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번째 이야기 / 10월 둘째 주
- 리얼 포레스트: 조이(연재 종료)
- 2018. 10. 16. 09:43
“엄마는 나의 노력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지난주에 엄마와 싸우며 엄마에게 내뱉은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싸웠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늘 이런 식이다. 나의 평생에 기억되는 엄마는 늘 자식한테 헌신적이고 져주고 참아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엄마가 답답하고 싫었다. 논리와 기로 자식을 이기는 엄마, 훈육하는 엄마를 바랐다. 사람이란 늘 남의 떡이 커 보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을 내는 법이라는 것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착한 엄마를 두고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통해 실감한다.
가족이란 생사만 알고 있고 자주 왕래하지 않을수록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그러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엄마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고 능력이 좋지 못한 아빠를 대신한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어릴 적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셨다가 밤늦게 퇴근하셨고, 늦둥이 남동생을 낳고서는 낮에 주무시고(아이를 돌보시고) 밤에 일하는 야간 일을 하셨다. 늘 바쁜 엄마와 엄마 없이도 잘 지내는 나였기 때문에, 또한 우리 둘 말고도 다섯 명의 다른 식구가 더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이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하고 이렇게 마주한 채 많은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엄마와 나는 낯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서로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거리를 가늠한다는 것은 건강한 관계의 기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가족일수록 이것이 참 어렵다. 엄마와 내가 요즘 투닥거리는 이유는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고 우리 관계의 적절한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의식주 중에서 식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일 한 티가 잘 나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가사노동보다 비교적 그 성과가 명확하고 푼돈이라도 생기는 농사일을 즐겨 하신다. 나는 의식주 중에서 주가 가장 중요하고 때문에 정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요리라는 것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머무는 자리를 정돈하는 것이 모든 일을 시작하는 데서 기본이라 여기기 때문에 가사 일보다 농사일이 우선 될 수 없다. 엄마는 조약돌같이 모난데 없이 매사에 둥글둥글하고 감정도 표현도 무던하다 못해 무딘 분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감정 기복도 좀 있고 표현을 중시한다. 많은 순간 자기표현은 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근데 우리 엄만 식성도, 취향도 거의 없다. 이렇게 다른 엄마랑 나인데, 엄마를 자꾸 내게 맞추려고 했다.
처음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집으로 내려왔을 때는 정말 그 어떠한 계산도 없었다. 경제적인 것이나 진로나 무언가를 재고 따지기보다는 그저 엄마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이것이야말로 계산이 필요했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엄마는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내 청춘을 바쳐 엄마를 보필한다는 것에 대한 보상을 엄마나 언니들에게 요구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언니들과 이모들은 정기적으로 집에 와 가뭄에서 힘들게 풀 뽑아가며 이래저래 보살핀 농작물을 한 보따리씩 챙겨간다. 엄마는 사랑하는 식구들과 건강한 식재료들을 나누는 것이 큰 기쁨이라 생각하지만 내게는 나의 고생과 노력이 담긴 결과물들을 대가 없이 가져가는 그 사람들이 잔인하게 밉다. 또 냉장고에 김치, 장류, 밑반찬, 야채, 과일 등 종류대로 줄 맞춰 정리해두면 어느새 일회용품과 위생봉투가 잔뜩 자리하고 있다. 이럴 때는 정말 화병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속이 터진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엄마가 아니었다면 억지로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이 집에 내려온 이유를 다시 정립해야만 한다. 집에 내려온 이유가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와의 관계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되고 가족들을 향해 나의 희생을 알아달라는 울부짖음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아빠의 존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인데 그 영역을 내가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엄마의 상실감이 나의 상실감보다 클 수는 있지만 내 상실감도 내게 상당히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골에 온 것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지만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무엇보다 내 나름대로 아빠의 흔적을 느끼고 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나의 내면을 살피고 싶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기억하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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