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외국 생활을 한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뒤늦은 자아 찾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연습을 했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자유로움과 있는 그대로 존재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얻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고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진 상태로 귀국을 했다. 이대로라면 나를 마음껏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지, 순조롭지 않았다.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교에 돌아와 수업을 듣고 귀가하려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일본 빈티지 가게에서 산, 자수가 들어간 파란색 원피스에 독특한 별무늬가 들어간 레깅스 차림이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잠옷이니?” 너무나 당황스런 나머지 아무런 말이 나오지..
일을 하다가 자꾸 손바닥을 본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일이 안 풀려 얼굴을 감싸다 문득. 화장실을 가는 길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가만히 손바닥의 주름을 쳐다본다. 지문을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지문은 엄마뱃속에 있었을 때 양수의 흐름으로 만들어진다던데 그렇다면 이 무늬는 내가 기억하기 전의 기록이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손바닥 주름이 조금씩 깊고 진해지는 걸 느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고, 내가 그만큼 더 살아왔다는 것을 손바닥의 흔적을 통해 느낀다.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손바닥만이 아니다. 요즘 내 몸을 온전히 내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맞는 몸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한..
살면서 처음으로 숏컷을 한 건 약 10년 전, 대학교 2학년 신학기가 시작된 봄이었다. 줄곧 긴 머리와 단발 기장 사이에서 길렀다가 잘랐다가를 반복하며 딱히 숏컷에 대한 갈망은 없었는데, 스물한 살이 되면서 머리를 매우 짧게 자른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국가장학금 제도가 있어 학비를 면제 받거나 저금리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가 있지만,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고 집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을 계속 다닐 수가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묶는 모든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기에 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 다행히 숏컷이 싫지 않고 공부가 괴롭지 않았다. 수도권 대학을 가려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전공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줄곧 희망하던..
얼마 전 인터넷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하늘에 무지개가 예쁘게 떠 있었고, 평소와 달리 버스 안에서 들려오는 카메라 셔터음이 많은 걸 눈치 채고 버스 기사님이 잠시 버스를 세웠다고 한다. 승객들은 무지개를 감상하거나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찰나였지만 모두가 마음에 여유를 가지는 시간을 가졌다는 기사였다. 기사를 읽자 내 딱딱한 마음이 말랑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기뻤다. 내가 하늘을 보는 것을 너무나 좋아하고 그래야한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현재 일하고 있는 직장은 역 근처에 위치한 높은 빌딩 중 하나로 한 면이 유리로 되어있다. 그래서 해가 지는 것도 매일 구름의 모양이 다른 것도 비가 올 때의 하늘이 어떤지도 관찰할 수가 있는데, 문제는 그걸 볼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에 ..
직업이 바뀌고 아침 6시 반에 일어나는 일상이 시작되었다. 첫 출근을 하기 전에 기상 연습이라도 해둘까 싶었지만 역시 인생은 실전이지, 하는 터무니없는 자신감으로 출근 전날을 맞았다. 정작 그날이 되자 나는 새벽 총 4번에 걸쳐 눈을 번쩍 뜨며 실제 수면 시간이 3시간밖에 안 되어 무거워진 몸으로 어렵게 침대를 벗어났다. 몇 주가 흐른 지금은 주말이 되면 같은 시간에 눈이 저절로 떠진다. 그렇다고 그 시간에 일어나지는 않고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더 수면을 취한다. 호기롭게, 눈뜬 바로 그 시간에 일어난 적이 있기도 했지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간 건지 반수면 상태에서 온종일 누워만 있었다. 기상 후에는 비가 어마무시하게 내리지 않는 한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활짝 연다. 직업이 바뀜과 동시에 이사도 하였..
마지막으로 한국 집에 간 게 2019년 12월이었으니까 집에 못간 지 1년하고 6개월이 지났다. 마스크를 써야만 하는 상황이 오래 갈 줄은 알았지만 막상 집에 가지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 보니 쌓여있던 그리움이 폭발했다. 장거리 여행보다 집 근처를 탐방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 많은 장소보다 풀밭에 누워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해 생활은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나라와 모국을 비교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날들이 길어지다 보니 정신 줄을 부여잡고 생활하는 게 너무 힘들어 여기서의 모든 것들 다 정리해버리고 집에 돌아가고 싶다 생각하는 매일이 계속되었다. 이곳 상황을 얘기하자면 이렇다. 코로나 발생 초기에는 정확하고 신속한 보도가 매일 나왔다. 이 나라 분위기치고 직설적이고 사실 그..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어느 날 엄마가 가스레인지 켜는 법을 알려주겠다며 계란 하나와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두었다. 나는 왼쪽, 엄마는 오른쪽에 서 있었고 먼저 스위치를 잡아보라고 했다. 이윽고 내 손 위에 엄마 손이 포개졌고 돌리는 법을 배웠다. 이때 내 손을 쥐던 엄마의 힘은 무척 강했고 그래서 내심 놀랐던 기억이 있다. 힘을 조금 주고 돌린 다음 몇 초가 흐른 뒤 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불 조절을 하면 된다고 끄는 법은 쉽다고 했다. 그러고 나서 식용유를 두른 팬에 계란을 올렸고, 계란프라이는 그렇게 내 인생 처음으로 만든 요리가 되었다. 그 생애 첫 요리의 맛은 기억나지 않지만 불을 다루는 것이 살아생전 처음이었기에 무척 긴장하고 두려웠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겁이 났던 탓에 ..
