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새해가 되면 올해의 운세를 꼭 확인하는 편이다. 사주를 MBTI 급으로 신봉하는 것에 비해 돈을 쓰지는 않아서, 거의 3초에 한 번 광고가 뜨는 사주 어플을 애용한다. 어플에 따르면 올해는 경쟁의식이 매우 심해지는 시기라 하였다. 눈에 걸리는 문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슈가 많은 시기'라는 부분이었다. 친구나 일하는 곳의 상사, 동료와의 관계에서 울고 웃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그땐 나쁜 말은 잊어야지 하고 넘어갔는데, 2021년도 10월까지 지나온 이 시점에 돌아보니 일종의 경고였던 것 같아 마음이 좀 쑤신다. 회사에서의 관계..뭐. 굳이 설명하는 게 클리셰지. 어른들은 본인이 꼰대임을 왜 인정하지 못할까. 그 것만 달라져도 회사의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질걸. 논리라는 명목으로 텍스트 한 줄까..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여기가 거기예요.” “극락이라고요?”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시적인 제목의 는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에서 운행되던 열차라고 한다. 이 작품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과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블랑시는 가문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이 망가져 버렸다. 방황하던 블랑시는 여동생 스텔라가 사는 ‘극락’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이 결코 극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열차에서 내린 순간 알 수 있..
평화는 누군가 참는 사람이 있는 표면적인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자유와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유토피아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생물학적 여성성별이기에 워낙 타고나길 화가 많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자유롭게 분출시킬 수 있는 신분(네.. 저는 미천한 신분...)은 아닌지라 정말 화를 참을 수 없을 때는 주로 키보드 워리어로 활동하는 게 고작인 정도. 성차별주의자들의 활자로 된 배설물들을 견딜 수 없을 때면 심호흡을 하며 비추나 신고를 먹이면서 멘탈을 관리하는 게 고작인데, 얼마 전에 그 임계점을 넘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누군가와 싸우는 것 자체가 체질적으로 힘들어서 좋게 넘어가려 하는 편인데 그날따라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원인은 유튜브 댓글창에 좌표를 찍고 달려..
약간의 청록 빛이 도는 엑스레이를 봤다. 의사 선생은 예전에 다친 발목이 컨디션이 좋지 않아 다시 아프기 시작한 거라며 말을 했다. 몇 번의 치료를 받아야 하고, 언제 다시 와야 하고 뭐라 뭐라 말을 이어 나갔지만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단지 내 뼈에 비해 두툼한 살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왜 뼈와 살은 비례 관계가 아닌가. 살이 찌는 만큼 뼈도 단단해지면, 인간은 조금 더 나은 생명체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음식이 주는 충만한 기쁨을 스무 살 때 처음 느꼈다. 잠시 모든 신경을 멈추게 할 만큼 극강의 당도로부터 행복감을 느꼈다. 뇌가 얼얼할 정도로 단 음식들은 가장 쉽게, 가장 단순하게, 가장 빠르게, 가장 싸게, 그리고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지금 당장의 내 기분이 좋아지게 만들었다. 이제..
주말에 오랜만에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멀리 떨어져 지내서 자주 만나기도 어렵고 연락도 매일 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가깝고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걸 아는 그런 사이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이젠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친구로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나 역시 그 친구에게는 숨기는 게 없다.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 번 통화하면 기본 두 시간은 거뜬히 넘긴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일종의 보고(?) 형식으로 카톡을 하기 때문에 서로의 근황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서로가 다 알고 있는 근황이지만 오랜만에 통화를 할 때엔 최근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웃는다. 이상하게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 고등학교 때에는 여럿이 함..
나 없는 내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태어는 났고 어른은 됐는데 내 인생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십대 때에는 다른 사람 인생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고 그들의 삶을 재밌어하거나 동경하고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그것이 마치 내 삶인 것처럼 과하게 몰입할 때도 있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내 삶은 정작 그 주체에게서 외면당하고 있었다. 서른이 넘으니 이제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크게 감흥이 없다. 누가 어떻게 성공했고 얼마나 행복한지 과시를 해도 관심이 가질 않는다. 그렇다고 그 관심이 내 인생을 향하진 않았다. 여전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이제는 무엇을 꼭 원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사회에서 성공했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생각하지 않는 삶은 죽은..
오랜만에 놀러간 서점 한 곳이 이번 주말부로 문을 닫는다고 했다. 따져보니 나는 그 서점 문이 완전히 닫히기 삼일 전 방문한 셈이었다. 책으로 만든 터널 인증샷으로 유명했던 곳. 식당과 서적이 한데 모여 있어 좀 의아했던 곳. 그럼에도 예쁘고 힙한 것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어 종종 찾아갔던 곳. 오픈 당시에 이런저런 이유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을지로의 서점이었다. 곧 문 닫을 서점 안은 스산했다. 불 꺼진 가게들과 출입금지 테이프. 한 곳에 앉아 사진 매거진을 좀 읽다 나왔다. 와중에도 곳곳에 마련된 소파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언제 문 닫아요? 다른 지점은 어디 있나요? 아. 아쉽네요. 매대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누군가 점원에게 묻는 소리를 몰래 들었다. 일하던 회사의 부장님이 그 서점에서 찍어온 사진을..
