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여덟 개인 여신과 나눈 대화 / by 영림

손이 여덟 개인 여신과 나눈 대화[각주:1]



어느 먼 나라 힌두교 대사원 앞에서 호랑이 탄 여신이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여신의 손 여덟 개에서 삼지창과 칼, 활과 화살이 번뜩였습니다.


“내가 못해도 너보다 광년은 더 살았을 거야. 편하게 말할게.

손이 모자라? 몇 개 더 있었으면 좋겠어?“


“누구 좋으라고 일손을 더 늘려주겠어요.”


“여자 인간들이 손을 쓰는 용도는 대체로 너그러워. 한국도 그렇지.

내 자랑을 좀 하면, 난 악마를 천 개의 팔로 찢어버렸다고.“


“그건 당신이 태초에 신들의 분노로 태어났기 때문 아닌가요?

대부분의 여자는 그렇게 강하지 못해요.

오죽하면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이 생겼겠어요.

당신도 조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당신 남편인 시바신이 파괴의 신이라고 하던데,

당신이 강하다고는 해도, 그를 화나게 했다간…”


“꽉 막힌 사람이로군. 못 들어 주겠어.”


여신은 호랑이를 내 쪽으로 몰아 두 손으로 나를 결박한 채,

다른 두 손으로 칼과 삼지창을 내 목에 겨누었습니다.


“참기만 하다간 죽어.”


나는 두르가 여신에게 제압당한 채 어안이 벙벙해졌습니다.


“내가 뭘 잘못했죠?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그 소리에 두르가 여신의 눈썹이 급작스럽게 찌푸려지더니,

나머지 네 개의 손과 무기도 내 목과 정수리를 겨누었습니다.

목덜미에 날카롭고 차가운 것이 닿았습니다.


“내가 잘못했어요. 칼 좀 치우고 말해요. 약한 소리 안 할게요. 부탁합니다, 플리즈.”


여신의 손 여덟 개가 일사분란하게 나를 벗어났습니다.

나는 여신을 바라보았습니다.


“난 시바를 위해 사는 게 아니야.

내가 살면서 제일 의기양양했을 땐 악마를 잘게 다져 놨을 때였어.

시바의 아내가 되어 화관을 쓸 때가 아니었단 말이야.“


*


힌두교 대사원을 나설 때, 호랑이를 탄 두르가 여신이 내게 손을 흔들었습니다.


*


남편이 나를 깨웠습니다.


"이 여자가 미쳤나. 멀리까지 와서 그렇게 잠이 와?"


나는 평소 같았으면 헤헤, 하고 넘겼을 남편의 거친 말투를 지적했습니다.


"말 좀 이쁘게 하고 삽시다. 오는 말이 고와야 가는 말이 곱다는데,

멀리 와서까지 말본새가 그게 뭐예요. 못 배운 티를 그렇게 내서야 쓰나.”


남편이 허, 소리를 내더니

내 손 언저리를 휘둥그레 보곤 뒷걸음질 치다가 기절했습니다.


"손이 여덟 개인 여신이라도 본 모양이지?"


여신과 나의 웃음소리가 기절한 남편의 얼굴 위로 쏟아졌습니다.



시인 '영림'은


실비아 플라스와 보들레르의 시와 산문을 좋아하고, 

다자이 오사무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좋아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을 좋을 대로 사용하는 사람이 줄어들 때, 

세상은 좀 나아지리라 믿습니다.

  1. 고정희 시인의 시, <손이 여덟 개인 신의 아내와 나눈 대화>를 각색함. 본래 시에서 화자가 마주한 신의 아내는 부와 아름다움의 여신 락쉬미로 추정되며, 이 시의 화자가 만난 여신은 주로 무기를 들고 전쟁터에서 악마를 물리치는 전투의 여신 두르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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