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동안 테일러 스위프트의 만 들었다. 좋아하는 노래가 생기면 질릴 때까지 듣는데 이번엔 이 노래였던 거다. 심장 박동처럼 쿵쿵 울리는 드럼 비트에 Only the young can run,하고 언뜻 알아들을 만큼만 어려운 후렴구가 마음에 들었다. 이전의 테일러 노래보다 낮게 읊조리는 느낌이네,하고 생각할 즈음 이분 남짓한 짧은 노래는 끝난다. 그들은 널 도울 수 없어.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시작이야. 오직 한 가지만 우릴 구할 수 있어. Only the young. 노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콘텐츠인 다큐멘터리 를 보고 나서야 온전히 이해됐다. 테일러 스위프트는 20대에 이미 그래미상을 거머쥘 만큼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팝가수지만, 그보다는 헐리우드의 수많은 남자들과 데이트를 즐긴다는 종류의 가십거..
이런 시도들은 사랑에 대한 형태를 재정립하고자 하는 개인 단위의 운동인 동시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하는 사람인지를 응시하고자 하는 작은 꿈틀거림이었다. 개인이 스스로를 알아가고자 하는 서사는 언제나 도전적이고 치열한 아름다움을 동반하지만, 이 아름다움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행동 저변의 못난 이유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나는 내가 포용할 수 없는 많은 룰들이 두려웠고, 도망치고 싶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일해야 하는 독점 연애의 룰, 자식이 이유 불문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는 정상 가족의 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허용되는 많은 대상화-침해의 룰에서 탈출하고픈 마음이 있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 룰의 바깥으로 벗어난다고 해도 나는 외로움을 많이 탔기 때문에, 사랑하고 사랑받아야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사..
“조 스텝, 사람들이 매장이 멋지다고 난리야. 막 와서 사진 찍어가고 그러네, 하하. 조만간 이 매장을 프랜차이즈로 확장하려려고. 조 스텝이 확장되는 매장 관리나 오픈 준비 이런 걸 좀 맡아주면 좋겠는데, 어때요? 회사에서 차도 주고, 기름값도 주고, 법인 카드 주고 그럴 건데. 그러면 조 스텝은 전국에 오픈되는 매장에 가서 물건 배열해주고, 포스 사용 알려주고 그러는 거지.” “우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근데 좀 더 구체적인 제안을 주셔야 저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차랑, 법인 카드, 월 200 정도 생각하고 있는데?” “네, 그럼 생각해보고 말씀드릴게요.” 정말이지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 나만 해도 이렇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틈틈이 농사를 짓고, 집 안팎을 살피는 삶을 살..
가지지 못한다. 가지지 못함, 소유 개념이 부재하는 관계 맺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에 연애 이야기만큼 적당한 것이 없는 것 같다. 연애야말로 소유욕이라는 것이 가장 철저하게 투영되는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다. 소속되는 것과 소유되는 것은 분명 다른데, 연애 관계에서만큼은 이것이 자주 혼동되거나 혼용되는 것 같다. 다들 그런 얘기를 하니까 말이다. 넌 내 것, 난 네 것, 대부분 그러면서 연애를 하니까 말이다. 나의 첫 연애는 열일곱 살 때였는데, 나는 그때부터 그런 말을 하지 못하는 애였다. 그때는 폴리아모리 같은 개념조차 몰랐는데도 그랬다. 폴리아모리(흔히 비독점적 다자연애라고 번역한다. 나는 ‘다자연애’보다 ‘비독점적’이라는 텍스트를 더 강하게 읽고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라는 개념은 좀 더 자라..
삵은 스스로 지도를 그리는 게 서툴렀다. ‘생각’하면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 4차원 식구 중 한 명, 사랑하는 삶 2편의 주인공, 암삵의 삶 로고를 그려준 사람. 2020년 3월 24일, 그 친구는 더 넓은 세상으로 떠나갔다. 갑작스럽게, 그러나 급하지 않게 벌어진 일이었다. 나와 하루를 따뜻하고 조용하게 보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그렇게 되었다. 갑작스러웠지만 이상하게도 급하게 떠났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루를 조용히 함께 보낸 뒤라 그런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친구의 배려였다는 생각은 든다. 늘 내게 따뜻한 숨 같았던 사람. 한없이 아껴주던 사람. 마지막까지 그 친구는 나를 배려했다. 나와 하루를 잘 보내고, 뒤늦게 발견되어 내가 속상하지 않게 집으로 가는 길..
