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다. 분명 어젯밤에 꿈을 꾼 것 같은데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꿈속에서 경험한 감정만이 ‘느낌적인 느낌'으로 남아있는 경우. ‘참 희한한 꿈이었는데, 내용이…’, ‘왠지 내가 막 웃었던 것 같단 말이지. 근데 내용이…!’, ‘뭔가에 쫓기는 기분을 잔뜩 느꼈어. 근데 내가 뭐에 쫓겼더라?’ 같은. 나의 과거지사도 그러하다. 이미 꿈처럼 아득히 멀어진 일이라 기억나는 것은 소수일 뿐, 대체로 ‘그랬던 것 같아…’의 수준을 벗어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전 편에서 내가 적어 내려간 것들은 다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시각으로 보면 반은 진짜고 반은 가짜일 테다. 아니, 굳이 말하자면 모든 것이 가짜일지도. 사람들은 자기만의 시각을 갖고 있다. 꼰대처럼 굴지 말고, 개똥철학 좀 넣어두라는 핀잔은 ..
교환학생으로 외국 생활을 한 덕분에 세계 각국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었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뒤늦은 자아 찾기를 할 수 있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연습을 했고, 좋아하는 것을 고르는 자유로움과 있는 그대로 존재함에서 오는 안정감을 얻었다. 그렇게 1년을 보냈고 자존감이 굉장히 높아진 상태로 귀국을 했다. 이대로라면 나를 마음껏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인생이란 그렇지, 순조롭지 않았다. 한국에서 다니던 대학교에 돌아와 수업을 듣고 귀가하려던 어느 날이었다. 그날 나는 일본 빈티지 가게에서 산, 자수가 들어간 파란색 원피스에 독특한 별무늬가 들어간 레깅스 차림이었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잠옷이니?” 너무나 당황스런 나머지 아무런 말이 나오지..
어린이도서관은 일주일 중 6일 동안 문을 열었다. 이 6일 중 5일을 도서관에 오는 여자아이가 있었다. 오늘은 그 아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 아이가 도서관에 오는 날이면, 모든 배경이 희미해지고 공간이 음소거가 된다. 이용자가 많을 때도, 적을 때도 그 아이만 등장하면 오로지 그 아이만 보인다. 간단히 목례만 하고 서가 쪽으로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을 늘 눈으로 좇는다. 언제 왔냐는 듯이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가 많아서다. 발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고 책장 넘기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럴 땐 꼭 잠자러 온 바람 같다. 하지만 대체로 고양이 같은 모습으로 도서관에 온다. 살금살금, 사뿐사뿐, 인간 세상에 잠시 놀러온 고양이 같다. 놀러오긴 했지만 종이 다른 동물들의 공간에 발을 들여놓았으므로 조심..
나는 20대 초반 아주 일찍부터 결혼을 꿈꿨다. 만나는 애인마다 이만하면 결혼할 재목인지 나름대로 늘 따져보았다. 스물한 살에는 엄마 앞에서 만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며 호들갑을 떨다가 등짝을 맞기도 했다. 스물부터 스물넷, 짧다 하면 짧고 길다 하면 긴 5년이라는 시간. 나는 해마다 다른 사람을 만났다. 마음 곳곳이 여전히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로 인해 활활 불타고 있었으므로 누군가와 오래 관계를 이어가는 일이 어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연애를 멈출 수 없었는데, 그것에는 필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애인을 사귀게 되면서 처음으로 안전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연애란 내가 꿈꿔온 무조건적인 사랑에 걸맞은 훌륭한 시스템이었다. 내 감정을 알아달라고 아무리 소..
건축가 유현준은 그의 저서 에서 “얼마나 큰 도서관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도서관이 작더라도 얼마나 촘촘하게 도시 내에 분포되어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서가 되기 전에는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도시에 커다란 ‘○○중앙도서관’만 있어서 도서관은 그냥 그렇게 커야‘만’ 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영화에서도 보면 쭉 진열된 책장에 빼곡하게 꽂힌 책들의 이미지만을 보고 자라 도서관은 근엄하고 딱딱한 공기가 흘러 ‘절대 정숙’해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이 나도 모르게 뿌리내려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보통 인터넷이나 대형 서점에서 필요한 책을 샀고, 도서관은 책들을 검색해 빌려오는 게 전부였다. 한마디로, 도서관이란 공간에 대한 향유가 전혀 없었..
