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의 웃거나 울기. 그러나 마음만은 화병과 같이 향으로 가득하기를, 그리고는 활력이든 나른함이든 황홀토록 억누르기를. 마음이 깊어지는 한, 오그라든 이파리를 날개들이 살랑이는 나무처럼, 고통스러워하거나 기뻐하기. 생각하면서 혹은 꿈꾸면서 아무튼 떠나기. 그래도 심장은 자신의 생기를 주고, 영혼은 노래하고 일렁이길, 바람에 밀려드는 물결처럼. 마음은 환히 밝혀지거나 베일을 쓰거나, 어둡든 선명하든 돌고 또 돌아도, 그 그림자와 그 빛은 해나 별을 지니기를... 원문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rdeur.php 다은 매 시가 새롭다고 하지만, 이번 시는 좀 더 신비로운 문체였습니다. 그 어조가 지금까지의 시와는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는 없을까?”, “왜 나는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기가 정말 필요한 걸까?” 등의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끔 했다. 바로, 의 이름으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 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라,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올리기 위해 아주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정말 있어야 할까? 타인에게도 유의미할까? 라는 걱정 또한 불어났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말로 표현 못할 벅참과 묘한 감정으로 내게 돌아왔다. 트위터에서 펀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었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간 자신이 겪은 자책과..
마흔 되면 죽어야지, 그 추레한 나이를 어떻게 견디고 살아? 마흔 되기 전에 뭐든 이루지 않으면 일단 실패 아닌가. 마흔 넘은 뒤에는 그저 견디는 삶만 남잖아, 다 져버린 삶. 20대 초반,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게 생각난다. 이런 대화는 힘이 세서 혼자 남겨진 뒤에도 귓속에서 숱하게 되풀이되었다. 정말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이 말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물론 그 생생함과는 다르게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20대 후반에 결혼하여 10년간 직장 생활을 이어갔으며, 그 와중에 딸아이도 둘 낳고 키웠다. 이혼도 했다.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며, 글을 쓰고 만지는 일, 글 쓰는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었다. 기획자와 활동가의 정체성 또한 키워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
4월을 위한 노래 밤새도록 이슬비가 툭툭 총총 미끄러져 내렸어 깊은 숲속으로 들이쉬러 와 씁쓸한 초록의 향기를. 네 마음은 싹트기 시작하는 하루처럼, 서글프고, 어둡고 지쳤어 사랑 어린 라일락의 향기가, 순식간에 저물어 갈 거야. 오늘, 가여운 영혼은 몽롱한 고통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느낀다. 축축하고 죽어가는 잎사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들으러 와.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chanson-pour-avril.php 민주 독자 여러분, 「4월을 위한 노래」가 마음에 드셨나요? 왜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한데, '음... 그냥'이라고 대답하신다면 제일 기쁠 것 같아요.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는 것처..
모든 추억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모든 기억을 추억할 수는 없다는 말을 어느 소설책에서 읽었다. 요즘 내 낡은 기억과 추억을 떠올려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흐려지고, 즐겁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선명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마음은 편하지만 조금 슬프기도 하다. 아픔을 지우고 행복만 남긴 것이 왠지 거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고향집에서 보관해오던 옛 친구의 편지와 사진이 든 박스가 택배로 도착했다. 오랜만에 박스의 실물을 보려 하니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 같았다. 가끔 궁금해져서 열어보고 싶다가도 얼핏 떠오르는 과거의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외면해 왔지만, 최근 들어선 내 머릿속에만 있는 기억이 아닌 조금은 객관적인 과거가 궁금해졌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함께 낡..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읽음 표시가 뜨자마자 바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얼마 전에도 수자에게 “엄마, 사랑해”라는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윤희에게 보낼 때도 그랬었다. 그들은 내가 혹여 죽음의 문턱 앞에 서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과거형은 아니다. 지금도 꾸준히 신경정신과에 내원하며 약을 받고, 약 없이는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해 알고 있는 상태이며, 그것을 잠시라도 극복해낼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앓았다, 고 쓰고 싶었다. 우울증은 전조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당시 나는 사이버 대학교에 재..
새벽 6시 40분 겨울에는 아직도 어두운 이른 아침, 오늘도 새벽길을 달려 손녀, 손자가 기다리는 딸네 집으로 향한다.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는 방학이라지만 요즘의 교사는 방학 때 더 바쁘다. 연수에 출장에 기타 등등. 그러다 보니 애들 아침밥 챙기는 것부터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내 차지일 때가 많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있는 식자재를 조합해 창의적인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작은 손자 녀석은 숟가락을 잡지도 않는다. 떠먹여야 겨우 입을 벌린다. 어린이집에서나 또 지 에미랑 먹을 땐 잘도 떠먹는다는데 할미는 만만해서 그런가 아니면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가. 손녀 손자 아침밥 먹는 동안에도 또 점심엔 무얼 먹이지? 하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나의 숙제다. 애들 식사 챙기고 먹이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다. ..
꼬박 2년 동안 나는 꼴초였다. 3년 전쯤 한 달에 몇 개비씩 입에 대기 시작해서 2년 전부터는 틈만 나면 흡연을 했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담배를 끊고 싶어 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이 버려진 꽁초를 가지고 논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나는 그 글을 보고도 한참이나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는’ 하지 못했다. 이따금 끊을 거라고 끊을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공연한 농담처럼 가벼운 말들이었다. 비건을 시작하고도 담배는 한참 피웠다. 크루얼티 프리 비건 제품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고통에 동하여 니코틴을 떨쳐버리기엔 난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었다. 못난이가 우리 가족의 일상에 나타난 시기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정확히 맞물린다. ..
살다가 문득,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호기롭게 눈썹 위로 짧게 자른 앞머리가 어느새 눈썹과 가까워져 있을 때, 글씨를 쓰다 문득 시선이 볼펜 끝, 길어진 손톱 을 향할 때, 새벽 적막 속 온통 까만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불빛이 화장실 불이었을 때, 100도의 끓는점을 우습게 보고 마신 찻물이 혀에 닿았을 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기사 아저씨를 향해 뜨거운 아이컨택을 하며 전력질주 할 때. 그 외에도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는 시간 속 찰나의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아있음을 느끼려, 그 순간들을 알아채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기 전의 나는 ‘왜 살아?’라는 삶을 향한 질문, 그러나 결국 나를 향해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은 적이 없었다. 타인의 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의 첫 문장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문장이지요. 과연 그렇구나, 하며 고전의 위대함과 영속성에 감탄하게 됨과 동시에, 이에 속하지 않는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한 집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여성 빈곤 노인층의 일관성입니다. 사업 실패나 불우한 환경 등 남성 노인들이 각자 서로 다른 다양한 이유로 거리로 내몰렸다면 여성 노인들의 불행은 하나같이 닮았습니다. 가정 내에 얽매이는 한정되고 구조화된 한평생의 결과는, 본인의 의지와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닌 가부장의 경제적 지위에 좌우되는 삶이다 보니 그렇게 그들만의 열악한 평균에 수렴될 수밖에요. 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