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적 세계생태론의 가능성을 생각한다 페미니스트들에게, 특히,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모두에 비판적인 페미니스트들에게 제이슨 무어의 『생명의 그물 속 자본주의』는 매우 반가운 책이다. 지난 몇 세기 동안 페미니스트들은 신분제가 붕괴되고 모든 시민이 서로로부터 자유롭고 서로 평등한 근대시민국가에서 살게 되었다고 여겨짐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종속적 구조는 변함이 없는가를 질문하고 분석해왔다. 이것의 핵심에는 비대칭적 성별이항구조라는 인식체계에 대한 비판이 있다. 근대가 시작되면서 여성다움과 남성다움, 여성의 역할과 남성의 역할 등과 같은 성별이분법적 담론이 그전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급속도로 증가했다. 이를 두고 래윈 코넬은 사회를 조직하는 원리로서의 신분제도가 이분화된 성별로 대체되..
*이 에세이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불안-일기 쓰기 일기를 쓰기 시작한 건 자기계발이나 대단한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SNS를 통해 자유롭게 발언하는 것이 심리적으로 어려워졌기 때문이었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어떻게 해석될지, 말하지 않은 부분이 계속해서 탈락하고, 나아가 그것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까 두려운 마음이 점점 더 커지면서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를 틀어놓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습관이 되었다. 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또한 아무도 없는 집에서 TV를 켜놓곤 했다고 한다. 공백을 채우려는 이 습관이 어떤 정신작용에 의한 것이라면, 왜 인가? 주위 사람들은 이런 나의 습관을 기이하게 여기거나 걱정스러워하거나 재미있어한다. 그들의 반응처럼 다양..
영화 를 처음 본 건 20대 중반, 사회 초년생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세상은 아름답다고 믿었던 시절이라 를 보고 난 후에는 불쾌감만이 남았었다. 나쁜 일을 겪는 사람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는, 머릿속 꽃밭이던 시절에 봤던 영화 는 한물간 영화감독의 그저 그런 범작이라는 인상을 남겼다. 제목에 걸맞은 내용과 스토리로 꾸려진 영화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 뒤 수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지형이 바뀔 만큼 크고 작은 일련의 사건들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잊고 있던 영화 가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 이후로 는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영화가 되었다. 3년 전 일이었다. 3년을 온전히 힘들어한 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이었기에, 아직도 누군가에게 선뜻 털어놓기 어려운 경험이다. 감당하기 힘든 일..
작년 여름, 친구가 함께 영화를 보러 가자고 해서 보게 된 영화가 였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고, 허허롭던 일상에 에너지가 한가득 차오르는 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스스로를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라 불렀던 바르다 감독은, 마치 유언처럼 마지막으로 이 영화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바르다 감독은 원래 사진작가로 활동하다가 영화감독이 되었고, 노년에는 설치 미술 작가로도 활동하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을 당시 프랑스의 유일한 여성 영화감독이었던 그는 자신이 여성감독으로 과소평가됐다는 평가는 원하지 않았다. “저는 저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에는 충분치 않겠지만요. 비록 페미니즘 영화를 만들지는 않았지만 제가 해온..
이응과 시옷으로 서로에게 연루되기 : 김지현 에 부쳐 전시 포스터 2020. 07.10 ~ 08.20 @돈의문박물관마을 G3 김지현 작가의 전시 는 있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시간을 지금에 잇는 작업이다. '피해자들’이라고는 하지만 작가는 그들을 하나로 뭉뚱그리지 않고, 하나하나의 개별자로서 호명하고 있는 듯하다. 구체적인 한 사람을 기억하고, 불러내고,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힘차게 그리워한 흔적들이 공간을 메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얼굴 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 사람이 바로 故 김복동 할머니이다. ‘위안부’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면서 동시에 우리와 다르지 않은 여성 소수자의 몸으로 삶을 일궈온 그. 작가는 그가 남긴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남은 우리가 더 잘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문제..
