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창작물, 특히 영화를 보고 난 소감 측면에서는 꾸준히 줏대가 없는 편이다. 좋게 말하면 내 견해보다는 상대의 의견을 존중하는 편. 내 감상평은 영 아니더라도 대다수가 재미있었다고 하면 핏빛 혀놀림으로 가득찬 독설은 고이 숨겨서 혼자 트위터나 블로그에나 남기고 지인들과 대화할 때면 ‘저도 그 장면은 좋았어요!’ 하며 호응하곤 하는데, 최근에는 와 가 그 경우에 속했다. 전자는 사막 차 추격전 시퀀스와 일렉기타음의 환장의 콜라보 때문에 영화 자체에 집중을 하지 못할 만큼 정신 사나워서, 후자는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던 전편과는 다르게 어쩐지 현자 캐릭터화된 올라프가 생경하고 뭔가 사건이 두서없이 번잡스럽게 많이 배치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호평 일색인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몽니부리듯 난 별..
삵은 자신을 건 사랑을 했다 “그냥, 싫어졌어.” 그 한마디로 사랑이 끝난 적 있다. 방황에 방황을 거듭하던 열여덟 살의 끝 무렵에 만난 사랑이었다. 그와 나의 사랑은 72일로 그렇게 막을 내렸다. 나는 그를 만나면서 나의 지난날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 일들이 어떤 일인지 나도, 그도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내 잘못은 아니라고 처음 말해준 사람. 열 몇 시간을 통화하고도 말이 끊이지 않았던 그와 나. 아침에 눈을 뜨면 너무 행복해서 셀카를 찍어두던 시절. 반면에, 사랑을 잃어버린 고통에 대해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 이별 후 비루하게도 매달리던 나와 그런 나를 차갑게 비웃던 그. 눈을 뜨는 게 고통스러워서 배 아래 쪽부터 울려 나오는 울음을 쏟던 시절. 첫 연애는 아니었지만, 나의 첫사랑이었던 그..
자책에 빠져 있는 나를 드러냈을 때, 자기 자신을 사랑하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흔하디 흔한 말. 나도 나를 사랑하려고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사랑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것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랑에 대해 분명한 것은 단 하나다. 사랑은 아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것. 나는 나를 사랑한다고 느끼지 않는다. 느끼지 못하는 것을 억지로 느낄 수는 없다. 그건 노력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사랑하기보다 나를 받아들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나를 대하는 것이 조금은 더 편해졌다. 사랑을 느낀다는 것은 무엇인가. 살면서 사람에게 사랑을 느껴본 적이 세 번 있었다. 방황하던 중에 두 명의 사람을 사랑했고 방황의 끝에 세 번째로 사..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 살면서 딱 두 번 들은 이야기가 있다. 어느 날 엄마가 까다롭기 그지없다는 회사 동료를 두고, “그 사람은 자기 아들 팬티까지도 다려 입혔데.”라며 결벽증과 신경증, 완벽주의가 있다는 듯이 그 동료를 묘사했을 때 처음 들었다. ‘아들의 팬티까지도 다려 입히는 엄마’라니. 너무나도 놀라운 것도 잠시, 남아선호사상과 가부장이 만연한 이 사회에서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지않아 이런 엄마 얘기를 또 듣게 되었다. 이번에는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고 본인이 그러한 엄마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 장가가기 전까지 팬티까지 다 다려 입혔어.” 이런 말을 한 사람은 150cm 조금 넘어 보이는 왜소한 키에 깡마른, 그러나 나보다 기운이 좋으시고, 젊은 시절 공인중..
윤희에게. 겨울이 되어서일까, 얼마전 다시 본 영화 ‘캐롤’ 때문이었을까. 찬바람 때문에 눈물이 고일 때쯤 뭔가에 떠밀리듯 ‘윤희에게’ 영화를 보았다. 사실 저번 리뷰도 퀴어영화였기 때문에 이번에는 꼭 다른 주제를 고르리라 마음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렇게 영화를 고르던 중 마침 친구가 이 영화를 추천하는 글을 보았고, 마침 전국에 몇 없다는 상영관이 집에서 가까웠고, 그러면서 그래, 여성서사 이야기니까 괜찮으리라-라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자기 위안을 안고 리뷰를 적어 내려가본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 분명 나조차도 기억을 더듬어 유년시절을 회상해보았을 때 사랑이었던 친구가 있었다. 그 때 그 친구가 왜 그렇게 애달팠는지 왜 나의 시선은 항상 그 애를 쫓아갔었는지 그 애가 남자친구가 생겼을 때는..
