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첫 번째 이야기 / 10월 첫 주

    가을이 되면 달콤한 포도 향기가 가득한 동네, 마을버스 운전기사님에게도 포도가 쥐어지는 동네. 바로 내가 나고 자란 동네다.


    누구의 고향이 다 그렇겠지만 내게도 고향은 참 많은 추억과 갈등이 서린 곳이다. 유치원 하원 길에 활짝 핀 수선화를 마주했던 어느 날에는 꽃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주저앉아 꽃에 다가가다가 팔이 똑 하고 부러졌다. 수선화의 노오란 색감과 향긋한 꽃 내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롭던지. 팔이 부러졌는데도 꽃이 좋아서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의 내겐 내 방도 없고, 자가용도 없는 우리 집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이 서로 다 다르듯 사는 모습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 진학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마음이 따뜻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했던 삶의 자리에서 해방된 기분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는 회사를 핑계로 고향 집엔 일 년에 두어 번 갈까 말까 했다.


    지난봄, 갑자기 아빠가 돌아가셨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한 달이 채 안 되어, 회사를 그만두고 그 좋던 서울 생활을 정리해 본가로 내려왔다.


    생각해보면 시골을 벗어나기 위해 참 치열하게 살았다. 꿈은 큰데 처한 환경이 꿈을 이루기 어렵다고 판단되어 부단히 노력하고 조금씩 그 꿈을 이뤄가는 삶을 살았다. 수능을 마치고도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놀지 못하고 두세 개의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부 시절에도 꽉 찬 시간표와 스터디에 야간 아르바이트까지 했었다. 이제 와서야 아르바이트 시급은 저축이 어렵고 놀 수 있는 때를 즐기는 게 가장 현명한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때는 알 수 없는 조바심에 현재를 만끽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다행스럽다 못해 행운이라고까지 여겨지는 것은 학부 시절의 여러 만남과 공부다. 덕분에 이전에 꿈꿔왔던 그 꿈과 벗어나고만 싶던 그 환경을 보는 기준에 균열이 생겼고 결핍이라 느꼈던 부분들을 다시 찬찬히 돌아볼 수 있었다. 부모님을 특히 아빠를 점차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누군가 그랬던가. 있을 때 잘하라고, 부모님은 철들 때까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고. 그런 이야기를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 환갑도 안 된 우리 아빠가 떠날 줄이야. 이제 막 아빠를 이해하기 시작했는데 아빠는 내 곁을 떠나셨다.


    아빠의 부재는 평생 그토록 떠나고 싶어 했던 고향 집에 어떠한 계산도 없이 돌아오게 했다. 아빠와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엄마와 함께하는 시간으로 메꾸려는 듯이.


    집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폐기물 업체를 불러 집안과 마당의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아빠는 부지런한 농사꾼이라기보다 계절의 흐름을 만끽하는 한량이었다. 아빠한텐 죄송하지만 이건 동네 사람들도, 우리 가족도, 심지어 아빠 본인마저 인정하시는 사실이다. 우리 집은 30년 된 주택인데 그 세월만큼 집 안팎으로 많은 잡동사니가 쌓였다. 아빠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라 업체를 불러 함께 치우기로 아빠와 나, 그리고 업체에 예약까지 잡아가며 약속했었다. 아빠는 떠났고 업체 사람들은 그 날에 왔다. 일이 하기 싫어서 먼저 가셨나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감정을 떨쳐내려 했지만 아빠와 같이 하기로 한 일을 아빠 없이 해야 한다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무엇보다 잠깐 부재중인 것이 아니라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가 버려서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숨이 막히도록 서러웠다. 그나마 그 순간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은 경험과 감정을 공유한 엄마와 언니들 그리고 동생이 있기 때문이다.


    집을 치우는 동안 운전학원을 다니며 운전면허를 땄고, 중고차를 샀다. 요즘 차 없는 집이 어디 있으며 두 세대씩 있는 집도 있다지만 우리 집은 내가 산 중고차가 첫 차다.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몇 날 며칠을 말씀하시며 실감 안 나게 좋다 하셨다. 현관을 열고 집에 들어오시며 허공에 대고, "00(큰언니 이름)아빠, 우리 차 샀다!"라고 외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메었는지 모른다. 저리도 좋을까 싶었고, 평생 차 한 대 사지 않고 경운기를 덜덜거리며 끌고 다니시던 아빠가 그리우면서도 밉고 미우면서도 미안하고 그러면서도 고맙고... 정말이지 ‘만감이 교차한다’는 것이 어떤 감정인지 실감했다. 


(아빠가 타던 경운기)


    시골에 내려온 지 5개월째 접어든다. 집 치우고 운전면허를 따고, 고추와 포도를 따며 지난여름을 보냈고 밤과 감을 따며 오는 가을을 맞았다. 아빠가 떠나고 한 계절이 가고 두 번째 계절이다. 매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후회 없이 살자'고 다짐하지만 엄마에게 짜증내고, 너무 크게 잡은 목표에 좌절하고, 때론 게으름에 계획한 일을 못하고, SNS를 통해 타인과 내 삶을 비교하며 우월감과 열등감 사이를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이제 좌우명을 조금 바꿔야겠다. “사람은 다 후회하며 살아. 후회해도 괜찮아, 하루에 한 걸음만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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