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층 창문에 매달린 여자 그녀는 13층 창문에 매달린 여자다. 임대 아파트의 콘크리트 창틀을 꼭 붙잡고 있는 양 손은 하얗게 질려 있다. 시카고 동부의 13층 창문에 매달린 그녀의 머리 위로 새들이 빙빙 돌고 있다. 새들은 후광이 될 수도,곧 그녀를 으스러뜨릴 유리 폭풍이 될 수도 있다. 그녀는 해방될 거라고 믿는다. 13층 창문에 매달린 여자는 홑몸이 아니다. 시카고 동쪽 지역에 사는 그녀는 아이들을 둔 여성이다. 젖먹이 아기 카를로스, 마거릿, 그리고 맏이 지미가 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의 딸이며 자기 아버지의 아들이다.그녀는 지금까지 만난 두 남편들 사이에서 부서진여러 개의 파편이다. 그녀는 이 아파트 건물의 모든 여성이다. 그들 자신을 지켜보듯 그녀를 지켜보고 서 있는 여성들이다. 어릴 때 그..
어째 잠잠하다 싶더니 또 시작이다. 이전에는 서른네 살이었던 거 같은데 이번에는 서른여섯 살이다. ‘누가 바로 사귀라고 하니, 밥만 먹고 와. 이 남자 저 남자 만나봐야 할 거 아니야.’ 드라마 대사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어머니의 말에 간곡한 심정이 한 가득이다. ‘다 너 좋으라고 하는 거지. 지금이야 젊다지만 늙어서까지 혼자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지 아니? 그러니까 얼른 만나봐.’ 내 얼굴만 보면 성화다.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내적 갈등 끝에 겨우 ‘만나는 사람 있어요’ 라고 대답했다. 누군지 당장 데려 오라신다. 누구인지 만나보면 기절하실 텐데. 어머니의 정신건강이 걱정되므로 내가 알아서 잘 만나고 있다고 둘러댔다. 피하기 위한 말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굴하지 않고 재시작이다. ‘밥 한 번 먹..
Les Grappes de raisins - 포도송이 1930년 L'arbre de vie – 생명나무 1928년 성경에 나오는 를 제목으로 하는 그림 자신의 그림 앞에서 세라핀 루이 세라핀 루이, 그를 나는 영화로 알게 되었다. 시골마을에서 허드렛일을 하던 여자가 신의 계시로 그림을 그리다가 정신병원에서 죽었다는 간략한 이야기의 영화였다. 마음이 갔지만 보지는 않았다. 차마 대면하기가 두려웠다. 그 무렵 나는 마흔이었고 경력은 미천하고 미래는 막막했다. 홀로 하는 작업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 그림 그리는 것은 당연히 돈이 되지 않았다. 밤마다 구직 사이트의 청소나 서빙 알바를 체크하며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상상하곤 했다. 몇 차례 그림책 기획이 엎어지면서 나는 자주 불안했고 밥이 되지 못하는 그림을..
삵과 고래, 기린과 사육사에게서로의 다름은 관계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퀸치광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를 보고 밴드 ‘퀸’에 빠진 이들을 일컫는 신조어였다. 그들은 퀸의 무엇에 열광했을까. 나는 그들 관계의 형태가 퀸의 음악과 그들의 팬을 만드는 데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제각각 개성이 강함에도 누구 하나 지워지지 않는 관계.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 그런 관계의 기저에는 신뢰가 있었을 것이다. 신뢰란 어감이 주는 것만큼 따뜻하기만 한 단어는 아니다. 갈등과 고난이 있을 때라야 비로소 신뢰는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퀸의 인터뷰 중 이런 내용을 본 적 있다. 밴드가 잘 되면 결국 해체한다는 말들, 언제까지 퀸일지 두고 보자는 ..
안녕하세요, 도우리 작가입니다.기쁜 소식 알려드립니다. 그동안 이곳 에 쓰던 ‘탈연애 선언’ 연재를 종료한다는 소식입니다. 개인 작가 차원에서 다루던 ‘탈연애’ 주제를 팀 프로젝트 차원으로 확장하면서 공동 출간을 결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의 여정, 그러니까 제가 즐거워하고 부딪히고 창피해하고 그러다 더 나아가게 된 지점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선언 중독자: 탈연애 선언 퍼포먼스의 시작 탈연애 선언 퍼포먼스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것은 1월 말의 새벽이었습니다. 이불 속에 파묻혀 를 읽던 중이었어요. 그러다 “이성애주의? 그것은 낭만적 사랑이란 이름으로 진행되는 파시즘일 수 있다”는 문장을 마주했을 때, 이불을 박찼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감각이었어요. 정상 연애 의제를 더욱 적..
