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나 작가님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SNS를 통해 멀리서 바라보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내셨구나. 표지 일러스트가 무척 멋지다. 베스트셀러라니 부럽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작가님은 도토리 머리 같은 짧은 숏컷 둥근 얼굴에 평온하지만 단단한 인상을 지니고 계시고 부드러운 중저음을 지니셨다. 셔츠 위에 스웨터를 즐겨 입으시고 통 넓은 면바지는 밑단이 접혀있어 그 아래엔 알록달록한 양말이 보이곤 한다. 작가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어쩌다 SNS를 구독하게 되었는데 매번 올라오는 일상에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며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황선우 작가님과 함께 리코더와 우쿨렐레로 연주하는 영상이 올라올 땐 ‘이것이 정말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는 길 ..
이상하다. 왜 누군가를 기억하고 반추한다는 것은 결코 시간의 질량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함께한 시간이 많으면 의당 영원한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관계는 진짜가 아니라는, 흔히들 말하는 일상 속 진리를 활자 그대로 무구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내 경험 또한 실제로도 그랬기에. 몇 년 전, 10년을 함께한 친구와 연을 끊어버렸다. 우리의 시간 앞에 아무 승자도 없을 거라고, 우리의 우정은 사랑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친구였다.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는 이런 농담 따먹기나 하겠지, 라며 우스갯소리를 만날 때마다 했던 친구. 그러나 10년을 돈독하게 지낸 친구와는 이제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척 하면서 지나가는 사이가 되었다. 더는 ‘우리’라는 범주에 묶일 수 없..
아리아가 원한 건 약간의 이해와 순수하고 달콤한 사랑, 그리고 약간의 겸손이었다. 사춘기 소녀의 허세와 외로움으로 가득한 힙스터 영화 제멋대로인 유명인 부모의 크고 작은 학대와 무관심 속에서 사랑을 갈구하는 아홉 살 소녀 아리아. 는 프랑스인 엄마와 미국인 아빠, 이탈리아인 자녀들이라는 설정부터 복잡한 영화다. 감독의 뒤죽박죽한 취향과 혼란스러운 연출 때문에 영화를 차분히 감상하기가 쉽지 않지만, 묘한 조화로움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낸다. 그런 와중에 아리아 역할을 맡은 배우의 담담한 연기는 아리아의 외로움을 부각시킨다. 영화의 원제는 Misunderstood, 즉 ‘제대로 이해 받지 못하는, 오해를 받는’이라는 뜻이다. 영화는 아리아와 가족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 상황을 보..
한 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의 만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질릴 때까지 듣는데 이번엔 이 노래였던 거다. 심장 박동처럼 쿵쿵 울리는 드럼 비트에 Only the young can run,하고 언뜻 알아들을 만큼만 어려운 후렴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테일러 노래보다 낮게 읊조리는 느낌이네,하고 생각할 즈음 이분 남짓한 짧은 노래는 끝난다. 그들은 널 도울 수 없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작이야. 오직 한 가지만 우릴 구할 수 있어. Only the young. 노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다큐멘터리 를 보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대에 이미 그래미상을 거머쥘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팝가수지만, 그보다는 헐리우드의 수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긴다는 종류의 가십거..
산타바바라에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는 도로시아는 사춘기 아들인 제이미를 혼자 키우며 지낸다. 도로시아는 쉐어하우스 메이트들과 사생활을 공유하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열어 소통을 이어가는 등의 외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외부인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다정하며 누군가와 관계 맺는 데 아무 문제도 없는 듯한 도로시아가, 유독 자신의 아들인 제이미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한 듯 보인다. 원만한 소통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70년대의 미국이다. 그 시기 미국에서는 ‘제2물결 페미니즘’이 붐이었고, 억압된 여성의 삶은 여성들의 각성에 의해 조금씩 그 단단했던 틀이 균열을 일으키는 시기였다. 그 움직임 속에서 여성 개개인은 제각각의 삶 속에서 제2의 성장통을 겪기..
타인으로 지탱하는 삶 마츠코는 언제나 타인의 구원이란 환상 속에서 살았다. 마츠코는 어렸을 적 몸이 아픈 여동생에게 각별한 애정을 주는 아버지 밑에서 애정에 대한 결핍을 느끼며 자란다. 아버지의 미소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뜻대로 되지 않을 땐 좌절하며 한편으론 여동생에 대한 증오심도 키워간다. 중학교 교사가 되어서 학생의 도난 사건에 휘말리며 마츠코의 일생은 조금씩 뒤틀리기 시작한다. 학생의 잘못을 덮어주기 위해 자신이 돈을 훔쳤다며 가게 주인에게 거짓말을 하고, 학교에는 모든 사건이 가게 주인의 오해였다고 말하려고 했으나, 함께 거짓말을 계획했던 한 선생의 배신으로 마츠코에게 모든 잘못이 뒤집어 씌여지고 마츠코는 학교에서 쫓겨나게 된다. 집으로 돌아온 마츠코는 아버지의 애정을 받기 위해 애처롭게 노력했..