나는 오늘부터 당신을 더 적극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싫어하기로 했다.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가 있다면 합당한 것일까? 누군가를 싫어할 때마다 혹시 나의 피해의식이나 자격지심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오곤 했다. 객관적으로 생각하려 해보아도, 아니 한 걸음 떨어져서 생각하니 당신을 싫어하는 마음이 오히려 타당해지거나 더 커지곤 했지만 정말 객관적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내가 갖고 있는 정신적 결함은 자격지심이라고 볼 수 있다. 피해의식도 많다. 자격지심과 피해의식, 그 둘로 인해 파생되는 질투와 선망 그 사이, 자괴감이 불러오는 자아 비대와 자기혐오, 이 둘은 내가 자의식을 갖기 시작한 10대 이후부터 줄곧 내 인생과 함께하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가 불편하고 ..
여느 때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던 중 흥미로운 글을 봤다. 누군가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건 곧 그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 같은 것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 트윗 작성자가 상담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옮긴 것으로 보였고, 그간 삶의 지향점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 사실은 병증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본인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서글퍼하는 것 같았다. 밑으로 달린 댓글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는데, 내 경우에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장수가 모든 인류의 디폴트 희망값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건강하고 무엇이 정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데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었다. 배우자에게 “당신은 오래 살고 싶냐..
이야기 짓는 일을 하는 나에겐 감각하는 모든 것이 창작의 소재가 된다. 예를 들어 장바구니를 들고서 장을 본 하루에 발견한 이야기에는 이런 것이 있다. 프리랜서라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며 평일 아침에 마트로 향하고 있었는데,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터나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버스정류장 팻말이 박힌 좁은 길가를 차지하고는 해질녘까지 이어질 피곤한 일과를 맞이하고 있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사이를 지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질감과 함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우리’라고 칭하고 싶다) 채우는 시간의 속도와 재질은 다르지만, 어쨌든 각자의 자리에서 늘 그랬듯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다들 적어도 20년은 넘게 살아왔을 테니 그 ..
요즘은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때 큰 버팀목이었던 오랜 지인과 의절하고, 지난 3년 동안 휑해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다. 정신건강에 해로운 관계를 끊어내고 난 뒤 그들이 없는 나의 일상은 클린해지고 ‘정상’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시간이 15년이 넘는지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친구라는 명분만으로 백해무익한 관계를 이어가기엔 내가 이제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과 의절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들과 의절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아주 큰 시련이 닥쳤을 때 만난 지인 덕분이었다.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나에게 도움을 주던 지인은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끔 조언도 해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조금씩 일깨워줬었다..
일상이 부쩍 어려워진 건 당연했던 것들의 부재 때문이다. 마스크 없이는 외출할 수 없게 된 것부터 카페 테이블에 한가로이 앉아 있을 수 없는 것, 밤늦게까지 깔깔대며 술을 마실 수 없는 것. 방호복을 벗지 못하는 의료진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사람들을 생각하면 볼멘소리도 안 될 말이지만, 염치없게도 나는 아무럴 것 없었던 일상을 되찾기만 바라고 있었다. 다섯 시면 해가 지고 세상은 오래 깜깜했다. 연말이면 만나던 사람들에게는 건강하자는 인사로 마음을 대신 전했다. 그즈음부터 KBS 명작 다큐 시리즈를 봤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이란 놀라운 것이라서, 어린 아이로 환생한 고승을 찾아다니는 스님의 이야기를 보고 나서부터 티베트와 관련된 영상들이 피드에 뜨기 시작했다. ▲ 차마고도를 지나는 마방의 행렬. 차마..
by cellophane PM 02:35 바람은 귓불을 날카롭게 스치지만 가장 볕이 따스한 시간이다. 회색 시멘트 바닥 위로 검은 운동화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산책하러 나온 지 3분 만에 돌아가고 싶어져 집으로 방향을 틀고 발걸음을 서둘렀다. 회갈색 시든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뻗어서 멋들어진 나무를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지나치는데, 삼색 무늬 고양이가 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야옹.” 오늘 내가 처음 낸 목소리다. 빠르게 걷다가도 고양이 앞에서는 여지없이 멈춰 서게 된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인지 궁금한 듯 눈이 동그래진 고양이가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고 도망간다. 불안 때문에 얼얼한 추위에도 식은땀이 났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외투만 벗고 이불안으로 몸을 쏙 집어넣는다. 오늘 에너지를..