세계는 여기서 끝날 거예요 세계는 키친 테이블에서 시작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린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땅이 준 선물로 식사가 준비되고 테이블에 차려집니다. 식탁 위 풍경은, 천지창조 이래 언제나 그러했고 내일도 그럴 테니까요. 닭이나 개는 우리 식탁에서 쫓겨난답니다. 식탁 모서리에선 아기들의 이가 나기 시작하고요. 식탁 아래에선 아기들의 무릎이 긁혀가지요. 바로 이곳에서 아이들은 가르침을 들어요. 인간이 된다는 게 무슨 뜻인지를 말예요. 식탁 앞에 앉아 우린 남자들을 만들고 여자들을 만들어요. 이 식탁에서 우리는 수다를 떨고 적병들과 죽은 연인들의 유령을 불러냅니다. 간밤 꿈들이 우리와 함께 커피를 마셔요. 꿈은 우리 아이들에게 어깨동무를 해줍니다. 축 처진 우리의 가엾은 자아를 보고 함께 웃음을..
많은 사람들이 외모, 스타일, 사회적 지위 같은 조건들에서 로맨틱한 끌림(‘연애감정’이라는 단어는 연인이라는 계약 관계를 내포하는 느낌이라 피했다)을 느낀다고 한다. 나도 분명 그런 것들에 영향을 받긴 하겠지만 결정적인 느낌은 아니었다. 사랑에 빠지려면 그 사람과 내가 통하는 지점이 있어야 했다. 고유한 이야기, 그리고 내가 그 이야기에 공명하는가가 사랑으로 가는 관문이었다. 성별도 조건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가 여성이어서, 남성이어서 할 수밖에 없었던 경험들을 듣고 내가 끌렸다면 나는 그 사람이 여성이어서, 남성이어서 사랑한 것 아닐까? 레즈비언의 성적 지향 이야기에 많이 끌리긴 하지만 남성의 경우에도 그가 가진 독특한 사고방식, 삶의 경험 이런 것들에 매혹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성별은..
작업실에서 나혜석의 모습, 1932년 추정, 개인 소장. (사진 제공=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내가 처음 접한 그림 그리는 여자는 나혜석이었다. 풍문 속의 모던 걸 나혜석은 변호사이자 외교관인 남성과 결혼했고 남편친구와 연애를 했으며 그리고 이혼했다. 그의 그림보다 세상이 수군거린 그의 사생활을 먼저 알았다. 불륜의 대명사, 정조 잃은 여자 나혜석을 좋아하지 않았다. 기왕지사 남편 몰래 연애할 거, 입 무겁고 괜찮은 남자랑 연애할 것이지, 찌질하게 소문이나 내고 다니는 남자랑 연애하다니, 안목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혜석의 그림 역시 별 감흥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 부유한 집안에서 아버지와 오빠의 사랑 속에 성장하고 오빠의 권유로 미술을 선택했을 뿐, 그 선택이 자신의 의지라는 언설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
저주로부터 일탈하기: 난잡한 복종 안티고네의 고백 “그래요, 고백합니다. 저는 제 행동을 부인하지 않겠어요.” 이것은 안티고네가 크레온 왕 앞에 섰을 때 했던 말이다. 그 누구도 폴리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해선 안 된다고 했던 크레온 왕의 칙령을 어기고, 안티고네는 자신의 오빠인 그를 묻어주었다. 안티고네는 그렇게 치명적인 위반 행위를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행위를 했음을 부인하는 것 또한 거부(위반)했다. 바로 그 두 번째 ‘위반’이 고백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는데, 이 문제적인 고백이 안티고네를 모호한 위치에 놓이게 한다. 그 고백의 언어에는 남성적 과도함이 스며 있으며, 크레온의 권위를 흡수한 흔적이 있다. 크레온으로부터 행위 주체성의 수사를 빌려와 말하고 있는 것. 즉 안티고네는 크레온..
『서루조당 파효』(교고쿠 나츠히코 著)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중고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과 그 주인에게 인생 책을 소개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간략히 소개할 수 있겠는데요, 범박한 설명이긴 합니다. 누군가에게 인생 책을 소개받거나 소개해 줄 수 있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책에도 주인이 있다는 말을 듣곤 하는데, 저자와 독자의 합이 잘 맞는, 또는 만나야 할 인연 같은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것이겠죠. 조당의 주인은 바로 사람들에게 만나야 할 책을 만나게 해주는 사람입니다. 세 개의 연결고리가 생성됩니다. 저자와 독자, 그리고 그 둘을 만나게 하는 조당의 주인. 책을 만난다는 것은 단지 돈을 지불하고 책 한 권을 사는 일이 아닌 듯 보입니다. 저자의 글쓰기 노고와 조당의 주인처럼 책을 이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