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나는 왜 비건이 되었나 한지윤 내가 비건이 된 결정적인 계기는 좋아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은 자신을 비건이라 소개했다. 그 뒤로 나도 페스코로 채식을 시작하게 되었고 페스코 단계에 해당하는 생선, 우유, 계란 중에서도 생선만 먹었다. 그러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생선은 생명이 아닌가? 그러자 이내 ‘생선은 먹어도 된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부끄러워졌다. 페스코로 시작한 건 채식에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지만, 동물권을 생각하는 채식이라면 당연히 비건이 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한 달 후에는 비건이 되었다. 비건이 되고 나서 나는 행복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얘깃거리도 생기고..
공원에서의 슬픔 울창한 풀 속으로 들어가자 햇볕이 길을 드리우는, 춤추는 잎새의 그림자들이 손처럼 어루만지는 길로. 꽃받침에서 올라오는 부드러운 향을 들이마시자. 우수의 또 열의의 비참한 재미를 음미하자. 우리 둘의 조화로운 영혼이 저마다 비밀스러운 향을 주고받기를, 아린 이끌림이 몸과 마음을 하나로 잇기를... 여름은, 싱그러운 입사귀들 속에서 뛰놀고 쉬고 또 취해. 하지만 놓아줄 것이 없는 사람은 아쉬운 꿈에 눈물을 흘리지. 행복, 포근함, 기쁨은 뒤얽힌 팔들 사이를 붙잡아. 그럼에도 마음들은 고립되고 피로해, 마치 휘청이는 어느 잔가지처럼. 어째서 여전히 이리도 슬픈 걸까 운명은 순조로운데도, 그리고 왜 이 하릴없는 이끌림은 죽음을 향하는가?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
내가 아기일 때부터 초등학생 시절 무렵까지 서울에 사는 친척 언니의 옷을 물려받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난 그걸 참 좋아했다. 남쪽지방에 살던 우리에게는 ‘서울’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련됨과 고급스러움을 뜻했기에,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나도 서울 사는 사촌 언니가 멋있어 보였다. 사실 서울은 아니고 인천에 살았지만. 엄마는 그게 너무 싫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조카들 입으라고 보냈다며 비싼 옷이라고 생색내던 할머니가 미웠을 것이다. 또 보내온 옷들 중에는 형편없이 낡아서 입기 민망한 것들도 섞여 있었다고 한다. 엄마의 주관적인 기억이 덧씌워져서 과장됐을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분명 엄마에게 즐거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다. 눈치 없이 나는 그 낡은 옷 한 보따리를 산타할아버지의 선물 보따리처럼 좋아했던 기억만 난다..
나에게는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있다. 이름은 윤희다. 아빠가 술 먹다 지었다는 내 이름과는 달리 조금 더 정성스레 지은 이름 같기도 하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이 차가 많이 날수록 어색하거나 안 친한 경우가 대다수라고 한다. 그러나 윤희와 나는 서로에게 꽤 좋은 친구다. 아마 윤희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어릴 적 나는 동생이 갖고 싶었다. 그러다 정말 동생이 생겼을 땐, 너무 기쁘고 신나서 방방곡곡 동생이 생겼다며 자랑하고 소문을 내고 다녔는데, 그럴 때마다 수자는 창피스러워했다. 이제야 수자가 왜 그랬는지를 알 것 같다. 아파트 단지 사람들, 관리기사님들, 분식집, 슈퍼, 야채가게 사장님, 동네 아줌마와 아저씨들, 유치원 선생님, 하물며 지나가던 멍멍이에게도 “우리 엄마 임신했다!”를 외쳐댔으..
답은 ‘각자’, 그리고 ‘같이’라고 생각한다. 꼭 정해진 답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살고 있다. 라는 연재 메일링을 진행한 적이 있다. 메일링을 진행하기 전에, 동거에 관해서 당신이 궁금한 점은? 혹은 질문하고 싶은 점은? 하고 질문을 했다. 이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주거 공간 마련의 비용’, ‘생활비의 분담’에 관련된 질문이었다. 내가 꼽아둔 예상 질문을 빗나가는 질문이라서 좀 당황했다. 내가 생각한 질문은 ‘애인과 같이 살면 좋은가요?’ 혹은 ‘애인과 헤어지면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와 같은 질문이었다. 실제로 친구들이 많이 물어본 질문이라서, 그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경제적인 질문이 많은 이유는 아마 아무도 그것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애인인 알..
