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는 속이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일 더는 속이는 일이 아닌, 사랑하는 일. 어떤 계략도 필요 없어 우리가 마음에 들어 했던 달아나는 몸을 따뜻한 팔이 꼭 안아줄 때면. 꿈꾸고 노래하고 너의 낙원을 짓는 내 목소리를 믿어봐. 만약 네게 말해주지 않았더라도 내가 못됐다는 걸, 넌 알았을까? 마음속에서는, 조금 짓궂긴 하지, 때로는 다시 깨닫곤 해 너를 사랑하면서 포기했던 그 분별 있는 외로움을!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aimer-c-est-de-ne-mentir-plus.php 민주 무언가를 열렬히 좋아하는 일에도 솔직함이 필요하다. 방어막은 대부분 좋아함의 주체가 치는 경우가 많고 그것에 쉽게 좌절하는 것도 본인일 터다..
바쁜 꿀벌 정수 님께, 정수 님, 요즘 많이 바쁘시죠? 바쁜 와중에도 며칠 전 실의에 빠진 저를 위로하러 한 걸음에 달려 와주셔서 감사했어요. 정수님을 볼 때마다 얼른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다짐하는데 참 쉽지 않네요. 무기력함을 느낀 지 어언 1년 남짓의 시간이 흐른 것 같아요. 우울증과 공황 장애로 인해 찾았던 병원을 다니는 동안 스스로도 인정했던 것이 번아웃이었는데, 나아지는 듯 아닌 듯 더딘 변화를 느끼며 살고 있어요. 현재 근무 중인 회사를 다닌 지도 어언 8년 차가 되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 있을 수 있냐 깜짝깜짝 놀라곤 하는데, 지나온 시간을 돌아봤을 때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인 것 같아요. 처음엔 인턴으로 입사해 1년 후면 재계약이 되지 않을 거란 말에..
고양이는 신기한 존재다. 온갖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힘겨운 마음 때문에 어쩔 줄 모르다가도, 고양이 쪽으로 눈을 돌리면 적어도 그렇게 고양이를 바라보는 동안만큼은 함부로 행복과 평화를 말하고 싶어진다. 아무리 바라봐도 질리지가 않고, 눈앞에 저 존재가 있다는 것이 그저 고마워서 네가 나를 사랑하는지, 혹은 내가 너를 사랑하는지 물을 겨를조차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 물론 함께 살게 될 경우 성가신 일이 많긴 하다. 고양이와 사는 건지 털 뭉치와 사는 건지 모를 만큼, 사방에 날려가 달라붙은 온 털들을 처리하는 것이 매일의 숙제로 건네진다. 고양이 대변 냄새는 또 너무 강렬한 나머지 매일같이 새롭다. 하지만 이런 매일의 일거리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이렇게나 아름다운 고양이가 내 가까이에 실재하..
“고향이 어디야?” “마산이요.” “그럼 아버지가 어부시니?” 내가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알바하던 편의점 사장은 마산이 어촌인 줄 알았나 보다. 마산이 바닷가 근처이긴 하지만 나는 직업이 어부인 분을 만난 적이 없고 회도 좋아하지 않는다. 마산에 있을 때는 서울이 그리 멀어 보이지 않았는데, 서울에서 마산은 아주 멀었다. 나는 줄곧 마산을 떠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서울에 가면 직업도 다양하고 즐길 거리도 많고 재밌는 경험과 기회들이 날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았다. 마산을 떠나던 날, 서울에서 무엇을 이룰 것인가에 대해 상상하던 그 설렘이란... 마산을 떠나 처음 살게 된 곳은 뜻밖에도 서울이 아닌 천안이었다. 함께 살기로 한 친구 B가 구한 집이었다. 나는 서울에 있는 일러스트 학원을 다..
틀어놓은 노래의 박자가 몸을 맡기기에 적절할 때. 집안일을 막 마무리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을 때. 남편은 가끔 춤을 추지 않겠냐고 묻는다. 우리는 빙글빙글 돌며 왈츠도 아니고 블루스도 아닌 정체 모를 춤을 춘다. 아래층에 울리지 않을 정도로만 발을 굴리며, 동작이 서로 꼬여서 몸이 부딪히면 웃음을 터트리기도 하면서. 온 집 안을 휘저으며 춤출 때도 있지만, 주된 무대는 거실과 부엌이다. 지금은 식물 선반으로 옮겨놓았으나, 입주 후 한동안 거실과 부엌 사이 선반에 자리 잡고 있었던 화분이 있었다. 당근 마켓에서 충동적으로 구매한 칼라데아 뷰티스타. 짙은 녹색 위에 하얀색과 분홍색이 오묘하게 섞인 줄무늬가 매력적이어서 데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나와 남편이 춤을 추면 뷰티스타의 앞을 몇 번이고 스쳐가게 된..
