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두 번째 이야기 / 10월 둘째 주



    “엄마는 나의 노력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지난주에 엄마와 싸우며 엄마에게 내뱉은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싸웠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늘 이런 식이다. 나의 평생에 기억되는 엄마는 늘 자식한테 헌신적이고 져주고 참아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엄마가 답답하고 싫었다. 논리와 기로 자식을 이기는 엄마, 훈육하는 엄마를 바랐다. 사람이란 늘 남의 떡이 커 보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을 내는 법이라는 것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착한 엄마를 두고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통해 실감한다.


    가족이란 생사만 알고 있고 자주 왕래하지 않을수록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그러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다. 엄마는 사회성이 좀 떨어지고 능력이 좋지 못한 아빠를 대신한 우리 집의 실질적인 가장이었다. 어릴 적에는 아침 일찍 출근하셨다가 밤늦게 퇴근하셨고, 늦둥이 남동생을 낳고서는 낮에 주무시고(아이를 돌보시고) 밤에 일하는 야간 일을 하셨다. 늘 바쁜 엄마와 엄마 없이도 잘 지내는 나였기 때문에, 또한 우리 둘 말고도 다섯 명의 다른 식구가 더 있었기 때문에 우리 둘이 이렇게 많은 대화를 하고 이렇게 마주한 채 많은 식사를 해 본 적이 없다. 요즘 엄마와 나는 낯선 일상을 보내고 있다.


    서로의 성향을 잘 파악하고 적절한 거리를 가늠한다는 것은 건강한 관계의 기본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가족일수록 이것이 참 어렵다. 엄마와 내가 요즘 투닥거리는 이유는 서로의 성향을 파악하지 못했고 우리 관계의 적절한 거리가 가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의식주 중에서 식이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일 한 티가 잘 나지 않고 돈이 되지 않는 가사노동보다 비교적 그 성과가 명확하고 푼돈이라도 생기는 농사일을 즐겨 하신다. 나는 의식주 중에서 주가 가장 중요하고 때문에 정리되지 않은 환경에서 요리라는 것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또한 머무는 자리를 정돈하는 것이 모든 일을 시작하는 데서 기본이라 여기기 때문에 가사 일보다 농사일이 우선 될 수 없다. 엄마는 조약돌같이 모난데 없이 매사에 둥글둥글하고 감정도 표현도 무던하다 못해 무딘 분이다. 나는 호기심이 많고 감정 기복도 좀 있고 표현을 중시한다. 많은 순간 자기표현은 내 삶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근데 우리 엄만 식성도, 취향도 거의 없다. 이렇게 다른 엄마랑 나인데, 엄마를 자꾸 내게 맞추려고 했다.


    처음 서울 생활을 접고 시골집으로 내려왔을 때는 정말 그 어떠한 계산도 없었다. 경제적인 것이나 진로나 무언가를 재고 따지기보다는 그저 엄마 곁에 있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근데 이것이야말로 계산이 필요했던 선택이었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엄마는 생각보다 강인한 사람이었다는 사실과, 내 청춘을 바쳐 엄마를 보필한다는 것에 대한 보상을 엄마나 언니들에게 요구하는 내 모습을 마주했다.


    언니들과 이모들은 정기적으로 집에 와 가뭄에서 힘들게 풀 뽑아가며 이래저래 보살핀 농작물을 한 보따리씩 챙겨간다. 엄마는 사랑하는 식구들과 건강한 식재료들을 나누는 것이 큰 기쁨이라 생각하지만 내게는 나의 고생과 노력이 담긴 결과물들을 대가 없이 가져가는 그 사람들이 잔인하게 밉다. 또 냉장고에 김치, 장류, 밑반찬, 야채, 과일 등 종류대로 줄 맞춰 정리해두면 어느새 일회용품과 위생봉투가 잔뜩 자리하고 있다. 이럴 때는 정말 화병이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을 정도로 속이 터진다.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엄마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어도 이렇게까지 화가 났을까? 엄마가 아니었다면 억지로라도 그 사람을 이해하려 했을 것이고 이렇게까지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라서, 엄마이기 때문에 더 화가 났던 것이다. 내가 이 집에 내려온 이유를 다시 정립해야만 한다. 집에 내려온 이유가 엄마가 되는 순간 엄마와의 관계에 따라 삶이 좌지우지되고 가족들을 향해 나의 희생을 알아달라는 울부짖음이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에게 아빠의 존재는 그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것인데 그 영역을 내가 메울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엄마의 상실감이 나의 상실감보다 클 수는 있지만 내 상실감도 내게 상당히 크고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시골에 온 것은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지만 모든 시간을 함께하기 위해서가 아니며 무엇보다 내 나름대로 아빠의 흔적을 느끼고 그와의 관계를 재정립하여 나의 내면을 살피고 싶어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기억하자,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댓글(4)

  • I
    2018.10.19 23:12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기도 벅차실 텐데 글에서 드러나는글쓴이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사색이 감탄스러워요. 저는 무딘 사람과 있을 때면 저의 예민함을 자책하게 되는데 작가님이 엄마는 이렇고 나는 이렇다 라고 서술하신 부분에서 왠지 굉장히.. 마음이 편해졌어요. 감사합니다. 날이 계속 추워지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앞으로의 글도 기대하겠습니당

    • 조이
      2018.11.15 12:37

      주신 감탄에 감사합니다!ㅎㅎ 제 글에서 공감하시고 편안함을 느끼셨다니... 주신 댓글에 저도 힘을 얻습니다, 감사합니다^^

  • ^__^
    2018.10.21 05:02

    마지막 문단이 마음을 울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조이
      2018.11.15 12:37

      마지막 문단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Designed by JB 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