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집사 은수님께 은수님 오늘 편안한 하루 보내고 계세요? 요즘 식물들과 사랑하느라 바쁘신 걸로 아는데 뭐든 사랑한다는 건 참 좋은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딱히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미워하는 것도 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날씨가 많이 따뜻해져서 배우자와 밤 산책도 종종하고요. 산책하다 은수님의 집 앞을 지나가게라 되면 은수님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 생각도 해요. 최근에는 은수님이 직업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셨는데 저도 비슷한 고민을 조금 하던 중이었어요. 올해 들어, 안 그래도 없던 일감이 더 줄어드니 저의 부족한 능력을 탓하게 되고 마음이 초조하더라고요. 막 스무 살이 되었을 때 학교에서 미래에 내가 어떻게 되어 있을지를 상상해서 나이대 별로 적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저..
이야기 짓는 일을 하는 나에겐 감각하는 모든 것이 창작의 소재가 된다. 예를 들어 장바구니를 들고서 장을 본 하루에 발견한 이야기에는 이런 것이 있다. 프리랜서라 시간을 유동적으로 쓰며 평일 아침에 마트로 향하고 있었는데, 직장인과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일터나 학교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버스정류장 팻말이 박힌 좁은 길가를 차지하고는 해질녘까지 이어질 피곤한 일과를 맞이하고 있었다. 후줄근한 차림으로 그사이를 지나며 아이러니하게도 이질감과 함께 동질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지만 ‘우리’라고 칭하고 싶다) 채우는 시간의 속도와 재질은 다르지만, 어쨌든 각자의 자리에서 늘 그랬듯 아침을 맞이하고 있어서다. 다들 적어도 20년은 넘게 살아왔을 테니 그 ..
내면의 목소리 나의 영혼이여, 어떤 걱정들이 당신의 기분을 상하게 하나요? 살아가는 건 당신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죽는다는 것도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지요. 그래도, 당신은 결코 세상의 다른 짐을 지진 않을 거예요. 살아있는 대상이 되는 것, 놀고, 죽어가는 대상이 되는 것 외에는 말이죠. 나의 영혼이여, 삶을 사랑하세요, 존엄하고 매서운, 혹은 하찮은 그 삶을. 인간의 온 노력과 온 땀을 사랑하세요. 당신의 정성에 언제나 등유가 가득 찬 램프가 당신 두 손 사이에서 생생한, 진리일 수도 있겠죠. 새를, 꽃을, 숲의 내음을 사랑하세요. 노래하는 도시의 명랑한 웅성거림을, 매서운 혐오는 없는 기쁨을 사랑하세요, 악의에 찬 음흉한 비밀도 말고요. 죽음마저도 사랑하세요, 그는 당신의 선량한 후원자, 그로 인해 ..
이랑을 만나고, 나는 중성화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중성화라는 단어는 알고 있었지만, 중성화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왜 해야 하는지 등의 세부적인 것들은 전혀 몰랐다. “괜히 나 편하게 하자고 시키는 건 아닐까?” “중성화하고 이랑이 더 불행해지면 어쩌지?” 이런 생각도 했다. 알아보니 중성화를 하지 않은 암컷 고양이는 유선종양, 자궁축농증, 난소종양이, 수컷은 전립선 질환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질병들이 모두 성호르몬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이란다. 중성화를 살면 더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으므로, 고양이의 중성화는 어쨌든 필요한 과정 중 하나인 셈이었다. 그런데 중성화 수술은 우리 생각보다 꽤 큰 수술이었다. 수컷은 음낭을 절개해 고환을 제거하는 간단한 과정만을 거치면 되는 데 반해..
나는 글을 쓰면 되겠다. 초등학생일 때에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5학년 담임선생님이 원흉이었다. 어느 말하고 듣고 쓰는 수업 시간에 지목을 당했고, 모두의 앞에서 죽은 할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발표를 했다. 가만 듣던 선생님은 너는 글을 쓰면 되겠구나, 하셨다. 그러고는 글을 짓는 행사에 종종 나를 보내서 대회에 참가하게 해주셨다. 상은 기껏 한두 번 밖에 받지 못했는데도, 꼭 나를 부르셨다. 넌 글을 쓰면 돼. 계속 그렇게 덧붙이면서 말이다. 좋은 종류의 세뇌였다. 그 말에 빠져들었다. 글을 쓰면 되겠다고 마음먹은 다음엔, 어떤 글을 써나갈지 다짐할 차례였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슬픈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처음 써본 글이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는 게 영향이 컸다. 그렇게 시작된 글쓰기는 ..