나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공공장소에서 애정표현을 멈추지 않았다. 애인의 볼과 머리카락에 뽀뽀하고 허리에 손을 두르고 포옹을 했다. 점점 면역이 생기는지 애인도 내 스킨십을 인식하지 못하고 자신이 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지 두려움이 들 때마다 나는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이성애 커플과 우리는 다른 점이 없는데 왜 내가 행동을 삼가야 한단 말인가. 애정표현을 하고 싶은데 하지 못하는 것은 혐오자들에게 지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숨고 싶지 않았다. 이성애 커플들이 그렇듯 우리의 사랑도 자유롭게 표현할 권리가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러한 믿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를 의심하고 부정한 후에 나온 것이었다. 담금질 한 후 얻은 확신이었기에 굳건..
동그란 사람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을 풍성히 가꾼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주어진 삶의 조건을 인정하고 나아가 극복하려는 자세이며, 동시에 자신의 존재를 신뢰하고 긍정하는 태도가 아닐까? 우리는 이런 사람을 흔히 ‘부지런한 사람’이나 ‘살림꾼’ 등으로 부르곤 한다. 여기에서 언어가 그 의미를 축소해버리는 한계를 경험한다. ‘부지런한 사람’이나 ‘살림꾼’으로 그 존재를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니 말이다. 지인 중에도 자신의 삶을 부지런히 일구어 나가는 사람이 여럿 있다. “밤이 엄마”는 그중 한 사람이자, 단연 으뜸이라 여겨지는 사람이다. 그녀를 알게 된 건 두 해 전 사회학 세미나에서였다. 초롱초롱한 눈, 둥근 얼굴과 광대, 또 둥그런 코와 입,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동글동글했다. 심지어..
산타바바라에서 쉐어하우스를 운영하는 도로시아는 사춘기 아들인 제이미를 혼자 키우며 지낸다. 도로시아는 쉐어하우스 메이트들과 사생활을 공유하기도 하고, 이웃 사람들을 초대해 조촐한 파티를 열어 소통을 이어가는 등의 외향적이고 관계지향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외부인에게 이렇게 친절하고 다정하며 누군가와 관계 맺는 데 아무 문제도 없는 듯한 도로시아가, 유독 자신의 아들인 제이미에 대해서만큼은 그렇지 못한 듯 보인다. 원만한 소통이 어려워 보이는 것이다. 영화의 배경은 70년대의 미국이다. 그 시기 미국에서는 ‘제2물결 페미니즘’이 붐이었고, 억압된 여성의 삶은 여성들의 각성에 의해 조금씩 그 단단했던 틀이 균열을 일으키는 시기였다. 그 움직임 속에서 여성 개개인은 제각각의 삶 속에서 제2의 성장통을 겪기..
봄이 왔다 한낮에 내리쬐는 따사로운 햇살 덕에 완연한 봄을 느낄 수 있는 요즘이다. 추위에 약하지만 더위에 강한 나는, 날이 풀리자 입맛이 돌고, 활동량도 상당히 증가했다. 집안 곳곳, 매장 곳곳을 청소하는 재미로 일상을 채우고 있다. 일하고 있는 편의점은 작고 알차다. 매장의 규모는 작지만 있을 건 다 있다. 기본적인 라면, 과자부터 냉장식품과 냉동식품, 면장갑이나 비옷 같은 잡화류와 A4용지, 지우개 같은 문구류까지. 잘 나가는 상품은 담배와 라면, 즉석식품, 건전지 정도다. 작년 여름에는 계절에 맞춰 썬크림도 들여놨지만 하나도 팔리지 않았다. 유동인구가 많은 곳이 아니고,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시내가 있다 보니 간편한 상품들만 나가는 편이다. 상품 발주는 아르바이트생이 직접 한다. 다만 발주 통..
내 몸으로서의 삶, 연결되는 삶, 우울한 삶, 어떤 피해자의 삶, 사랑하는 삶. 그리고 미처 다 쓰지 못한 삶들까지. 그 모든 삶을 다중적으로 살아오면서 나는 끊임없이 생각을 해야만 했다. 내가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배워가는 건 생각을 통해서이기 때문에. 생각은 억지로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닌 만큼 나는 다가오는 생각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떨 때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만큼의 생각들이 나를 덮쳐오기도 했다. 또 최근에는 다가오지 않는 생각 때문에 내 삶이 텅 비어버린 게 아닐까 걱정도 했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괴로운 건 매한가지다. 생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대로 와 주지도 생각대로 진행되지도 생각대로 끝나지도 않는다. 예전에 그런 글을 쓴 적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