* 은 시, 소설, 에세이 등 다양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소개하는 웹진쪽의 새로운 코너입니다. 담요을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zxcv 담요를 잃어버려서 다행입니다 저를 잘 길러 돌려주세요, 홍학이 말했습니다 그는 고등학교 수학여행에서 택견을 알려주는 사람이었습니다 홀새김첫단을 시작합니다 회목치기 밭장치기 학치지르기 안짱걸이 깍음다리 세계사의 한 축으로 우리는 리듬과 스텝이 되어 각자 참전했습니다 휴전을 잊었습니다 사랑하지만 떠나야 했던 사람들을 잠깐 떠올렸습니다 낮에 웃는 학생들이 낯설었습니다 허수아비를 하나둘 안아줍니다 무림의 고수가 여기 동료를 찾아왔다는 듯이 흰 천에 코를 풀고 싶었습니다 흰 천에 입을 닦고 싶었습니다 흰 천에 고개를 파묻고 일어나지 않고 싶었습니다 어우르지 않는 밤의 캠프파이어는 ..
휴식 신비롭고 낯선 믿음의 쾌락, 사랑, 아름다움, 욕망은, 좋은 일보다 나쁜 일을 많이 했지 사랑과 고통에 지친 채로 되돌아오는 나의 영혼에. 자, 만족을 모르는 영혼아, 그림자 안에서 깊은 잠을 자자, 슬픈 갈망에서 벗어나 삶 너머의 기쁨 그리고 인간사를 초월한 사랑을 꿈꾸면서… * ‘이교도적인’, ‘기독교가 아닌 비주류 종교의’ 등을 의미하는 단어 ‘païen’은 다소 차별적인 의미를 빼고 문맥에 맞게 다듬어 ‘낯선 믿음의’로 번역했다. * 원문 링크 : 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e-repos.php 민주 휴식과 사랑. 나에게 있어 의미가 많이 바뀐 단어들이다. 오랫동안 휴식이란 한 '공간'에서 몸을 쉬게 하는 일쯤으로 생각했었는데, 언젠..
평소에 읽을 책을 미리 정해두는 편입니다. 도서관 신착도서 명단을 훑기도 하지만, 읽을 책을 고르는 데 있어서 트위터가 매우 큰 지분을 차지합니다. 타임라인을 훑다가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혹하거나 신간도서를 알려주는 계정의 영업에 넘어가기도 하고, 출판사의 홍보에 솔깃해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 추가하곤 해요. 오늘 소개하게 된 는 트위터에서 누군가의 후기를 통해 알게 된 ‘소확혐(小’確嫌),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이라는 흥미로운 부제의 책입니다. 이제 거의 지름신 영접을 위한 마케팅 용어가 되다시피 한 ‘소확행’에 기반한 개념이고요. 취업, 물가, 부동산 문제 등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인한 힘듦은 차치하고, 개별적이며 그보다 덩치가 작으면서도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를 어떻게 대하면 ..
방년 27세 한소리. 나는 레즈비언이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자친구도 있다. 여자라고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며, 취향도 확고하다. 쌍꺼풀이 있고, 앞머리가 있고, 단발 이상의 머리 스타일에 통통한 사람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상형일 뿐, 실제로 만나는 사람은 취향 바운더리 바깥에 있기도 하다.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겉모습만 보고 시작되는 감정이 아니니까. 첫인상에서 호감도를 판단할 수 있는 가벼운 기준 정도로 생각할 뿐이다. 나는 머리가 짧다. 입는 옷 또한 무난하고 펑퍼짐한 검정이다. 치마나 원피스, 화려한 액세서리나 화장은 그만둔 지 오래다. 이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내가 처음부터 레즈비언이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틀린 추측이다. 나는 스물두 살 때까지 남자와만 교제했다. 무..
요즘은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한 때 큰 버팀목이었던 오랜 지인과 의절하고, 지난 3년 동안 휑해진 빈자리를 메우기 위해 분주하게 살아왔다. 정신건강에 해로운 관계를 끊어내고 난 뒤 그들이 없는 나의 일상은 클린해지고 ‘정상’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그동안 알고 지내 온 시간이 15년이 넘는지라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순 없었다. 그렇지만 오랜 친구라는 명분만으로 백해무익한 관계를 이어가기엔 내가 이제 나를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과 의절한 것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들과 의절할 수 있었던 건 나에게 아주 큰 시련이 닥쳤을 때 만난 지인 덕분이었다. 힘든 시기를 겪었을 때 나에게 도움을 주던 지인은 어려움을 견딜 수 있게끔 조언도 해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조금씩 일깨워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