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다섯 번째 이야기 / 11월 첫째 주

    종교의 영향이 큰데 ‘사랑’에 대해 많이 고민한다. 지난 번 글에서 엄마처럼 나도 나의 애정이 향하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했는데 슬프게도 어쩌면 그동안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인생을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 어찌 가능하겠는가. ‘나 자신을 사랑하기’, 요즘 이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실천하려 애쓴다.


    누군가 ‘종교란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멋진 말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인생의 한 치 앞도 알기 어려운 인간이 신을 알아가고 이해한다는 것은 꽤나 경솔하니, 종교를 통해 그저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이해해 간다면 그것으로 종교의 역할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참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맘에 든다.

(집 앞의 단풍)
    

    편안함, 만족함, 뿌듯함, 기쁨, 희열, 성취감 등의 여러 감정은 쉽게 ‘행복’이라 표현되곤 한다. 누군가는 여행을 할 때, 누군가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누군가는 소비를 할 때 그러한 행복을 느낄 것이다. 나는 자연을 느낄 때, 가슴에 스며드는 관계를 마주할 때 내 존재가 차오르는 벅찬 느낌으로서의 행복을 느낀다.


    시골 집에서 생활한 지 이제 네 달째에 접어든다. 집이 좀 정돈되어서 처음으로 친구들을 초대했는데 그들과 함께한 시간도 이러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그들은 학부때부터 알고지낸 오랜 사이다. 오랜 사이라는 것은 오랜 시간동안 그저 안면이 있는 사이가 있겠고, 또 그 시간동안 서로 노력하여 단단한 관계를 다진 사이가 있을텐데 우리는 후자다. 우리는 격주로 만나 페미니즘 책 모임을 하는데 요즘의 화두는 페미니즘, 노선, 내년 계획, 인간 관계 등이다.  

(친구들과 갈대밭에서)


    엄마는 야간에 일을 다니시는데 집에서 5시 45분에 현관을 나서 대중교통으로 화성시에서 수원시까지 나가신다. 그리고 일곱시에 수원시에서 통근 버스를 타고 오산시에 있는 회사에 도착해 8시 30분 부터 근무를 하신다. 출퇴근의 시간이 5시간은 족히 넘는다. 내 입장에서는 엄마의 이런 일상이 너무나도 고되게 느껴진다. 내가 주어진 재화에서 최대의 효율을 내려는 성향이 있어 더욱 그렇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긴 하지만 상식적이지 않은 출퇴근 경로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 친구는 그런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미연씨의 입장 충분히 이해되고 저도 그렇게 생각이 돼요. 하지만 엄마는 미연씨랑 ‘다른 사람’이잖아요. 엄마의 입장에서는 그게 생각보다 고생이 아닐수도 있어요.” 이 생각을 나도 하긴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통해 ‘발화’된 이야기로 들으니 그 느낌이 사뭇 다르게 다가왔다. 마음의 짐이 덜어진 느낌이다. 


    밤에 동생이 잘 자나 확인하는 게 습관인데 이 습관은 아빠가 했던 행동을 익히게 된 것이다. 아빠는 초저녁에 주무시고 새벽녘엔 산책하고 집안을 둘러보며 잘 자나하고 문을 빼꼼 여시곤 했다. 그땐 그 모습이 그렇게도 싫었는데 나도 모르는 새 아빠의 행동을 반복하고 있었다. 


    친구들은 동생의 이불을 덮어주는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에너지를 아껴서 미연씨를 위해 썼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자신을 위하라는 그들의 애정 담긴 이야기에 멋쩍은 웃음만 보냈지만 덕분에 스스로를 돌이켜보게 되었다.


    내겐 당연한 일상인데 나의 일상을 지켜본 이들은 ‘대단하다’고 말했다. 당연했던 일상이 낯설게 다가온다. 이타적이지 않아도, 책임지지 않아도, 헌신하지 않아도, 스스로를 위해도 괜찮은데 이타적이게, 책임감 있게, 헌신하며 사는 게 익숙해져 있었다. 


    가족을 향한 엄마의 헌신에 고마워하면서도 미안했고 어느 때에는 지긋지긋한 굴레라고 느끼기까지 했는데 나도 모르는 새 그런 삶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엄마처럼 농산물을 나누는 모습)


    이제는 ‘나를 위해’ 조금 더 시간을 내고 노력을 해야겠다. 평생 살아온 가족을 잘 알지 못하듯 평생 함께해 온 스스로도 잘 알지 못했다는 생각이 마음에 맺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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