2021년의 5월이 시작되었다. 벚꽃은 진작에 져버렸지만 대신에 형형색색 봄꽃을 마음껏 볼 수 있어 산책하다가 자주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일교차가 심하진 않지만 해가 지면 차가운 바람이 불기 시작해 국물이 있는 저녁을 차리게 된다. 오늘은 저녁으로 계란국을 끓였다. 양파 껍질, 말린 표고버섯과 대파 흰 부분을 넣고 육수를 내서 잘 풀어놓은 달걀과 가지런히 썰어 놓은 양파 반 개를 넣고 간은 심심하게 끓여 몸을 따뜻하게 덥혔다. 다 먹어갈 때쯤 국그릇에는 양파 몇 조각이 남아있었는데 그걸 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양파보다 생명력이 있는 인간인가? 살려는 의지가 있는가? 생명의 힘이라는 게 나에게 있는가?’ 비가 오는 날에도 나갈 정도로 산책을 좋아한다. 풀을 보고 하늘도 쳐다보다가 ..
스물아홉, 이십구라는 숫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참 늦었다는 말을 들을 법한 그 나이에 나는 다시 일본에 왔다. 처음 일본에 간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교환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돈도, 언어 실력도 없는데 지원했고, 붙었다. 지원자 수도 적었고 타 지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아 체류하는 동안 매달 생활비도 받을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인 사이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머니가 고양이를 데리고 살고 있는 일본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때로는, 나가는 출구가 어디냐 물어봤을 뿐인데 이유도 모른 채 역무원에게 무시를 당한 적도 있었다. 또 유학생 친구들끼리 특히 아시아권 친구들과 교내 식당에 들어갈 때면 무대 위 핀 조명을 받듯 온 시선..
살다가 문득,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호기롭게 눈썹 위로 짧게 자른 앞머리가 어느새 눈썹과 가까워져 있을 때, 글씨를 쓰다 문득 시선이 볼펜 끝, 길어진 손톱 을 향할 때, 새벽 적막 속 온통 까만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불빛이 화장실 불이었을 때, 100도의 끓는점을 우습게 보고 마신 찻물이 혀에 닿았을 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기사 아저씨를 향해 뜨거운 아이컨택을 하며 전력질주 할 때. 그 외에도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는 시간 속 찰나의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아있음을 느끼려, 그 순간들을 알아채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기 전의 나는 ‘왜 살아?’라는 삶을 향한 질문, 그러나 결국 나를 향해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은 적이 없었다. 타인의 시..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다가 집 양쪽에 강이 흐르는 곳에 이사를 왔다. 매일 5km 정도를 걷고 뛰고 생각하고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며 2주가 지났다. 바다 근처에서 살 때는 기온 자체가 낮아 잘 껴입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옷차림으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강이 있는 도심은 달랐다. 건물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과 예측할 수 없는 기온 변화에 차라리 땀을 흘리는 게 낫겠지 하며 3월이 된 오늘도 두터운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 원래부터 달리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에 운동장을 반복해서 뛰어 기록을 재는 날이면 늘 이를 의미 없는 짓이라 투덜댔고, 뛰는 걸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매일 뛰고 있다. 현재의 나에게 달리기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며, 나의 건강관리를 위해 ..
추운 새벽 2시 반쯤, 친구에게 메일을 쓰다가 문득 기억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생각을 했다. 주고받는 대화가 오랜만에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러나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와의 첫 만남, 20군데 넘게 지원을 했으나 면접에서 계속 떨어져 온갖 스트레스에 허덕이다 취직한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의 긴장감, 매일 가는 슈퍼마켓에서 진열된 걸 구경만 했을 뿐 머릿속으로 맛을 상상만 하다 처음으로 구입해서 먹어본 감자과자를 입에 넣었을 때의 맛, 아마 이걸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싶은, 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 기억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된 밤이 있었다. 어떤 것은 정말 선명해서 그날의 날씨와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과 복장까지도 기억이 나다가도 그 외의 다른 기억, 취업 활동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