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오랜만에 친구와 긴 통화를 했다. 멀리 떨어져 지내서 자주 만나기도 어렵고 연락도 매일 하지는 않지만 서로가 서로를 가깝고 소중하게 여기는 존재라는 걸 아는 그런 사이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 이젠 10년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친구로 나에 대해 모르는 게 없고 나 역시 그 친구에게는 숨기는 게 없다. 연락을 자주 하지는 않지만 한 번 통화하면 기본 두 시간은 거뜬히 넘긴다. 서로의 근황에 대해 일종의 보고(?) 형식으로 카톡을 하기 때문에 서로의 근황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서로가 다 알고 있는 근황이지만 오랜만에 통화를 할 때엔 최근 있었던 일들을 상세하게 이야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들고 웃는다. 이상하게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면 편안하고 힐링이 된다. 고등학교 때에는 여럿이 함..
외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생각했다. 자신은 하늘에도 땅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라고. 그래서 그는 늘 외로웠다.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곳이 외줄 위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외로움을 잊었던 순간이 있었다. 더는 양팔을 휘젓지 않아도 걸을 수 있었던 순간. 그 순간이 끝나고 그는 땅으로 스스로 떨어졌다고 한다. 여기, 외줄을 타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땅으로 떨어지기보다는 스스로 안전하게 내려올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언가가 되어야만 했다. 그래서 오늘도 그는 카페에 간다. 비틀거리기보다는 안전하게 두 발을 땅에 내디딜 수 있도록 양팔을 힘껏 휘적였다. 키보드 위를 휘젓는 그의 손길이 멈췄다. “상철아!” 그는 뒤를 돌아보았다. 효선이었다. 아마도 효선도 상철과 같은 목적으로..
책 읽는 것만큼이나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는 편인데요, 특히나 한 번 꽂힌 영화는 옆에서 누가 싫은 소리를 해도 보고 또 보며 되새김질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얼마 전 2편 제작에 돌입했다는 이 그렇고, 시리즈도 그렇습니다. 특히 1편은 대사나 효과음, BGM을 듣는 것만으로도 어떤 장면인지, 전체 러닝타임 중 어느 부분인지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영화 구석구석을 꿰고 있는데요. 가 거의 끝날 즈음 쉴드 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고 행방불명되었던 베너 박사가 맨해튼으로 돌아와 헐크로 변신하면서 읊었던 대사가 이상하게 자꾸 되뇌어지는 요즈음입니다. 저도 언젠가부터 헐크와 다를 바 없이, 항상 화가 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러한 상태가 더러는 한국인의 ‘종특’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무한 경쟁적 환경인..
하나님, 전 내년 서른이 되는 생일에 죽을 거예요. 하지만 남은 1년 동안 제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저에게 생긴다면 죽지 않고 소원도 안 빌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스물아홉 살 생일에 내가 마지막으로 간절히 기도했던 반 협박성 기도 내용이다. 교회는 다니지 않은 지 오래였다. 그리고 서른 살 생일까지 남은 1년 동안 나는 죽지 않기 위해 최대한 노력해보기로 했다. 후회 없이 잘 죽을 수 있게. 나는 왜 죽고 싶을까. 내가 꿈꾸는 죽음, 만족스러운 죽음을 위해 난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내가 가장 죽고 싶었던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었다. 끊임없는 외로움을 견디는 게 너무 지루했다. 아마도 나는 유독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던 건지 늘 사람이 그리웠지만, 사교성이 없고 소극적이어서 ..
어린 시절, 엄마는 나보다 내 운동회에 열심이었다. 엄마는 운동회 전날부터 ‘예쁜 도시락 싸는 법’을 열심히 검색했고 간식으로 반 전체에 들어갈 간식을 꼼꼼하게 골랐다. 나는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는 게 싫었다. 엄마는 항상 건강에 좋은 호밀 샌드위치나 유기농 과일 컵도시락을 골랐는데, 그런 게 간식으로 들어오면 반 친구들은 항상 ‘야, 또 선우 니네 엄마가 간식위원이지?’하고 온갖 핀잔을 줬다. 그래서 나는 운동회만큼은 엄마가 간식위원을 하지 않길 바랐는데, 신기하게도 꼭 엄마는 운동회 때마다 간식위원을 했다. 엄마, 이번엔 그냥 햄버거 돌리면 안 돼? 내가 눈치를 보며 엄마의 곁에서 쭈뼛대며 물으면, 엄마는 그런 건 건강에 안 좋다고 했다. 나 그거 먹고 싶은데. 차마 엄마가 그렇게 유난 떠는 거 쪽팔..