“무슨 관계세요?” 이 질문은 나를 난처하게 만드는 질문 중 하나다. 무슨 관계냐고 묻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딱 봐도 결혼한 것 같지는 않은데 같이 살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이라는 전제를 갖고 질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성애─가부장제 사회는 나와 알파카의 관계를 ‘연인’ 혹은 ‘예비 부부’로 호명하기를 고집한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때 ‘예비 부부’라는 호명은 굉장히 폭력적이다. 나와 알파카는 서로를 가족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이 사회, 그러니까 이성애─가부장제에서 보편적으로 제시하는 가족상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비 부부’라는 호명은 이성애─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부부로서 기능할 것을 기대하도록 하는 효과를 갖는다. 덕분에(?) ‘예비 부부’라는 표현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
“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지 않을까?” 그림책의 화자는 단발머리를 한 여자 어린이다. 위 문장은 이 어린이가 아빠를 떠올리면서 자문하는 말이다. 어린이는, 개가 있고 나비가 있고 하늘이 있는데 어째서 살고 싶지 않을 수가 있는지 묻고, 아빠에 대해서도 또 한 번 묻는다. “어떻게 아빠는 살고 싶은 마음이 안 들까? 내가 있는데.” 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수도 없이 말하던 사람이 별안간 살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한다면 누구든 이렇게 묻게 되지 않을까. 나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마음이 변한 건가. 혹시 내 존재를 지우기라도 한 건가. 하지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이의 아빠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다. 어떤 마음의 병은 교통사고처럼 예고도, 이유도 없이 들이닥친다. 그것은 나의 의지와 의도를 넘어선다. ..
아침이여, 나는 모든 것이 좋았어요. 아침이여, 나는 모든 것이 좋았어요, 너무나도 좋았답니다. 순탄하기도 꼬이기도 하는 인생에 다다르기 위해서, 사람들이 당신께 힘을 요청하는 시간 나의 마음을 무겁게, 고요하게, 반쯤 닫히게 만들어주세요. 잠에서 깬 사람들은 환호를 받아야만 하지만 나의 예민한 영혼은 넘치는 것밖에 몰랐습니다. 아침이여! 당신이 이따금 나의 열정이 쉬도록 내버려두신다면, 나도 모두들처럼 마땅히 환호받을 수 있을 텐데. 나의 활동 무대와 멈출 줄 모르는 추진력으로 그들의 형제를 찾는 내 존재가 그들을 넘어서길, 나는 언제나 시공간 속에서 높이 떠오르기를 수탉의 울음소리와 바다의 폭풍우처럼! 우주는 매일같이 나의 생명력에 호소하고, 나는 그 힘찬 갈망에 끊임없이 대답했습니다. 다만 천진하고..
잊히는 것과 버려지는 것은 같은 동그라미 안에 있다. 단지 낡았다고 해서 버려지거나 잊히는 게 아니다. 낡았다는 건 소중하고 특별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기필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워낙 조용한 아이라서인지 나는 투명한 셀로판지 같았다. 어떤 목록에서 내 이름이 빠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그렇게 내 이름이 빠졌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학교에서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내가 존재한다는 걸 알아챌 때 깜짝깜짝 놀라곤 했다. 학교에서 편을 먹거나 조를 짜야 하는 상황도 곤욕스러웠다. 나는 어디서나 꿔다놓은 보릿자루 같았다. 어릴 때부터 꽤 오랫동안 매일 두 번의 기도를 했었는데 하나는 ‘무서운 꿈을 안 꾸게 해주세요’였고 또 하나는 ‘내성적인 성격을 고..
이 에세이를 연재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 글에 나오는 ‘우리’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한동안 고민했었다. 너무 길어도, 설명적이어도 안 되며 독자들이 보자마자 ‘우리’라는 이 단어를 어떤 공동체적 의미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긴 고민 끝에, 나는 가장 적확한 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얼마 전 이혼 도장을 찍은 50대 여성, 집을 나와 사는 레즈비언 첫째 딸과 갓 스물이 넘은 바이섹 슈얼 둘째 딸, 그리고 중성화한 8살 암컷 고양이 이랑의 이야기!! 그리고 지금. 연재를 시작한 지 벌써 두 달이 되었다. 처음에는 격주 연재로 하였으나 그렇게 된다면 연재를 마칠 때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고, 나는 계속 오래된 것들을 잊어갈 것이므로, 중간부터는 주 1회 연재로 바꾸었다. 주 ..