분명히 공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작업인데도 나는 이 장소에서 배우들이나 스태프들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함께 참여하는 다른 참여자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볼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참여형 무대가 되는 건물 한 동 전체가 새까만 암전이었기 때문이다. 씻을 때도, 먹을 때도, 침대에 누울 때도, 복도를 걸을 때도, 준비된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다른 방에 들어갈 때도, 암전을 벗어날 수 없었다. 그 공간은 기획된 어둠으로 채워져 있었다. 기획된 어둠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어둠보다 훨씬 더 짙었다. 이 어둠 속에 24시간 있으며 순서대로 정해진 프로그램을 수행해야 했다. 제일 먼저 이름과 소리를 정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둠 속에서 서로를 식별하기 위해 사람들은 각자 고유의 소리를 정하고, 고유의 소리를..
또 실패했다. 엄마와 감정적으로 거리를 두겠다고 다짐해놓고 끌려다니고 말았다. 공기 반 소리 반의 ‘네니요’(네와 아니요를 합친 말)로 상황을 모면하려니 한계가 있었다.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모르겠다는 점이 가장 답답했다. 앞선 글에서 너무도 많이 다루었던 주제라(5. 현실도피를 위한 공상, 7-9. 아빠친구딸의 결혼식 등) 쓰기 민망함에도 강하게 옥죄는 문제여서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가 자신의 끓어오르는 불안, 걱정, 분노 등등을 나에게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엄마를 벌집 쑤시듯 들쑤셨을까. 내 고등학교 동창이자 친한 친구의 결혼 소식(내가 직접 말했을 리 없다)을 들은 것이 시발점인가 싶었는데 그보다 한 주 앞서 시작됐으니 다른 이유였다. 엄마의 친구들과 이야기하다가 자식..
돌아올 수 없는 1. 2015년 8월 14일, 희라의 일기 “하와이에 가고 싶어” “그럼 가자. 꿈속에서 너는 수영복을 입고 팔을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머리 뒤에 베고 누워서 날 바라보는 거야. 그럼 난 그 맞은편에서 비키니랑 비치웨어 입고 널 바라보고 있을게. 비치웨어는 꽃무늬 롱 원피스로.” 그 순간 선풍기 소리와 장맛비 소리는 하와이의 파도가 됐어. 담뱃진에 절은 벽지의 얼룩은 해변이 되었고 오래된 냉장고 소리는 파도 소리가 되었지. 우리는 땀인지 무기력인지 하여튼 정체 모를 것들이 진득하게 달라붙은 옷들을 벗어버리고 꽃무늬 롱 원피스와 수영복 차림이 되었어. 너한테 말하진 못했지만 그렇게 서로를 바라보다가 일어나서 해변을 거닐며 그 옷마저 한 장씩 벗어버리고 싶었어. 섹스가 하고픈 게 아니라 그냥..
매장 오픈을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일은 참 힘겨웠다. 이른 기상을 위해 전날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었지만 늦잠에 대한 걱정과 긴장으로 새벽 한 시 반, 두 시 반, 세 시 반, 네 시 반… 새벽 내내 한 시간마다 잠에서 깼다. 평소 나는 머리만 대면 잠에 들어 꿈을 거의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잠의 질이 좋았다. 잠의 질이 떨어져 겪는 고통은 상당했다. 출근 시간에 대한 긴장으로 어떻게 출근까지는 해내도 도무지 노동을 할 힘이 나질 않았다. 자꾸 몸이 밑으로 축축 쳐졌고, 속이 늘 답답했는데 나른한 몸과 달리 가만히 있는데도 숨이 차듯이 맥박이 빨랐다. 게다가 늘 결리고 뻐근한 허리 치료를 위해 난생처음 P.T.를 하고 있던 터라 일곱 시간의 노동이 끝나면 또 정신없이 헬스장으로 가야 했다...
근래에는 한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올해 2월 말쯤인가부터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프로젝트가 입 밖으로 나올 수 있을 만큼 구체화 된 게 6월 즈음이었다. 그때부터 프로젝트를 같이 할 만한 주변 지인들을 끌어모으고, 현재까지도 기획과 마음가짐을 구체화하고 있다. 내 행동이라면 자신의 것을 기꺼이 내놓아주는 좋은 지인들 덕에 꽤 좋은 조건에서 작업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덕분에 나를 재촉하지 않는 사람들과, 보다 풍족한 환경에서 생각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나를 재촉하고 쇠약하게 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다. 마침내 실행을 앞둔 시점인지라 여기에다가 어떤 내용의 작업인지를 상세하게 쓸 수는 없지만, 타인과 타인이 대면하고 나와 내면이 직면하는 경험을 준비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다. 내면에는 ..