그림책의 첫 페이지를 열면 창 너머로 바깥을 만나는 아이의 환한 얼굴이 있다. 아이가 쫓는 것은 창밖의 존재들이다. 소나무, 까마귀, 달, 그리고 무엇보다 낱말들... 아이는 낱말들에 귀를 기울이고 그 낱말들을 읊어보려다가 이내 풀이 죽는다. 낱말 앞에서 아이의 혀는 어김없이 미끄러지고 가차 없이 튕겨나가기 때문이다. 낱말들은 한 번이라도 온전히 아이의 것이었던 적 없다. 아이는 그렇게 느낀다. 그 느낌은 아이의 하루하루를 차근차근 삼켜가는 중이다. 하루를 내어주고 대신 아이는 슬픔을 얻는다. 그 슬픔을 돌덩이처럼 안고 아이는 학교에 간다. 학교와, 교실과, 교실에 들어찬 학생들. 아이를 더욱 아프게 하는 존재들이다. 매일 반복되는 악몽 같은 시간을 지나 아이는 강 앞에 앉는다. 흐르는 강물을 본다. 강..
내가 잠드는 밤에 내가 잠드는 밤에, 그리고 무용한 하늘에 세상의 텅 빈 아름다움이 감도는 밤에, 도시의 어둡고 높은 집들이 숨결이 사라진 묘비들처럼 평온할 때, 용해된 죽음 앞에 이제 불공평한 차이란 없어 나의 영혼 없는 이마와 너의 파괴된 육체, 그리고 별다른 것 없는 최후와 음울한 똘레랑스 사이에도. 침대들의 침묵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 원문: https://www.poesie-francaise.fr/anna-de-noailles/poeme-la-nuit-lorsque-je-dors.php 죽음을 이야기할 때 평온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의 에스텔라는 웃는지 우는지 구별이 안 되는 표정에 눈을 거의 깜빡이지 않으며 모종의 목표를 이뤄줄 의상 디자인에 매진한다. 의 나타샤는 어두운 전투복을 차려..
웹진 을 보았다. 처음 보는 사이트였고, 처음 보는 글들이 꽤 많이 올라와 있었다. 카테고리를 선택하여 하나하나 올라온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었다. 만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찾아가 하나둘씩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었고, 그것만으로도 어떤 교감이나 공감대를 만들기 충분했다. 그러다 보니 한 가지 욕심이 생겼다. 나에게도 만난 적 없는 사람들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때마침 웹진 은 일정 기간 동안 원고 투고를 받고 있었고, 나는 최대한 빠르게 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무엇을 쓰고 싶은지, 어떻게 쓸 것인지, 이것으로 하여금 내가 달성하려는 목표는 무엇인지. 그것의 대답을 내놓는 일은 의외로 쉬웠다. 나는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비정상’ 가족에 대해 쓰고 싶었고, 우리가 겪은 일이지만 타인 또한 겪을 수 있는,..
정수 님께, 정수 님, 잘 지내고 있어요? 요즘 공포영화 생각이 진짜 많이 나요. 사실 저는 영화를 볼 때 장르를 가리진 않는 편인데도, 공포영화는 좀처럼 보지 않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데 정수님이 공포영화 얘기를 종종 하셔서 그런지, 저도 덩달아 공포영화를 많이 보게 되고 관심도 많아진 것 같아요. 특히 지금 보면 참 엉성한 옛날 공포영화 같은 거요. 나름 그 재미를 알게 되었달까요. 그러고 보니, 작년엔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를 보러 갔잖아요. 아주 웅장하고 멋진 수중괴물이 나오는 데다, 마지막에 여성이 세상을 구하는 내용이라서 둘 다 무척 마음에 들어 했었죠. (여성 버전의 국뽕 없는 아마겟돈 같달까) 올해는 또 어떤 공포영화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무척 기대돼요. 이제 공포영화..
지난 화에서 함께 사는 반려동물을 물화하고 귀여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을 표한 바 있다. 글을 쓰며 몇 명의 사람들이 유독 생각났다. 그중 한 명은 특히나, ‘고양이는 나에게 위안이 된다’며 내게 수줍어하면서 털어놓은 적 있었다. 위안이라니. 밥을 챙기는 것도 화장실을 치우는 것도 게을리하면서 감히 동물에게 위안을 받으려 하다니. 끔찍하고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딱히 그런 사람들에 대한 내 의견은 변동 없다. 다만, 그들에게 반성이 필요하다는 사실과 별개로, 내가 그들과 크게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인외식구를 쓰며 몇 회차를 거쳐 말해온 것처럼, 나 또한 완전무결한 사람이 아니며, 단지 최대한 덜 유해해지고 싶어서 발버둥치고 있을 뿐이다. 사실 터놓고 말하자면 나는 ‘존중’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