영화 의 제목 중 ‘하’라는 음절이 내게 처음 준 첫인상은, 참 밝았다. 그 밝음의 이미지와 영화 포스터에서의 역동적인 주인공 프란시스의 모습을 영화 내내 보면서, 좋은 느낌이 내게 전달되는 것 같기도 했다. 의외로 영화는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럼에도 엔딩은 행복하게 끝날 것으로 생각했지만, 오히려 영화가 전개됐던 내용보다 더 지극히 현실적이고 덤덤해서 의외이기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상황이나 성격이 나와 하나하나 공감이 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잘 하고 싶은 것과 잘 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다르다. 영화 의 주인공 프란시스가 바로 그랬다. 그가 정말 잘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의 거리는 너무 가까웠지만, 동시에 너무 멀기도 했다. 프란시스는 몇 년 동안 무용단에 소속되어 있어도 공연에서는..
어려서부터 창작물, 특히 영화를 보고 난 소감 측면에서는 꾸준히 줏대가 없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내 견해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 내 감상평은 영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재미있었다고 하면 핏빛 혀놀림으로 가득찬 독설은 고이 숨겨서 혼자 트위터나 블로그에나 남기고 지인들과 대화할 때면 ‘저도 그 장면은 좋았어요!’ 하며 호응하곤 하는데, 최근에는 와 가 그 경우에 속했다. 전자는 사막 차 추격전 시퀀스와 일렉기타음의 환장의 콜라보 때문에 영화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할 만큼 정신 사나워서, 후자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전편과는 다르게 어쩐지 현자 캐릭터화된 올라프가 생경하고 뭔가 사건이 두서없이 번잡스럽게 많이 배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호평 일색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몽니부리듯 난 별..
윤희에게. 겨울이 되어서일까, 얼마전 다시 본 영화 ‘캐롤’ 때문이었을까. 찬바람 때문에 눈물이 고일 때쯤 뭔가에 떠밀리듯 ‘윤희에게’ 영화를 보았다. 사실 저번 리뷰도 퀴어영화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다른 주제를 고르리라 마음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고르던 중 마침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글을 보았고, 마침 전국에 몇 없다는 상영관이 집에서 가까웠고, 그러면서 그래, 여성서사 이야기니까 괜찮으리라-라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자기 위안을 안고 리뷰를 적어 내려가본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분명 나조차도 기억을 더듬어 유년시절을 회상해보았을 때 사랑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때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애달팠는지 왜 나의 시선은 항상 그 애를 쫓아갔었는지 그 애가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는..
점심에 라멘집을 찾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당.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고 한술 뜨려는데 문득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그건 올해 겨울의 첫 캐롤이었고, 돌아온 사무실에서 종일 ‘한국인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 같은 것을 돌려 들었다. 이제 겨울이구나. 캐롤이 들려오면 진짜 겨울 같고 크리스마스 같다. 겨울이면 영화 이 빠짐없이 생각난다. 2016년에 개봉했으니 이제 네번째 해인가. 사진 작가 사울 레이터를 참조했다는 몽환적인 화면과 컬러감, 1950년대 뉴욕 사람들의 착장.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시점에 케이트 블랜쳇과 루니 마라가 만나는 연기라니.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처럼 겨울마다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은..
아멜리에는 내가 무척 애정하는 영화다. 크리스마스보다 따듯한 색감부터 치밀한 듯 어리숙한 아멜리에까지 하나, 둘, 셋, 열까지 마음에 든다. 만약 나에게 영어 이름을 지으라면 아멜리로 정할 생각이다. 이제부터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문을 적을 예정인데, 이 글을 읽는 이가 영화 ‘아멜리에’의 매력을 한 자밤 정도 발견할 수 있다면 좋겠다. [광대 같은 사랑스러움] 물수제비를 던지는 순간, 크렘 브륄레의 설탕 껍질을 숟가락으로 톡톡 두들겨 깨뜨리는 순간, 지금 이 순간 오르가슴을 느끼는 이가 몇 명일까 세어보는 순간. 아멜리에는 세상을 오밀조밀하게 구경하곤 한다. 아멜리에는 어릴 적 심장병이 있는 것으로 오해를 받아 학교도 다니지 못해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아 늘 외로웠다. 북적이는 사람 곁에 있어 본 적도 ..