점심에 라멘집을 찾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식당. 동료들과 잡담을 나누고 한술 뜨려는데 문득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왔다. Last Christmas, I gave you my heart-그건 올해 겨울의 첫 캐롤이었고, 돌아온 사무실에서 종일 ‘한국인이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캐롤 메들리’ 같은 것을 돌려 들었다. 이제 겨울이구나. 캐롤이 들려오면 진짜 겨울 같고 크리스마스 같다. 겨울이면 영화 이 빠짐없이 생각난다. 2016년에 개봉했으니 이제 네번째 해인가. 사진 작가 사울 레이터를 참조했다는 몽환적인 화면과 컬러감, 1950년대 뉴욕 사람들의 착장.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들뜬 시점에 케이트 블랜쳇과 루니 마라가 만나는 연기라니. 영화가 얼마나 흥행했는지는 모르지만 나처럼 겨울마다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은..
삵은 밟힌 꼬리의 책임을 묻는 일도 흉터를 가리려는 노력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자책은 오만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상황을 과대 혹은 과소로 보는,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한다는 면에서 자책과 오만은 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거라는 요지의 말이었는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끊임없이 자책과 오만을 오가던 내게 더더욱 그 말은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만의 뒤엔 늘 수치심이 뒤따랐다. 수치심은 곧 자책을 불러왔다. 상황을 제대로 봤다면 자책할 일도 오만할 일도 아닌 것을. 자책과 오만은 상황을 과대 혹은 과소로 보는 것 외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상황에 대한 책임을 과도하게 본인에게 돌리는 것이다. 그러다 상황이 나빠지면 자책을, 상황이 좋아지면 오만을 부리게 된다. 책임이란 무엇일까. 전부 내 ..
장마 비가 연일 지속되던 여름날에 블루베리 아저씨는 “파전 먹고 싶지 않냐?” 하셨다. 아무래도 본인이 먹고 싶은 눈치였다. 그가 틈틈이 가꾼 텃밭에서 부추를 베고, 옆집 호박을 서리해다가 부쳐 온 부침개는 따뜻해서, 함께 먹어서, 비가 와서 더 맛있었다. 그가 직접 만들었다는 간장 소스가 새콤달콤 짭조름한 게 얼마나 감칠맛이 나던지. 그 비결이 무언지 그는 끝내 알려주지 않았지만 사실 나도 별로 궁금하지가 않아 아쉽지가 않았다. 지난여름 내내 나는 그와 자주 마주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 개통된 IC 이야기, 시에서 주관하여 마을 안쪽에 분양되고 있는 큰 부지의 산업단지 이야기, 도로 확장 이야기, 상속 절차와 토지 가처분 이야기, 법무사와 개발업자에 대한 이야기, 마당 보수 이야기, 전기..
최근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로 노래 부르는 사람을 보고 살인자가 될 뻔 했다는 트윗을 읽고 크게 웃었다. 그러나 금세 길거리에서 노래 연습하는 수많은 남성들을 무사히 지나쳐보낸 내 모습이 떠올라,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위협을 가하는 제스처를 한번도 제대로 취해보지 못했지만(아닌가? 어쨌든...)) 대부분 그들은 노래를 잘 못 불러서 소리 발산 행위의 의도를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고통스럽고 동시에 위협적이다. 타인의 분노를 일으켜도 실제로 죽임을 당하거나 적어도 신체에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다는 확신이 부르는 노래는 구구절절 K발라드로 장르화되어 있어서 멜로디를 내뱉는 행위부터 가사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고 고통스럽다. 흥얼거림이나 포효하기로 차지하는 공적 공간의 점유는 길거리를 사적 공간..
언젠가부터 두 달에 한 번은 꼬박꼬박 만남이 성사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20대 초반에 시작한 인연을 지금껏 이어주는 고마운 친구이다. 같은 업계에 있지 않고 같은 고충을 공유하지 않으면서도 만나지 않으면 생각나고, 생각하다 보면 만나고 싶어지고, 만나고 싶으면 서로의 노력으로 만남을 성사할 수 있는 것 자체에서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그와의 관계 맺음에서, 언젠가 반드시 만나질 것이라는 확신과 안정감을 얻는다. 게다가 그는 바쁜 와중에도 짬을 내어 내가 쓰는 글을 기꺼이 읽고 진솔한 감상을 종종 전해 주기도 한다. 그런 연유로, 언젠가부터 나는 쓰기가 어려워지면 그를 문득 떠올리게 되었다. 물론 그를 만난다고 해서 무언가 명확한 답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답을 요구하기 위해 그를 만나려 하지..
