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방금 집에 돌아왔다. 닫히는 문의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적막. 습관처럼 신발을 벗는다. 집에는 가구나 집기가 거의 없다. 전등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 그러나 그는 어둠이 두렵지 않은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좀체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방이 어둡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같아.” 그녀는 그를 여러 이름으로 정의했다.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순수가 가려진 사람, 회색 인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정의들로. 그는 누군가로부터 정의 내려지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그에게 그만한 관심조차 없었다..
자조모임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색의 팔찌다. 각 색깔은 고인과 사별자의 관계를 상징한다. 고인이 자신의 형제자매라면 주황색을, 애인이나 파트너라면 빨간색을, 친구라면 보라색을, 부모라면 흰 색을 착용한다. 이렇게 팔찌를 착용하는 이유는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가 애도의 모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숙제다. 그런데 이 팔찌 색깔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간에 긴장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나도 2년 넘게 매달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병원에서 오래 엄마를 간병하면서 알게 된 건, 병원에 있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데 쓴다는 것이었고,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괴팍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꽤 노력이 필요하단 거였다. 장기 입원 환자들이 시시때때로 간호사를 호출해서 발이 시리다, 약이 제대로 투여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하는 것도 모두 시간을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이다도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별의별 방법을 써봤다고 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겨울에 두를 목도리를 짜기도 했고, 유투브로 베이킹 기초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점점 뭔가 하는 걸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정고시를 보기 위..
어린 나에게 ‘돼지’는 가장 화가 나는 욕이었다. 스스로 뚱뚱하다고 여겼다. 확실히 마른 몸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금방 비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변인들에게 돼지 소리를 들을 것 같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돼지 호칭을 경멸하면서도 삼겹살 냄새를 맡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동생이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에 자주 갔다. 외식을 하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먹게 되었고, 고깃집에서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뱃살이 평소보다 더 나와 있었고 그런 나의 몸이 징그러워 보였다. 그런 날들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고 난 돼지는 물론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처음 비건 선언을 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런다고 살 안 빠진다..
너에게 편지를 써.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너에게. 네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기억들을 마구 꺼내어서 내 작은 방에 무지막지하게 쏟아 놓는 기분이야. 그렇게 쏟아 놓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도 떠오르곤 해. 그 만남이 무척이나 반가워서 이렇게 자꾸 네게 편지를 써. 나중에 정리하는 게 아무리 고된 일일지라도 말이야. 오늘은 사실 몸이 무척 아팠어. 아프다 보니 차갑던 네 방이 떠오르지 뭐야. 오랜만에 찾은 네 방은 벽이 깨끗했어. 우리가 함께할 때는 낙서와 담뱃진으로 벽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아마 도배를 새로 한 모양이더라고. 함께한 시간이 기록된 벽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거니? 새로운 마음으로 네 삶을 꾸려가고 싶었던 거니? 어떤 이유든 ..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여기가 거기예요.” “극락이라고요?”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시적인 제목의 는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에서 운행되던 열차라고 한다. 이 작품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과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블랑시는 가문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이 망가져 버렸다. 방황하던 블랑시는 여동생 스텔라가 사는 ‘극락’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이 결코 극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열차에서 내린 순간 알 수 있..
행복한 사람의 도시 자신의 도시에서, 자기 공간의 주인으로서, 즐겁고 금빛인 인생의 아침부터 꼭 같은 장소에 계절이 돌아오는 풍경을 음미하고 차분한 오후가 따라오는 낮 시간을 만나는 행복한 사람 아름다운 비둘기처럼 변함없고 꾸밈없는 달과 해는 그의 저택으로 향하고, 싹을 틔우는 장미나무와 같이, 행복한 사람의 삶은 매시간 빛에서 꽃피운다. 그는 나아가지, 운명의 그루터기에 새싹을 돋게 하고, 들쑥날쑥한 나뭇가지와 먼저 난 나뭇가지를 섞으면서, 그의 정연한 마음은 꼭 그의 정원처럼 오래되어 잎이 없는 나무껍질 위에도 새로운 꽃들이 가득하지. 행복한 사람은 그림자와 사랑, 노을에 타는 듯한 풍요의 언덕들을 만끽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무수한 날들 속에서, 도시를 흐르는 강가에서 꿈을 향한 목마름을..
2015. 02. 15 영혼을 갈아 넣는 느낌이다. 아니, 갈아 넣는다기보다는 영혼의 외피를 전부 벗겨서 말랑하고 여리고 투명한 영혼의 속살을 안이 뾰족한 상자 속에 구겨 넣는 느낌이다. 내 영혼이 치명상을 입지는 않겠지만 계속 거슬리게 아픈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생채기가 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나를 그 작고 차가운 상자 속에 밀어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기는, 대가 때문이지. 내 영혼을 밀어 넣는 대가. 그것은 안정감이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어딘가를 나다닐 수 있게끔 하는 동아줄. 돈이다.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돈.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안정감을 주는 동아줄이 고작 115만원이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대가가 고작 115만원이라니. 물질에 매몰된 삶, 안정에 ..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없다. 독립과 홀로서기에 대한 열망은 매우 컸지만, 청소년 시절엔 부모님과 살았고 스무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부모님과 살다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와서는 친구들과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배우자와 산다. 별일이 없는 이상 나는 이대로 평생 2인 가구로 살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공유 공간이 사유 공간보다 넓다는 이야기이다. 공유 공간과 분리된 사유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좁았고 그곳에서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야했다. 내가 선택한 건 유튜브 시청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대학을 다..
『키오스크』의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가판대)를 지키는 사람이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올가의 하루가 열리고 닫힌다. 그림책의 문장처럼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나 다름없”지만 키오스크의 좁디좁은 공간과 각진 테두리는 올가의 세상이 아니라 올가가 세상과 만나도록 하는 몸 혹은 피부에 더 가깝다. 키오스크를 통해 올가는 세상과 이어지고, 그러면서 올가는 매일매일 환해지니까. 미소 가득한 얼굴로 단골손님을 맞는 올가는 그들이 무엇을 살지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것인지를 거의 알고 있어서, 그 마음과 필요에 걸맞은 물건을 정확하게 건넨다. “연애에 늘 실패하는 숙녀는 여성 잡지에서 도움말을 찾아요.” “머리를 올려 묶은 아주머니는 낚시랑 고양이랑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