첫눈에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옳은 명제 사춘기 때, 세계문학을 읽을 때마다 심장이 얼마나 쿵쾅쿵쾅 뛰었는지 모른다. 세기말 마지막 사랑을 떠오르게 하는, 아슬아슬하고 위험한 사랑. 사랑, 이라는 이름 아래 탐스러운 사과같이 포장한 그 실체는 대부분 부도덕한 사랑. 「마담 보바리」,「여자의 일생」 등 프랑스 문학을 떠올리면 사랑에 미쳐 파멸하는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때는 자신을 불싸질러 누군가를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부러웠지만, 이제는 그저 웃음만 나오는 그 이름. 아무튼 내게 프랑스 문학이란 사랑 이야기의 결정체이자 위험하고 자극적인 구애의 서사이다. 의 첫 장면은 모두 따분해하는 문학 시간에 오로지 아델만이 을 곱씹는 것을 보면서 나는 그의 불행을 예감했다. 찬란하고 아름다울 불행을. 문학을..
리부트 은 많은 연작은 다 무시하고 원작 할로윈(1978)의 사건 이후의 이야기다. 이 영화를 페미니즘 영화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전복의 의미가 매우 유의미한 작품이다. 여자가 공포영화 좋아하는 게 어때서? 어린 시절에는 겁이 많아서 매일 자기 전 무서운 꿈을 꾸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고 혼자 화장실을 가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을 숨기지 못하고 무서운 이야기나 영화를 즐겨봤다. 그리고 이제는 즐기는 장르가 되었다. 공포영화나 B급 장르 영화를 재밌어 하다 보니 이상하게 보는 시선을 받기도 했는데 내가 ‘여자’라서 더 신기해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런 장르를 좋아하는 남자들은 부끄러움 없이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여성들은 숨기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도 재미있는데도 ‘내가 이런..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목을 밟은 발을 치워달라는 것뿐입니다.” RBG 대법관의 묵직한 대사를 시작으로 영화는 그녀의 일대기와 어떻게 그녀가 많은 사람들의 아이콘이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기 전 영화 포스터와 RBG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통해 내용이 꽤 무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성차별이 합법이었던 그 당시 시대배경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여성 변호사의 투쟁 과정을 내밀하게 다룰 것이라고 짐작했었지만 영화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대중들이 RBG를 존경하고 RBG를 향해 환호하는 장면과 RBG의 이미지를 담은 굿즈, 힙합노래 등 RBG 열풍을 보여주며 투쟁 과정보다는 이룩한 업적과 많은 사람들의 영감이 되고 있는 부분에 더 집중해서 전체적인 흐름이 무겁지만은 않게 다루었다. 유..
는 가톨릭에 의해 동성혼이 엄격히 금지되고 중형으로 다뤄졌던 1900년대 초 스페인 수녀원에서 학생 신분으로 처음 만나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 엘리사와 마르셀라 두 여성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실화를 바탕으로 다루고 있다. (실제 엘리사와 마르셀라) ‘허영은 결점이다’ 1898년 스페인, 마르셀라는 가부장적이고 통제욕인 아버지, 그 곁에서 항상 숨죽이며 지내는 어머니와 함께 살아간다. 비가 많이 오던 어느 날 라코루냐에 있는 수녀원 내 미션스쿨에 입학하게 되고, 수녀원에서 지내던 엘리사와 첫 만남을 가진다. 우산을 깜빡하고 가져오지 않아 비에 흠뻑 젖은 마르셀라를 엘라사가 닦아주면서 두 사람의 마음도 비에 흠뻑 젖으며 사랑이 시작된다. ‘허영은 결점이다’라는 학훈이나, 수업시간에 ‘그’(남성명사)와 ‘그녀..
흔히 여러 가지의 해석이 쏟아지는 작품이 잘 만든 작품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다양한 논의를 가능케 하고 너도 나도 다르게 해석하면서 화제에 오를수록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반도의 민족에게 있어 필연적으로 이러한 이슈는 곧 ‘돈’이 되기 때문에 일종의 입소문 마케팅과 맥락이 같다고 볼 수 있겠다. 일찍이 나홍진 감독은 을 일부러 여러 갈래로 해석되어 논란이 될 수 있도록 결말을 모호하게 연출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불친절한 영화’는 흥행 요소일 수 있을까? 수많은 예술 영화들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불친절하지만 그 때문에 외면당하는 걸 보면 또 그런 것만은 아니다. 함량미달의 깜냥으로 한 번 유추해 보자면 당연히 재미있어야 하고 시대상을 반영하며,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동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