“여성, 임금노예의 노예에서 자연의 동지로 옆에 서다” 18세기 이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인권과 기회의 평등을 주장해왔고, 가부장제라는 구조적 성차별 체계를 분석하고 비판해왔으며, 사회적 조건과 조응해 구축되는 정신구조 깊이 내면화되어 있는 특정 심리와 욕망이 낳는 여성혐오를 분석해왔고, 문화 문제만큼 경제 문제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고 고용, 임금, 성별화된 분업 및 차별 등에 주목하여 여성이 처한 부당한 상황을 해결하고자 싸워왔다. 마리아로사 달라 코스따가 무엇보다 ‘가사 노동’이라는 성별화된 노동에 주목하고 ‘임금’ 요구를 통해 문제제기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녀 또한 자신의 싸움을 성별노동분업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시작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선집 을 보면 달라 코스따가 197..
바다가 보이는 집에 살다가 집 양쪽에 강이 흐르는 곳에 이사를 왔다. 매일 5km 정도를 걷고 뛰고 생각하고 사람을 관찰하기도 하며 2주가 지났다. 바다 근처에서 살 때는 기온 자체가 낮아 잘 껴입기만 하면 되는 비교적 단순한 옷차림으로 나가곤 했다. 하지만 강이 있는 도심은 달랐다. 건물 사이로 몰아치는 바람과 예측할 수 없는 기온 변화에 차라리 땀을 흘리는 게 낫겠지 하며 3월이 된 오늘도 두터운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 원래부터 달리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학창시절에 운동장을 반복해서 뛰어 기록을 재는 날이면 늘 이를 의미 없는 짓이라 투덜댔고, 뛰는 걸 포기한 적도 있었다. 그랬던 내가 매일 뛰고 있다. 현재의 나에게 달리기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며, 나의 건강관리를 위해 ..
이 밤은 오래도록 밝을 거야 이 밤은 오래도록 밝을 거야, 길어지는 나날들, 경쾌한 하루의 소음은 흩어지고 사라지고, 밤이 보이지 않아서 놀란 나무들은, 하얀 밤에 깨어 있는 채로 머무르고 몽상한다… 무거운 황금빛 공기 중에서 밤나무들은, 그들만의 향수를 뿜어내고 펴 바르는 듯해. 사람들은 향기의 휴식을 방해할까 두려워서 감히 나아가려 하지도 부드러운 바람을 휘저으려고도 하지 않아. 도시에서 시작된 먼 바퀴 소리… 약한 산들바람이 일으킨 흙먼지는, 감싸고 있던 지치고 흔들리는 나무를 떠나며, 잔잔한 길거리로 서서히 다시금 내려앉는다. 우리는 그토록 꾸밈없고 자주 찾던 그 길을, 날마다 마음에 그리는 습관이 있어 그럼에도 생에서 어떤 것들은 변하고, 우린 다시는 이 밤의 영혼일 수 없을 거야… 원문링크 h..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하자면, 한동안 어린아이가 싫다고 아주 공공연히 밝혔던 적이 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고 제멋대로 굴면서 빽빽 울기만 해서 싫다는 이유로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시끄럽게 칭얼대는 아이들을 보며 대놓고 인상을 쓰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만 해도 아직 성적 대상화를 큰 저항 없이 체화하곤 했던 명예남성(속된 말로 ‘흉자’라고도 하지요)이었던지라, 스스로가 약자를 혐오하고 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낯선 존재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한 몫 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조카도 하나둘 생기고 친구들의 2세도 있어 아이들과 전에 비해 자주 접하게 되었지만, 그 흑역사 시기는 동생은 물론이거니와 사촌동생도 거의 없고 그야말로 주변에 저보다 어린 생명체가 전무하던 때였거든요..
“삐-삐-삐삐삐삐-삐” 현관 도어락 소리는 재미있고 특별하다. 문을 여는 사람의 상태에 따라서 누르는 속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급하다거나, 바깥이 너무 덥거나 추운 경우에는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거의 두 배로 빨라진다. 그래서 나는 도어락에서 나는 “삐-” 소리를 들으면, 저 사람이 누군지, 어떤 마음으로 집에 들어오는지 예상할 수 있다. 그날, 나는 자정 즈음이 되어서야 귀가하였다. 술을 살짝 걸친 상태라 취해 있었고, 그래서 비밀번호를 두어 번 틀렸다. 수자는 집에 들어선 나를 힐끔 바라보곤 버럭 소리쳤다. 서럽게도, 내가 취했거나 늦게 귀가해서가 이유는 아니었다. “윤희가 아직도 안 들어와! 이 기지배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수자는 근래 자주 늦게 귀가하는 윤희에게 화가 나 있던 상..
