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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에 핀 라플레시아 “그럼 앞으로 우리 섹스 못하는 거야?” 카페 안으로 울려퍼지는 너의 목소리가 나의 이곳저곳을 베어 먹는다 이틀 전, 자궁에 크고 붉은 라플레시아들이 마구잡이로 피었다는 진단을 받았고 그 사실을 너에게 막 말한 참이었다 베어 먹힌 나는 절반의 미소만 지을 줄 알고 너는 그런 내가 추해서 견딜 수 없다고 지껄인다 점점 커지는 너의 목소리에 금이 간 유리잔은 이내 터질 것만 같지만 사람들은 투명한 손으로 눈을 가릴 뿐이다 돌연 자궁에 핀 라플레시아들이 부들부들 경련하기 시작하고 나는 아랫배를 꽉 움켜쥔다 하지만 움켜쥐면 움켜쥘수록 라플레시아들이 피워 올리는 분노는 도무지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노려보는 너는 상한 흙더미 속에서 썩어가는 수박 씨앗 같다 마침내 산산조각 난 유리잔을 ..
나는 왜 조이스야? 나는 천정을 바라보고 누운 채 심드렁하게 물었다. 조이는 고개를 틀어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왜 갑자기? 그냥 궁금해서. 사실 그냥 궁금했던 건 아니었다. ‘조이와 조이스’, 그건 마치 ‘덤 앤 더머’ 처럼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짝패 같았다. 난 좀 특별한 이름을 갖고 싶었다. 내 이름이 조이잖아. 넌 조이의 것이란 뜻이야. 소유란 인간 세계에서는 자신의 부와 가치를 증명하는 방법이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돈을 주고 산 나 역시 조이에겐 단지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서 확실한 내 것 하나쯤은 가져도 되지 않을까? 그것이 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조이 꺼, 그럼 조이는 내 꺼야? 그는..
“많이 변했어요. 전에는 굉장히 바쁘게, 열심히 살았던 것 같은데... 오해는 마세요, 나쁘게 변했다는 게 아니에요. 그렇다고 요즘은 열심히 안 산다는 게 아니고... 뭐랄까, 느낌이 변했어요, 여유로워졌달까?” 요즘 들어 이런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주위 사람들뿐 아니라 스스로도 이 미묘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변화가 익숙하지 않아서 간혹 멀미하는 듯한 느낌이지만.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매주 한 번씩 서울에 가는데, 언젠가부터 모임 사람들과 꼭 만나고 싶은 사람들만 만난다. 이것이 시골 생활의 큰 장점 중 하나라 생각되는데, 바로 ‘허수의 인간관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이다. 서울에 짧은 시간 머물다 보니 그 만남이 즐겁고 반가운 사람들 위주로 마주하게 되고 자연스레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났다..
나는 마을 벽화를 싫어한다. 솔직히 혐오한다. 가득이나 조악한 그림에 심기가 불편한데, 명분까지 있으니 최악이 아닐 수 없다. 만약 우리 동네에 라는 밑도 끝도 없는 요상한 프로그램이 생긴다면 앞장서서 초를 치고 다닐 생각이다. 여기는 왜 앉아있냐고? 일당 좀 챙겨준다는 말에 2시간 걸려 왔는데, 하필 이 더운 날, 동네 담벼락 찾아다니게 생겼으니 그런 질문은 삼가줬으면 좋겠다. 충분히 힘겹다. 내 비록 지방 예고출신이긴 하지만 나름 자부심을 가질 만한 미술대학 회화과에 입성한 나름 엘리트 미술교육을 받은 사람이란 말이다. 이틀 전까지만 해도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미술관에서 어시스턴트도 했었다. 고작 두 달 단기 일용직이지만 학벌과 능력들이 넘쳐난다는 미술 인력 중 뽑힌 거니까 그래도 자랑할 정도는 된다..
손이 여덟 개인 여신과 나눈 대화 어느 먼 나라 힌두교 대사원 앞에서 호랑이 탄 여신이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여신의 손 여덟 개에서 삼지창과 칼, 활과 화살이 번뜩였습니다. “내가 못해도 너보다 광년은 더 살았을 거야. 편하게 말할게.손이 모자라? 몇 개 더 있었으면 좋겠어?“ “누구 좋으라고 일손을 더 늘려주겠어요.” “여자 인간들이 손을 쓰는 용도는 대체로 너그러워. 한국도 그렇지.내 자랑을 좀 하면, 난 악마를 천 개의 팔로 찢어버렸다고.“ “그건 당신이 태초에 신들의 분노로 태어났기 때문 아닌가요?대부분의 여자는 그렇게 강하지 못해요.오죽하면 참는 게 미덕이라는 말이 생겼겠어요.당신도 조금은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당신 남편인 시바신이 파괴의 신이라고 하던데,당신이 강하다고는 해도, 그를 화나게..