요즈음 잇몸이 시린 정도가 아니라 냉장고에서 갓 꺼낸 반찬을 한입 씹고는 몸서리를 치는 수준이라 치과를 갔더니, 치경부마모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칫솔질을 가로로 하는 경우(a.k.a 차인표의 ‘분노의 칫솔질’) 잇몸이 파이면서 생기기 쉬운 질환인데, 내 경우는 두통 완화 목적으로 한 교정치료 과정에서 잇몸에 파묻혀 있던 치아의 뿌리가 드러나는 부작용 때문이라고 했다. 칫솔질만큼은 일찍부터 제대로 배웠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배웠다기보다는 관찰해 스스로 터득했다고 해야 하나? 할아버지가 칫솔질을 마치 신성한 의식마냥 정성 들여서 하던 모습이 칫솔질을 할 때마다 떠올라서, 이를 닦을 때마다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결코 의도하지는 않은 건조한 연상작용에 불과하지만.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 선생님이셨고..
종이로 된 스케줄러를 쓰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예전 같으면 연말이 될 때마다, 다가올 새로운 해에는 야무지게 살아본다는 결심의 증거로서 스케줄러를 사곤 했다. 하지만 그건 늘 연초에만 부지런히 사용될 뿐 여백투성이로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이제는 모바일 캘린더 앱을 사용한다. 작년까진 텅 비어있었는데, 기획하고 벌린 일이 많아진 탓에 지금은 캘린더가 빈틈없이 꽉 차 있다. 방 청소나 일기와 같은 주기적인 생활은 회색, 보통의 일정은 진회색, 외주 일정은 초록색, 마감은 빨간색, 에세이는 하늘색, 분홍색, 갈색으로 표시해두었기에 캘린더는 알록달록하다. 이번 달엔 외부 업무가 9개나 잡혔고, 에세이 3권 출간 준비, 외주 2가지, 새로운 기획 미팅 2건이 잡혔다. 거기다 개인적으로 글쓰기 모임과 시..
나이가 마흔에, 영화 피디였던 찬실은 항상 함께 합을 맞추던 감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었다. ‘예술 영화’만 하던 찬실을 영화판에서 찾는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아는 동생 영이에게 마음을 고백했으나 아주 젠틀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차인 외롭고 또 외로운 찬실 씨. 마흔이 되면, 아니 서른이 되면, 아니, 사실은 스무 살만 돼도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늘 녹록지 않다. ‘뭐 굳이 어른이 되어야만 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고 머리로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지만, 솔직히 마음마저 그렇게 담담히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나는 비혼주의자는 아니어도 결혼을 안 하거나 혹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해가 지날수록 더 실감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고, 오래도록 일할 수 있..
성당은 영어로 Cathedral이다. 카시드럴? 캐시드럴? 강세가 th에 붙는구나. 발음을 기억하기 쉽지 않네. 몇몇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 소설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대학교에서 일했다던 로버트 아저씨도 그런 이름의 소설은 모른다고 했다. 그래도 퍼블릭 도서관에 단행본은 있었다. 레이먼드 카버의 . 스물아홉 살에 회사를 그만두고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왔다. 큰 결심이 있었던 건 아니고 안 되기 전에 한번 해보고 싶었다. 대충 시기에 맞춰 들어간 회사라 미련도 없었다. 다시 만난 남자친구에게도 그 얘기를 제일 먼저 했다. 워킹홀리데이를 가야겠다고. 교환학생 이외에 처음 겪을 외국살이라 준비는 해야 할 것 같아 회화학원도 다녀보고 여기저기 정보 수집 같은 것도 좀 하고. 알아볼수..
영화 를 처음 본 건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었던 시절이라 를 보고 난 후에는 불쾌감만이 남았었다. 나쁜 일을 겪는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머릿속 꽃밭이던 시절에 봤던 영화 는 한물간 영화감독의 그저 그런 범작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제목에 걸맞은 내용과 스토리로 꾸려진 영화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 뒤 수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지형이 바뀔 만큼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영화 가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 이후로 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영화가 되었다. 3년 전 일이었다. 3년을 온전히 힘들어한 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아직도 누군가에게 선뜻 털어놓기 어려운 경험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
작년 여름, 친구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보게 된 영화가 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고, 허허롭던 일상에 에너지가 한가득 차오르는 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를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라 불렀던 바르다 감독은, 마치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바르다 감독은 원래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이 되었고, 노년에는 설치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프랑스의 유일한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자신이 여성감독으로 과소평가됐다는 평가는 원하지 않았다. “저는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충분치 않겠지만요. 비록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제가 해온..
주변에 적어도 한 명은 그런 사람이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며 주변 사람들은 속이 타든 말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그야말로 즐기는 사람들. 이들을 보는 시선은 보통 부정적일 것이다. 나의 경우,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모난 성격이 상황과 사건과 사람들에 의해 깎여 나가지 않고 뾰족한 채로 고스란히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그(녀)가 속해있는 주변환경이 부럽다. 굳이 따지자면 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인상은 타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왕족'이라는 느낌에 비슷할 것이다. 만약 순탄치 않은 여정이 예상되지만 그 고생에 비해 얻어지는 결과가 향후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될지 여부가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