스물아홉, 이십구라는 숫자. 다른 사람들이 볼 때 참 늦었다는 말을 들을 법한 그 나이에 나는 다시 일본에 왔다. 처음 일본에 간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교환학생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돈도, 언어 실력도 없는데 지원했고, 붙었다. 지원자 수도 적었고 타 지원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적이 좋아 체류하는 동안 매달 생활비도 받을 수 있었다. 기숙사에서 생활할 수도 있었지만 일본인 사이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할머니가 고양이를 데리고 살고 있는 일본 집에서 홈스테이를 했다. 일본에서 생활하는 동안 때로는, 나가는 출구가 어디냐 물어봤을 뿐인데 이유도 모른 채 역무원에게 무시를 당한 적도 있었다. 또 유학생 친구들끼리 특히 아시아권 친구들과 교내 식당에 들어갈 때면 무대 위 핀 조명을 받듯 온 시선..
꿈을 이루기 위해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는 서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대중의 사랑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지금 진창에 굴려지고 있는 것이 꿈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자위적 당위성의 발로일 수도 있고, 대리만족이나 애증 내지는 상황에 대한 합리화의 결과일 수도 있다는 비뚤어진 생각도 듭니다. 대체 꿈이 무엇이기에, 얼마나 대단하기에 이런 복잡다단한 감정과 연결될 수 있는 것일까요? 한때 소질과 적성의 조합, 자아실현 같은 것들 때문에 정말 머리 터지게 고민하고 방황했던 1인으로서, 꽤나 밀도 깊은 자기계발서인 을 읽다가 정말 오랜만에 이 ‘꿈’이라는 얄궂은 녀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다지 긍정적인 감정은 아니었던 것이, 마치 좋은 꼴 못 볼 꼴 다 본 오래된 인연을 마주한 것 같은 징글..
여느 때처럼 트위터 타임라인을 훑던 중 흥미로운 글을 봤다. 누군가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면, 그건 곧 그 사람이 우울증을 앓고 있기 때문이고 그것을 자신의 성격이나 성향 같은 것으로 합리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원 트윗 작성자가 상담 선생님께 들은 내용을 옮긴 것으로 보였고, 그간 삶의 지향점 같은 것으로 여기고 있던 것이 사실은 병증이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본인과 생각이 다르다는 것에 대해 놀라고 서글퍼하는 것 같았다. 밑으로 달린 댓글들도 비슷한 반응이었는데, 내 경우에는 다소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장수가 모든 인류의 디폴트 희망값이어야 하는지, 무엇이 건강하고 무엇이 정상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누구인가 하는 데 대한 반발심리 때문이었다. 배우자에게 “당신은 오래 살고 싶냐..
다른 회사에서도 이 시스템을 따라 하고자 수천 번을 노력했으나, 아무도 이 회사같이 사실적인 가상 연애 시스템을 만들지 못했다. 이 회사의 독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모르겠지만 향후 몇 년간은 제일 비전이 있는 회사였다. 나는 방송국을 관두기로 했고, 그 사실을 남자친구인 D에게 말했다. 그는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였다. 물건을 집어던지며 다짜고짜 ‘너도 그 워마드(메갈에서 업그레이드가 되었다.)년 따라 가냐, 가짜가 그렇게 좋으냐.’ 라고 말했다. 심지어는 컴퓨터와 섹스를 해보라는 말까지 했다. 이 발화에선 정정할 게 몇 가지 있었다. 일단, 나는 일을 하러 가는 것이지 서비스를 이용하러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실재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관자놀이에 칩을 붙일 때만 AI와 연애하는 시스템이며, 섹..
D의 얼굴에 거즈, 붕대 따위가 빈틈없이 올려져 있다. 다시 그가 눈을 뜰 수 있을까. 눈을 떴을 때 사람의 얼굴 같은 얼굴을 가질 수는 있을까. 헤어진 후 매일매일 그가 자빠져서 잘난 코를 깨먹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큰 사고를 겪기를 바란 적은 없었다. 어쩌면 나는 이 사건의 전조를 다 알고 있었다. 알면서도 애써 모른 척했다. 202X년다운 일이다. AI가 저지른 범죄의 산물을 내 눈앞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이 일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 인간인 내가 물어야 하는 책임일까? “걱정하지 마.” 뻔뻔한 범죄자, 아니 범죄 AI는 이런 내 걱정을 듣고도 D의 목소리로 다정스러운 위로를 건넨다. “네가 저지른 짓이야?” “혜민. 인간은 절대 나를 잡을 수 없어.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때, 간호..