보류 중 나는 열네 살이고 내 피부는 나를 저버렸어요 나는 그 소년 없이 살 수 없는데 그는 아직도 자기 엄지손가락을 빨아요 남 몰래 내 무릎은 어째서 늘 이렇게도 잿빛일까요 아침이 오기도 전에 내가 죽으면 어쩌죠 그리고 엄마는 문 닫힌 침실 안에 있네요 나는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해요 다음 파티를 위해 때맞춰 내 방은 너무 작죠 졸업 전에 내가 죽는다고 생각해봐요 그들은 슬픈 멜로디를 노래할 거예요 그러나 마침내 나에 대한 진실을 말하겠죠 나는 하고 싶은 것은 없고 할 일은 너무 많죠 그리고 엄마는 문 닫힌 침실 안에 있네요 그 누구도 멈춰서 생각하지 않아요 내 쪽 이야기에 대해 내가 수학 팀에 있어야 했어요 내 점수가 그의 점수보다 나았거든요 내가 왜 치아교정기를 낀 그 한 사람이 되어야 하죠 난 내일..
유난히 무더웠던 여름 더위도 아침저녁의 찬 공기에 한 발 물러난 계절이 되었다. 어느덧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농작물이 서리를 맞으면 냉해를 입을 수 있어 그전에 수확을 마쳐야 하기 때문에 들깨를 털고 고구마를 캐며 꽤 바쁜 한 주를 보냈다. 유난했던 가뭄과 벌레가 파먹은 덕에 그 수확량은 보잘것없지만 들깨를 베는 노동은 참 행복한 일이다. 특히 들깨의 고소한 내음을 깊이 들어 마시며 그 향기를 음미하는 것은 일 년 중 지금만 가능한 아름다운 경험이다. 들깨는 6월 정도에 파종하여 7월에 모종을 심는 것 말고는 크게 손이 가지 않는 작물이다. 집 근처에 심어두고 깻잎을 따 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들기름, 들깨가루, 깻잎 반찬 등 그 활용도 여러 가지다. 특히 입맛 없을 때는 깻잎을 간장..
모든 숫자는 영으로 수렴된다- 소설가 천희란에게 부치는 편지 있잖아 내가 요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8은 너무 오만해 9는 너무 완벽하고 그럼 3은? 3은 좀 다정한 것 같아 4는 깍쟁이고 2는 자기밖에 몰라 5는 완전 맹탕이고 6은 좀… 뒤가 구리지 1은 정말이지 내가 참 할 말이 많은데 너무 순수해서 피곤해 0은 어떤데? 0은, 0은 늘 차분하지 1부터 9까지 모두 0의 이해를 바탕으로 그렇게들 설치는 거야 0은 그들의 모자란 부분들을 모두 감안해주고 조용히 입을 다물지 0은 그런 사람이야 0은 검지를 인중에 가져가던 첫 손짓이고 시를 쓰고자 마음먹었던 그때 그 시간이자 모든 일이 지나고 나서야 고개를 들고 노랗게 마른 들판을 홀로 서있는 사람 그런 사람 하나쯤 있어야 세상은 어딘가 비빌 언덕이라..
“엄마는 나의 노력과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어!” 지난주에 엄마와 싸우며 엄마에게 내뱉은 말이다. 아니 어쩌면 싸웠다기보다 내가 일방적으로 화를 냈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늘 이런 식이다. 나의 평생에 기억되는 엄마는 늘 자식한테 헌신적이고 져주고 참아주는 사람이다. 이러한 엄마가 답답하고 싫었다. 논리와 기로 자식을 이기는 엄마, 훈육하는 엄마를 바랐다. 사람이란 늘 남의 떡이 커 보이고 가진 것에 만족하기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안달을 내는 법이라는 것을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착한 엄마를 두고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통해 실감한다. 가족이란 생사만 알고 있고 자주 왕래하지 않을수록 서로 행복할 수 있는 법이라고 늘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왔다. 그러한 가족, 그중에서도 엄마와 한 지붕 아래 살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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