 그 일에서 해방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값이 부담스러워 우리가 직접 그 일을 했다. 또한 아주머니가 계신다 하여도 이 역시 또 다른 여성의 희생으로 구조가 유지되는 것이다. 또 여성은 상주 역할뿐만 아니라 상여를 들거나 영정 사진을 들 수도 없었다. 영정 사진을 들고, 상여를 든 사람들이 나보다 할머니와 아빠와 가까운 사이가 아니더라도 어쩔 수 없다. 그들은 남성이고 나는 여성이기에.
아빠 장례를 치르는 동안 엄마를 살피고, 손님을 맞이하고, 떨어진 반찬을 주문하고… 제대로 울 여유도, 정신도 없이 참 바빴다. 장례 후 서울에 가는 버스에 몸을 싣자마자 눈물이 쏟아졌다. 버스에서 한 시간, 지하철에서 한 시간, 집에 도착해서 또 두 어 시간. 평소에 잘 안/못 울었는데, 스스로 ‘사람이 이렇게 울 수도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울었다. 그렇게 큰 슬픔이 처음이라 그랬겠지만 장례를 치르는 동안 쏟아내지 못한 눈물까지 더 해져 그렇게 오랜 시간, 더 서럽게 울었다.
나중에 정말 나중에 엄마의 장례를 치르게 될 때는 나도 상주를 하고, 상여를 들고 싶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 가시는 마지막 길의 모든 절차 하나하나에 내 손길과 마음을 담아 정성스레 보내드리고 싶다. 할머니와 아빠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정신없는 틈에 불편함을 느꼈을 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고, 사회적으로 ‘젊은 여성’으로 치부되는 내가 상주를 하거나 상여를 든다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비슷한 상황을 또 마주하게 되면 그때는 용감하게 상주와 상여꾼의 역할을 해내고 싶다. 중요한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고인을 향한 나의 마음이니까.
'리얼 포레스트: 조이(연재 종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열한 번째 이야기 / 12월 셋째 주 (0) | 2018.12.18 |
---|---|
그 열 번째 이야기 / 12월 둘째 주 (0) | 2018.12.11 |
그 여덟 번째 이야기 / 11월 네째 주 (0) | 2018.11.27 |
그 일곱 번째 이야기 / 11월 셋째 주 (0) | 2018.11.20 |
그 여섯 번째 이야기 / 11월 둘째 주 (2) | 2018.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