이제는 인정할 수 있다. 나는 예민한 사람이다. 나만의 공간이 필요한 사람이다. 분리가 안 된 공간은 나에게 스트레스를 준다.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금의 분리가 필요하다. 처음에 이런 걸 알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몰랐다. 처음 같이 살 때는 하루 종일 붙어 있는 일이 너무나도 좋아서 공간의 분리 같은 것은 조금도 신경 쓰지 못했다. ‘함께 살고 싶어서 사는데 공간을 분리할 일이 뭐가 있겠어?’하고, ‘내가 선택한 가족인데!’하고 생각했다. 정말이지 엄청난 오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나라는 사람은 공간을 분리할 수 있어야 한다.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 고요한 침묵을 유유자적하게 즐겨야 하는 사람이 나였다. 이런 것을 알게 된 것은 애인인 알파카와의 싸움 때문이다. 우..
둘째아이 출산을 몇 주 앞두고, 6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 전 직장의 근무 햇수까지 포함하면 10년여의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라 해도 무방했다. 그건 예감이 아니라 기정사실에 더 가까웠다. 전문직 종사자도 아닌 여성 노동자가 아이를 어느 정도 키워놓은 다음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가는’ 경우는 전무하다시피 했으니까. 다니던 직장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어 적잖이 염증을 느끼던 차였다. 후련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막막했고, 걱정스러웠다. 전업주부 생활을 잘 감당할 수 있을지, 두 아이의 성실한 엄마 노릇을 거뜬히 해낼 수 있을지. 무엇보다 사회적인 쓸모를 다한 것만 같은 내 스스로를 견딜 수 있을지가 가장 자신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집에만 있고 아이 둘만 바라보면서도, 모든..
아이보다 못한 어른 우리 대부분은, 같은 또래에 같은 성별을 가진 사람을 친구라 부르지 않나요? 친구가 별로 없는 나 말이 약간 느린 나는 모임 자리에 가면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듣는 곳은 두 곳이요, 말하는 곳은 한 곳이라고 많이 듣고 말은 적게 하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지만 말도 없이 잘 어울리지 못해서 다른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제주도의 9살짜리 동화작가 전이수라는 아이는 나이와 상관없이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모두가 친구라 하네 난 아이보다 못한 어른이라고 느꼈다 속이 좁은 나 생각이 짧은 나 친구를 많이 가지고 싶은 나 나이만 많이 먹어 욕심이 많은 나 부끄럽다 내일이 있다는 건 아픔의 어제 고통의 오늘 내일이 있다는 건 분명 희망의 빛이 있다는 것 어제의 ..
정수 님께, 정수 님,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저는 근 반 년 만에 본가에 다녀왔어요. 오랜만에 산에도 오르고, 이제 곧 떠날 채비를 하는 백조들도 보았어요. 어떤 밤엔 동생과 긴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고요. 왜인지 뿌연 밤이었는데, 가로등 불빛 앞에 선 메마른 가지들이 생각나요. 산책 나온 사람도 거의 없어서 그 텅 빈 공간을 미친 듯이 달렸다면 아주 후련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요즘 저는 일상을 견디고 있어요. 뭐든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생각될 때도 있지만, 때때로 이렇게 벽에 가로막힌 듯한 느낌이 깊숙이 밀려올 때가 있어요. 저를 둘러싼 환경이 영영 바뀌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 매일 경악스러운 뉴스가 쏟아져 나오지만, 저는 그저 정해진 일정대로 일상을 반복하고 있어요. 제가 밥을 먹고 ..
추운 새벽 2시 반쯤, 친구에게 메일을 쓰다가 문득 기억의 시작과 끝에 대한 생각을 했다. 주고받는 대화가 오랜만에 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그러나 지금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와의 첫 만남, 20군데 넘게 지원을 했으나 면접에서 계속 떨어져 온갖 스트레스에 허덕이다 취직한 회사에 처음 출근한 날의 긴장감, 매일 가는 슈퍼마켓에서 진열된 걸 구경만 했을 뿐 머릿속으로 맛을 상상만 하다 처음으로 구입해서 먹어본 감자과자를 입에 넣었을 때의 맛, 아마 이걸 기억하는 사람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싶은, 내가 태어났을 때의 기억. 기억에 대해서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된 밤이 있었다. 어떤 것은 정말 선명해서 그날의 날씨와 내 앞에 서있는 사람의 얼굴과 복장까지도 기억이 나다가도 그 외의 다른 기억, 취업 활동을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