주변에 적어도 한 명은 그런 사람이 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경계를 마음대로 오가며 주변 사람들은 속이 타든 말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인생을 그야말로 즐기는 사람들. 이들을 보는 시선은 보통 부정적일 것이다. 나의 경우,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그러한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을 어떤 면에서는 부러워한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의 모난 성격이 상황과 사건과 사람들에 의해 깎여 나가지 않고 뾰족한 채로 고스란히 오늘날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그(녀)가 속해있는 주변환경이 부럽다. 굳이 따지자면 이들에 대해 갖고 있는 내 인상은 타인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왕족'이라는 느낌에 비슷할 것이다. 만약 순탄치 않은 여정이 예상되지만 그 고생에 비해 얻어지는 결과가 향후 인생에 있어서 도움이 될지 여부가 불..
1.를 다시 보고 있다. 애니메이션이 한국에서 TV 방영되기도 했던 는 팬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작품으로, 소년만화의 정도를 걸었던 만화다. 여기서 큰 얼개를 이루는 건 주인공인 나루토와 사스케의 싸움이다. 둘은 다른 사람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의 모습을 상대방에게 투영하며 서로를 ‘형제’라고 느끼는 동시에 라이벌로 존재한다. 더 강해지기 위해 고향을 떠난 사스케와 그를 데리고 오기 위한 나루토의 여정은 총 700회에 달하는 시리즈 완결에 이르러서야 종료된다.의 시작과 끝을 보며 자란 내게 지치고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의 얼굴은 언제나 나루토였다. 그래서 지난해 연재를 시작한 웹툰 를 보며 사람들이 외롭고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를 떠올릴 때 나는 남몰래 나루토를 환기했었다...
김하나 작가님을 좋아한다. 언제부터 좋아했는지 모르겠지만, 처음엔 SNS를 통해 멀리서 바라보며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라는 책을 내셨구나. 표지 일러스트가 무척 멋지다. 베스트셀러라니 부럽다.’ 정도로만 생각했다. 작가님은 도토리 머리 같은 짧은 숏컷 둥근 얼굴에 평온하지만 단단한 인상을 지니고 계시고 부드러운 중저음을 지니셨다. 셔츠 위에 스웨터를 즐겨 입으시고 통 넓은 면바지는 밑단이 접혀있어 그 아래엔 알록달록한 양말이 보이곤 한다. 작가님 책은 읽지 않았지만 어쩌다 SNS를 구독하게 되었는데 매번 올라오는 일상에 나도 모르게 내적 친밀감을 쌓아가며 사람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가끔 황선우 작가님과 함께 리코더와 우쿨렐레로 연주하는 영상이 올라올 땐 ‘이것이 정말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는 길 ..
축 늘어뜨린 꼬리에 리본을 단 여기저기 상처 입은 한 마리의 암삵은 앞으로도 연결되고, 사랑하고, 생각하며 삶을 이어 나가기로 했다. 암삵의 삶 첫 화를 봤다. 연재를 시작한다는 사실에 마냥 신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풀어놓던 그때. 마냥 신나고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내가 글을 쓴다는 게, 그 글을 누군가에게 꾸준히 보여준다는 게, 누군가가 내 글을 읽어준다는 게. 글은 아주 어릴 때부터 썼지만, 글을 쓰고 싶다고 본격적으로 마음을 먹은 건 스물한 살 때였다. 그러고도 십여 년,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글을 처음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게 바로 여기, 웹진 쪽에 연재하게 된 암삵의 삶이었다. 연재는, 작지만 거대한 욕망으로 시작했다. 내 얘기를 하고 싶다는 욕망과 내 얘기를 통해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는 욕..
이상하다. 왜 누군가를 기억하고 반추한다는 것은 결코 시간의 질량에 비례하지 않는 걸까. 대학교 때까지만 해도 함께한 시간이 많으면 의당 영원한 친구가 될 줄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 만난 관계는 진짜가 아니라는, 흔히들 말하는 일상 속 진리를 활자 그대로 무구하게 받아들였다. 아니, 내 경험 또한 실제로도 그랬기에. 몇 년 전, 10년을 함께한 친구와 연을 끊어버렸다. 우리의 시간 앞에 아무 승자도 없을 거라고, 우리의 우정은 사랑보다 견고하다고 믿었던 친구였다. 호호할머니가 되어서도 우리는 이런 농담 따먹기나 하겠지, 라며 우스갯소리를 만날 때마다 했던 친구. 그러나 10년을 돈독하게 지낸 친구와는 이제 우연히 길에서 만나도 모른 척 하면서 지나가는 사이가 되었다. 더는 ‘우리’라는 범주에 묶일 수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