엄마와의 사건 이후 삶의 동력으로 삼아왔던 무언가가 작동을 멈춘 기분이 들었다. ‘우리 가족들이 언젠가는 내 상처를 알아줄 거야.’ ‘언젠가는 내가 원했던 만큼 사랑받게 될 거야.’ 나를 살게 한 것은 아마 이런 것들이었으리라. 그러나 운명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곳에 나를 데려다놓은 것이다. 열 살 무렵의 일이다. 나에게는 큰고모와 작은고모가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그들은 종종 술에 취한 채 우리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곤 했는데, 그날 역시 그런 날이었다. 목적은 엄마인 것 같았다. 언니가 거실에서 큰고모와 몸싸움을 하며 그녀를 막았지만 작은고모가 대신 안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에 있던 엄마의 목을 졸랐다. 나 역시 침대 위로 기어올라 울며불며 작은고모의 손을 떼어놓으려고 애썼다. ‘제발 ..
10월의 끝물에 어쩐지 자꾸만 유월이가 떠올랐다. 유월이는 내가 초등학생일 때, 엄마의 미용실에 놀러 가면 만날 수 있는 강아지였다. 미용실 옆 꽃가게 아저씨는 뒷마당에 유월이를 묶어놓고 길렀는데, 6월에 그 집의 일원이 되어서 이름이 유월이라고 했다. 그는 순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몸집이 작은 강아지였다. 다가가면 피하지도 않았다. 그전까지 난 동물에 관심이 없었다. 사람도 아닌데 덩치는 벌레나 식물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움직임도 활발하고 큰 소리도 내니까, 사실 무섭기만 했다. 반면 유월이는 당시에 만나봤던 동물 중에 가장 얌전했다. 크게 짖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유월이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짖거나 낑낑거렸던 적이 있기는 했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큰 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겁먹지..
모두 가 버렸어. 에바 린드스트룀 그림책 의 첫 문장이다. 표지에 주인공 프랑크가 ‘모두 가 버리고’라는 제목 아래에 서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첫 장을 넘기면, 세 명의 친구들이 몸은 오른쪽을 향해 있지만 시선은 왼쪽을 바라보고 있다. 연이어 보면, 프랑크와 친구들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서로’ 바라보는 모습이라고는 할 수 없겠다. 프랑크는 시선과 몸이 모두 한곳을 향해 있지만, 친구들은 어딘가를 가고 있는데 시선만 반대쪽으로 곁눈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화면에 담기진 않았지만 단절되어 보이는 시선 처리가 이 책의 주제와 잘 닿아 있다. 표지에서부터 이미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글의 시작부터 첫 문장과 표지 이야기를 단도직입적으로 하는 이유가 있다. ..
다행히 중학교 3학년 무렵 부모님은 이혼을 했다. 나는 그 일이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근본적인 문제를 살피지 못하고, 눈앞의 사사로운 고통과 편견에 휘둘리던 나의 가족. 그 모습은 마치 밑 빠진 독과 같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는 순순히 이혼해주지 않았다. 엄마와 나는 무작정 아빠의 짐부터 정리했다. 함께 살던 친할머니는 약 1년 전부터 큰고모와 함께 집을 얻어 분가하신 참이었다. 아빠가 나간 사이 엄마 차에 짐을 싣고 친할머니 집에 내려다 놨다. 엄마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고 내가 홀로 할머니 집 앞에 짐을 옮겼던 것 같다. 소란스러움에 문을 연 할머니가 나를 쳐다보았었지. 엄마보다 더 엄마같이 느껴지던 친할머니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아빠와 내연녀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으면서 비밀에 ..
일을 하다가 자꾸 손바닥을 본다.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일이 안 풀려 얼굴을 감싸다 문득. 화장실을 가는 길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가만히 손바닥의 주름을 쳐다본다. 지문을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살펴보기도 한다. 지문은 엄마뱃속에 있었을 때 양수의 흐름으로 만들어진다던데 그렇다면 이 무늬는 내가 기억하기 전의 기록이구나 하는 생각도 한다. 손바닥 주름이 조금씩 깊고 진해지는 걸 느낀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다는 것이고, 내가 그만큼 더 살아왔다는 것을 손바닥의 흔적을 통해 느낀다. 유심히 관찰하는 것은 손바닥만이 아니다. 요즘 내 몸을 온전히 내 시선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시선을 신경 쓰고 타인과 세상의 기준에 맞는 몸이 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무의식적으로 세뇌당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