잠을 자고 일어났는데 엉망이었다. 무언가가 매우 슬프고 화나는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서 당혹스러웠다. 나는 누구고 무엇을 하는 중이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서 어제를 살아낸 관성으로 시간을 버텼다. 사람들이 하는 말은 전부 나를 기분 나쁘게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고 귀찮은 일을 나에게 미루려는 것 같았다. 사람들의 뜻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평소 ‘정상적일 때’를 떠올려서 머리로 이해해야 했다. 납득은 잘 가지 않지만 내 기분대로 반응했다가는 큰 싸움이 일어날 거 같았다. 차라리 걸리는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속을 푸는 것이 좋은 방법일까 싶기도 했는데 나보다 약한 사람들에게 화가 더 잘 나는 것을 보고 그만 뒀다. 강한 사람들에게 화냈다가는 그저 나만 다치고 말 것이라는 걸 ‘본..
그는 정말로 잊었는가 며칠 전, 모임이 끝나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있던 한 사람이 한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힘겹게 얻어진 것인지 요즘 홍콩 시위를 보며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 자리엔 7,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여 고초를 겪었던 한 남성 대표도 함께 하고 있었는데, 그는 홍콩 시위에 대해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같은 시선으로 보는 것이 매우 조심스러운 문제라 답했다. 그리고 홍콩 시위에 미국 자본이 유입되고 있다는 루머를 덧붙이며 결을 같이 하여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학생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그가, 민주화에 목소리를 높이다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었던 그가, 어떻게 홍콩 시민들의 민주화 시위에 대해, 그들의 목소리를 진영 논리의 프레임에 가두는 말을 쉽게 말할 ..
또다시 다섯 개의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나날들을 그저 보냈습니다. 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일상에서 기록된 몇 가지의 문장을 쥔 채 다시 고민을 시작합니다. 고민이 되기 전의 문장들을 펼쳐놓습니다. 여기에 문장이 있습니다. 모쪼록, 나날을 보내는 만치 가볍게 읽어주세요. 읽고 잊어버려 주세요. 30만 원. 30만 원은 조금 묘한 액수다. 아주 값어치 있는 돈도, 아주 값어치 없는 돈도 아니다. 지금은 연이 끊긴 지인이 싸게 주겠다고 흥정했던 작은 스쿠터도 30만 원이었고, 누군가 돈을 빌려달라고 할 때도 자주 30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었고, 서울에 자리를 잡을 때 보고 다녔던 집세 싼 곳의 원룸들도 보통 보증금 500에 월세 30으로 가격이 책정되어 있었다. 스쿠터보다 택시를 ..
삵은 밟힌 꼬리를 바라보며 그곳을 지나가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했다. *주의* 아래 글에는 성폭행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해당 내용이 불편하신 분, 트리거가 될 수 있는 분들은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03년이었다. 여름 방학이었고, 나는 열네 살이었다. 당시에는 윈엠프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한 음악 방송이 한창 유행했다. 나도 방송을 해 보고 싶었다. 더럽게 재미없는 열네 살이 진행하는 방송의 청취자 수는 많아봤자 고작 4명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게 참 재밌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멘트를 하고 사람들이 내 방송을 들어준다는 게 좋았다. 청취자 중 몇은 나를 친구로 추가했다. 몇 안 되는 청취자 중 한 명이 내게 쪽지를 보내왔다. 당연하게도 반가웠다. 반갑게 청취자시냐고 응답..
산다는 게 참 별 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끼니를 제때 잘 챙겨 먹고, 잠을 제때 잘 자고, 화장실을 제때 잘 가기만 해도 심신이 평안하니 말이다. 그야말로 잘 먹고, 잘 자고, 잘 싼다는 것. 너무나도 간단하고 단순해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외로 지켜내기 어렵고, 또 보다 나은 의식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기본적인 생활양식을 잃고야 만다는 것이 나만의 경험은 아니리라. 여성, 청년, 파트타이머의 정체성으로 하루 일곱 시간 이곳에서 노동을 하며 그 어느 때보다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안간힘을 써도 이 기본을 지켜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침에 눈 떠 세수랑 양치만 간단히 하고 옷을 갈아입고 5분 정도 운전을 해서 출근하는데, 따뜻한 물 좀 마시고 간단히 요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