열의 웃거나 울기. 그러나 마음만은 화병과 같이 향으로 가득하기를, 그리고는 활력이든 나른함이든 황홀토록 억누르기를. 마음이 깊어지는 한, 오그라든 이파리를 날개들이 살랑이는 나무처럼, 고통스러워하거나 기뻐하기. 생각하면서 혹은 꿈꾸면서 아무튼 떠나기. 그래도 심장은 자신의 생기를 주고, 영혼은 노래하고 일렁이길, 바람에 밀려드는 물결처럼. 마음은 환히 밝혀지거나 베일을 쓰거나, 어둡든 선명하든 돌고 또 돌아도, 그 그림자와 그 빛은 해나 별을 지니기를... 원문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rdeur.php 다은 매 시가 새롭다고 하지만, 이번 시는 좀 더 신비로운 문체였습니다. 그 어조가 지금까지의 시와는 다르게 느껴졌기 때문..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매일 쓰지 않아도 되는 일기는 없을까?”, “왜 나는 일기를 매일 써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걸까?”, “내일이 없는 사람에게 일기가 정말 필요한 걸까?” 등의 생각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어떠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끔 했다. 바로, 의 이름으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 이었다. 크라우드 펀딩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때라, 나는 프로젝트 하나를 올리기 위해 아주 많은 실패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면서, 이 프로젝트가 정말 있어야 할까? 타인에게도 유의미할까? 라는 걱정 또한 불어났다. 그러나 그 걱정은 곧 말로 표현 못할 벅참과 묘한 감정으로 내게 돌아왔다. 트위터에서 펀딩을 보고 많은 사람이 공감해주었고, 감사하다는 인사와 그간 자신이 겪은 자책과..
마흔 되면 죽어야지, 그 추레한 나이를 어떻게 견디고 살아? 마흔 되기 전에 뭐든 이루지 않으면 일단 실패 아닌가. 마흔 넘은 뒤에는 그저 견디는 삶만 남잖아, 다 져버린 삶. 20대 초반, 친구들과 둘러앉아 이런 이야기를 나누던 게 생각난다. 이런 대화는 힘이 세서 혼자 남겨진 뒤에도 귓속에서 숱하게 되풀이되었다. 정말 오래된 이야기인데도 이 말들은 여전히 생생하다. 물론 그 생생함과는 다르게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20대 후반에 결혼하여 10년간 직장 생활을 이어갔으며, 그 와중에 딸아이도 둘 낳고 키웠다. 이혼도 했다. 시와 산문을 쓰는 사람이 되었으며, 글을 쓰고 만지는 일, 글 쓰는 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었다. 기획자와 활동가의 정체성 또한 키워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
4월을 위한 노래 밤새도록 이슬비가 툭툭 총총 미끄러져 내렸어 깊은 숲속으로 들이쉬러 와 씁쓸한 초록의 향기를. 네 마음은 싹트기 시작하는 하루처럼, 서글프고, 어둡고 지쳤어 사랑 어린 라일락의 향기가, 순식간에 저물어 갈 거야. 오늘, 가여운 영혼은 몽롱한 고통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걸 느낀다. 축축하고 죽어가는 잎사귀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들으러 와. 원문 링크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chanson-pour-avril.php 민주 독자 여러분, 「4월을 위한 노래」가 마음에 드셨나요? 왜 마음에 드셨는지 궁금한데, '음... 그냥'이라고 대답하신다면 제일 기쁠 것 같아요. 오늘은 평소와는 다르게 여러분과 이야기 나누는 것처..
모든 추억을 기억할 수는 있지만 모든 기억을 추억할 수는 없다는 말을 어느 소설책에서 읽었다. 요즘 내 낡은 기억과 추억을 떠올려보면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흐려지고, 즐겁고 아름다웠던 추억은 선명해진 느낌이 든다. 그래서 마음은 편하지만 조금 슬프기도 하다. 아픔을 지우고 행복만 남긴 것이 왠지 거짓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오늘 고향집에서 보관해오던 옛 친구의 편지와 사진이 든 박스가 택배로 도착했다. 오랜만에 박스의 실물을 보려 하니 절대로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만 같았다. 가끔 궁금해져서 열어보고 싶다가도 얼핏 떠오르는 과거의 부끄러운 나를 마주하기가 힘들어서 외면해 왔지만, 최근 들어선 내 머릿속에만 있는 기억이 아닌 조금은 객관적인 과거가 궁금해졌다. 풀풀 날리는 먼지와 함께 낡..
