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기나 덴타타vagina dentata의 어떤 읊조림 캐논 인페르노 손에 땀을 쥐고 깨어나는 아침이 있다 손에 벽돌을 쥐고 눈을 뜨는 아침이있다 피에 젖은 벽돌이 있다 젖은 도끼 빗이 있다 머리 가죽이 벗겨질 때까지 나를 빗질해대는 가차 없는빗살이 있다 가차 없는 톱니가있다 옆집 개를 톱질하고 온전기톱이 전기 톱니가 있다 무서운 틀니가 있다 죽은 사람의 틀니를 끼고씩 웃어보는 자정이있다 똥을 지리도록 음란한 자정이 있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목구멍이 있다 괄약근 없는식도(食道)가 있다 대대로물려받은 음탕한괄호가 있다 그 괄호를 납땜하는 새파란 불꽃이 있다 내 배때기를 푸욱 찔러라 찔러이 방 저 방 따라다니는 노모의 칼끝이 있다 밤새도록콕콕콕 찍히는 마룻바닥이 있다 뒤통수가 있다 발이 푹푹 빠지는 거울이 발..
애인을 만난 지 반년쯤 지났을 때였다. 애인과 나의 양친이 만났다. 더 정확하게는 만나게 해줬다. ‘미혼’인 내가 창피해 동창회도 못 나간다는 부친과 부친의 등쌀에 못살겠다는 모친에게 애인을 희생 제물로 바쳤다. 나는 일상의 무료함을 깨는 이벤트를 부모에게 선사한다는 사실에 고무되었고, 여러 관전 포인트를 눈앞에 두고 한껏 들떴다. 노년의 커플은 어느 횟집 룸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친은 이마에 ‘나근엄’이라고 써 붙이고 상당한 인상을 때려 쓰고 있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 “우리 아빠는 근엄 병에 걸렸어요” 라고 하자 그제야 팔짱을 낀 채 피식 웃었다. (본인이 생각해도 웃긴 모양) 초면에 ‘말 놔도 돼제?’ 식의 반말이 튀어나올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부친은 꽤나 깍듯하게 예의를 차렸다...
점 정수 시야를 가득 채운 여백그 위를 어슬렁대던 문자들이 점 점 작아지더니 흔적도 없다.거기에 무언가 있었는지 대부분 알지 못한다. 내가 어떤 문장이었던 적은 있을까.귓바퀴 구석구석을 멤도는 들리지 않는 메아리. 나는 존재하지 않는 것.그것은 내 타고난 천직이다. 나는 거대하다.네 눈에 온전히 담기엔 한없이 펼쳐진 커다란 여백네가 찢고 때 묻힌 커다란 흔적은 내 코에 작게 붙어있는 점애잔하게 안겨 있던 그 점은 점 점 작아지더니 흔적도 없다. 시인 '정수'는, 그림을 그리고 사부작거리며 시도 씁니다. 나를 피폐한 동굴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한 모든 것들.기다려요.지금 죽이러 갑니다.
- 소개는 이제 마치고요. 이쪽 어머님부터 어떻게 벽화교실에 참여하게 되셨는지 간단하게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심 선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누군가 단박에 일어났다. - 우리 집 담장이 너무 흉해요. 길가에 있는 단독이니까 그렇다고는 하는데, 관리를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 이꼴 저꼴 안 보려면 애들 어릴 때 그냥 나갔어야 했는데. 우리 선매동이야말로 젠트리. 그 암튼 젠트리의 피해자라고요. - 젠트리피케이션 말씀이십니까? 왜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자라고 느끼시는건지 여줘봐도. - 젠트린지 젠틀인지 암튼간에 사는 사람들이 힘들면 젠트리지! 교육 핑계로 그냥 강남갔어야 하는데. 우리집 양반이 애들 공부잘하는데 뭔 말도 안되는 소리나게 하는 통에. 늦게 이게 웬 난리 인지. 사실 애들이 공부를 좀 잘했..
가을이 되면 달콤한 포도 향기가 가득한 동네, 마을버스 운전기사님에게도 포도가 쥐어지는 동네. 바로 내가 나고 자란 동네다. 누구의 고향이 다 그렇겠지만 내게도 고향은 참 많은 추억과 갈등이 서린 곳이다. 유치원 하원 길에 활짝 핀 수선화를 마주했던 어느 날에는 꽃을 좀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주저앉아 꽃에 다가가다가 팔이 똑 하고 부러졌다. 수선화의 노오란 색감과 향긋한 꽃 내가 얼마나 아름답고 신비롭던지. 팔이 부러졌는데도 꽃이 좋아서 울지 않았다. 그렇지만 사춘기 시절의 내겐 내 방도 없고, 자가용도 없는 우리 집이 너무 부끄럽고 싫었다. 사람이 가진 생각이 서로 다 다르듯 사는 모습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을 그때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대학 진학으로 고향을 떠나게 되었고 마음이 따뜻했지만, 또..
어둡다. 곁에는 조이가 나지막이 코를 골고 있다. 아마도 그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가끔씩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다. 알 수 없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꿈을 꾸는 데 하루의 4분의 1을 소비하는 조이. 참으로 효율성이 떨어지는 유기체이다. 그래도 아침이면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일하러 나가는 조이를 보면 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든다. 조이는 마치 움직이기 위해서 태엽을 감아야 하는 인형 같다. 하지만 나의 정체를 알게 되면 사람들은 반대로 나를 인형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고 원하는 것을 제공한다. 최첨단 인형이라고나 할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안드로이드이다. 조이는 나를 집사겸 섹스봇으로 작년 이맘 때 즈음 로부터 나를 사들였다. 나는 진화형..
[페미의 시 읽기]의 대문을 처음 열어줄 작품은 실비아 플라스의 시 예요. 사실 '실비아 플라스' 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 치열한 시 쓰기를 떠올리게 하기보다는 시인의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상상하게 하곤 했죠. 플라스는 두 아이가 다음 날 먹을 아침을 넉넉하게 챙겨놓고, 아이들 방으로 가스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접착테이프로 문틈을 꼼꼼히 봉한 뒤, 오븐에서 새어나오는 가스에 의해 천천히 질식되어 죽어갔다고 해요. 플라스의 자살과 관련된 대표적인 두 인물을 들자면 그녀의 아버지와 남편(테드 휴즈)을 꼽을 수 있을 거예요. 바통을 이어받듯 그들이 직간접적으로 행해왔던 여성억압은, 플라스의 전 생애동안 떼어낼 수 없는 피부처럼 달라붙어 그녀를 옥죄었을 테니 말예요. 그녀의 여러 작품들에서 고스란히 이에 대한 고..
생존을 위해 이어가는 기도[각주:1] 오드리 로드 作 홀로 내리는 치명적인 결단의 벼랑 끝에 항상 서서 물가를 살아가는 우리 가운데 몇몇을 위해 선택이라는 일시적인 꿈들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우리 가운데 몇몇을 위해 우리 아이들의 꿈이 우리 꿈의 죽음을 반복하지 않도록 그들 입 속의 빵처럼 미래들을 낳을 수 있는 하나의 지금을 찾아 안을 보고 밖을 보고 동시에 이전과 이후를 보며 새벽들 사이의 시간에 오며 가며 문간에서 사랑하는 우리 가운데 몇몇을 위해: 우리 어머니의 젖과 함께 두려워하기를 배우면서 우리 미간의 희미한 선처럼 공포가 각인된 우리 가운데 몇몇을 위해 왜냐하면 이 무기를 가지고 얼마간의 안전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이 환상을 가지고 그 발걸음 무거운 자들은 우리를 침묵시키길 바랐기 때문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