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섯 번째 이야기 / 11월 둘째 주
- 리얼 포레스트: 조이(연재 종료)
- 2018. 11. 13. 09:51
벌써 입동이다. 다가오는 겨울을 맞이할 준비와 끝자락인 가을을 보내느라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좀 한가할 줄 알았는데 큰 착각이었다.
일단은 김장 준비를 위해 여름 내 공들여 말린 고추를 가루로 빻았다. 고추를 이백 주 심었는데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갔다. 따서 옮기고, 통째로 며칠 말리고, 닦아 가위로 자르고, 햇볕에 말리되 타지 않도록 지나친 직사광선은 피해줘야 하고, 밤낮으로 비와 이슬을 살피며 거둬들이고 또다시 널기를 고추가 바싹 마를 때까지 반복하여야 한다.
가뭄으로 고추 농사가 어려웠기에 올해는 평년보다 고추 값이 좋았다. 본격적인 수확에 들어가기 전에는 호기롭게 내년에는 오백 주 심자고 엄마에게 제안했는데, 고추 손질을 한차례 마친 뒤에는 삼백 주 이상은 꿈도 꾸지 말자고 해버렸다. 이것이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아는 것의 차이이던가.
또 수확한 고구마를 햇빛에 수 일 숙성시켜, 그 크기대로 구별하여 통풍이 잘 되는 상자에 담았다. 고구마는 잘 보관하면 겨우내 양식으로 두고 먹을 수 있지만, 상처가 나거나 작은 녀석들은 오래 보관하기가 어려워 우선적으로 먹어야 한다.
고구마 말랭이를 만들어 보고 싶은데 말랭이는 크고 두꺼운 고구마로 해야 맛있다고 한다. 자잘한 녀석들을 두고 큰 고구마를 먼저 해 먹는 것이 괜히 자잘한 녀석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또 선입선출의 개념대로 비실한 것 먼저 먹어치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여태 고구마 말랭이를 시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끼다 똥 된다고, 필요한 것을 미래로 미루지 말고 현재에 실행하고 즐겨야 하는데 이게 쉽지가 않다. 첫눈이 내리기 전에 기필코 두꺼운 고구마로 말랭이를 만들리라!
고구마를 캔 자리에는 양파와 마늘을 심는다. 11월 초에 심으려고 했는데 여러 이유로 아직 못 심었다. 이번 장에 나가서 꼭 모종을 구매해야겠다. 마늘은 좀 넉넉히 사서 김장에 넣을 것도 준비하려 한다.
수풀과 그 잎에 가려져 미처 발견되지 못한 호박들이 서리를 맞으며 그 잎이 지자 들통나고 말았다. 한 통 두 통 따다 보니 스무 통 남짓이나 되었다. 열심히 자르고 말려서 여러 번 반찬 해 먹을 양 이상으로 말려뒀고, 남은 호박들은 즙으로 내리기 위해 건강원에 보냈다. 이제야 비로소 현관이 넓어졌다.
돌아오는 주말에 김장을 한다. 배추 모종은 지난 9월경에 심었는데, 어느덧 속이 차올라 김장 배추로 적당하게 되었다. 엄마는 배추벌레를 약으로 쫓으면 그 맛이 떨어진다고 농약 한 번 치지 않으시고 벌레를 일일이 손으로 일일이 잡으셨다. 잘 영근 배추를 보니 엄마의 정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우리 집은 삼십 년이 넘은 주택이다. 창문 역시 삼십 년이 넘어 홈이 잘 맞지 않고 틈이 벌어져 찬바람이 숭숭 들어온다. 더 추워지기 전에 문풍지와 에어캡으로 외풍을 차단해야 한다.
과업 중심적인 내 성향 탓에 몇 가지 일이 더해진 것도 있겠으나 대부분의 일이 시골에서는 해마다 이 절기에 반복되어 왔던 것들이다. 시골 일은 가사노동처럼 그 일이 끝이 없고, 제대로 된 경제적 보상을 받기도 어렵다. 동시에 큰 재해가 없다면 노동한 만큼의 결과를 소출로 맛볼 수 있고,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생활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고민하기에 이르렀다. 생각이 많을 때는 노동만 한 수행이 없기에 일을 하면서 복잡한 속을 정리해 본다. 육체노동을 하는 만큼 내 정신 또한 맑아질 수 있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까. 또 다시 하루가 허락되었다. ‘관광객은 요구하고 순례자는 감사한다’는데 주어진 인생에서 순례자가 되는 방법을 잘 익혀보자고 나는 오늘도 내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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