누군가에게 뜬금없이 사랑한다고 문자를 보냈을 때, 읽음 표시가 뜨자마자 바로 전화가 걸려 오는 것은 꽤 슬픈 일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얼마 전에도 수자에게 “엄마, 사랑해”라는 카톡을 보냈는데 바로 전화가 걸려 왔다. 윤희에게 보낼 때도 그랬었다. 그들은 내가 혹여 죽음의 문턱 앞에 서서 마지막 유언을 남기는 것은 아닐까 걱정한다. 나는 우울증을 앓았다. 과거형은 아니다. 지금도 꾸준히 신경정신과에 내원하며 약을 받고, 약 없이는 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지금은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파악해 알고 있는 상태이며, 그것을 잠시라도 극복해낼 방법을 알기 때문에 앓았다, 고 쓰고 싶었다. 우울증은 전조도 없다가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다. 당시 나는 사이버 대학교에 재..
새벽 6시 40분 겨울에는 아직도 어두운 이른 아침, 오늘도 새벽길을 달려 손녀, 손자가 기다리는 딸네 집으로 향한다. 딸은 초등학교 교사다. 학교는 방학이라지만 요즘의 교사는 방학 때 더 바쁘다. 연수에 출장에 기타 등등. 그러다 보니 애들 아침밥 챙기는 것부터 심지어 저녁 식사까지 내 차지일 때가 많다. 냉장고에서 이것저것 있는 식자재를 조합해 창의적인 요리를 식탁에 올리면 작은 손자 녀석은 숟가락을 잡지도 않는다. 떠먹여야 겨우 입을 벌린다. 어린이집에서나 또 지 에미랑 먹을 땐 잘도 떠먹는다는데 할미는 만만해서 그런가 아니면 응석이라도 부리는 건가. 손녀 손자 아침밥 먹는 동안에도 또 점심엔 무얼 먹이지? 하는 생각뿐이다. 언제나 나의 숙제다. 애들 식사 챙기고 먹이는 게 제일 큰일인 것 같다. ..
꼬박 2년 동안 나는 꼴초였다. 3년 전쯤 한 달에 몇 개비씩 입에 대기 시작해서 2년 전부터는 틈만 나면 흡연을 했다. 담배를 피우는 내내, 담배를 끊고 싶어 했다. 길에서 지내는 고양이들이 버려진 꽁초를 가지고 논다는 글을 보았기 때문이다. 아니, 아니다. 나는 그 글을 보고도 한참이나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는’ 하지 못했다. 이따금 끊을 거라고 끊을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했지만 공연한 농담처럼 가벼운 말들이었다. 비건을 시작하고도 담배는 한참 피웠다. 크루얼티 프리 비건 제품을 사는 것도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동물들의 고통에 동하여 니코틴을 떨쳐버리기엔 난 여전히 인간 중심적이었다. 못난이가 우리 가족의 일상에 나타난 시기는 내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정확히 맞물린다. ..
살다가 문득, 내가 살아있음을 깨닫는 순간들이 있다. 호기롭게 눈썹 위로 짧게 자른 앞머리가 어느새 눈썹과 가까워져 있을 때, 글씨를 쓰다 문득 시선이 볼펜 끝, 길어진 손톱 을 향할 때, 새벽 적막 속 온통 까만 공간에 존재하는 유일한 불빛이 화장실 불이었을 때, 100도의 끓는점을 우습게 보고 마신 찻물이 혀에 닿았을 때,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 기사 아저씨를 향해 뜨거운 아이컨택을 하며 전력질주 할 때. 그 외에도 하루 종일 눈을 뜨고 있는 시간 속 찰나의 순간마다 나는 살아있음을 느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살아있음을 느끼려, 그 순간들을 알아채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노력을 하기 전의 나는 ‘왜 살아?’라는 삶을 향한 질문, 그러나 결국 나를 향해 있는 이 질문의 답을 찾은 적이 없었다. 타인의 시..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 고전 명작으로 꼽히는 의 첫 문장입니다. 이 작품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도 한 번은 들어봤음직한 유명한 문장이지요. 과연 그렇구나, 하며 고전의 위대함과 영속성에 감탄하게 됨과 동시에, 이에 속하지 않는 너무나 분명하고 명백한 집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바로 여성 빈곤 노인층의 일관성입니다. 사업 실패나 불우한 환경 등 남성 노인들이 각자 서로 다른 다양한 이유로 거리로 내몰렸다면 여성 노인들의 불행은 하나같이 닮았습니다. 가정 내에 얽매이는 한정되고 구조화된 한평생의 결과는, 본인의 의지와 역량에 의한 것이 아닌 가부장의 경제적 지위에 좌우되는 삶이다 보니 그렇게 그들만의 열악한 평균에 수렴될 수밖에요. 은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