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 님께, 정수 님, 요즘 하늘 보고 계신가요? 밤에만 산책을 다니셔서 가을의 아름다운 하늘을 보지 못하셨을까 괜한 염려를 하고 있어요. 저는 며칠 전 2차 백신까지 모두 접종을 완료했어요. 왜인지 백신을 맞고 나니 더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솟구쳐서 하루에도 한강을 몇 번이나 걸었는지 몰라요. 어제는 자전거를 좀 탔는데, 나무그늘 아래를 지나가면 제법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서 귀가 시렸어요. 하지만 가을은 밤이든 낮이든 아름다운 계절이니 정수님의 요즘 밤 산책에는 또 다른 묘미가 있겠죠? 며칠 전에 오랜만에 이상한 꿈을 꿨어요. 꿈속 세상이란 게 늘 이상한 일투성이지만, 그날의 꿈은 좀 특별했어요.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해졌지만, 제 시선이 닿는 저 끝에서 끝까지 아주 거대한 수조가 저를 둘러싸고 있었..
소라 이불 김선주 이불이 파도처럼 소라를 덮쳤다 엎드린 소라 소라가 아이를 먹이고 재우는 동안 하루가 다 갔다 이불 밖으로 튀어나온 소라의 하얀 발가락 망가뜨리고 싶었다 대신 아이의 발가락을 입에 넣고 우물거렸다 소라의 이름은 엄마가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는 것, 엄마의 권한, 엄마들은 턱을 더 높이 들고 아이들의 원망을 들을 필요가 있었다 고개를 숙이면 아이들은 쉽게 죽었다 소라는 이미 이름 붙여진 날들을 너무 많이 통과해 온 기분이었다 그 이름을 찢고 자르고 박음질하여 전혀 다른 이름으로 탄생시켰다 이불이 이불을 낳고 소라와 닮은 소라를 기르고 이불과 소라를 덮고 자는 작은 이마, 아직 채 구겨지지 않은 점토 흔한 상처 하나 나지 않고 커지는 풍선처럼 아이는 조금씩 자랐고 다시 줄어들었다 소라는 또다시..
그러지 말자고 아무리 다짐해도 못 끊는 것이 있다면 ‘다른 집 식물 부러워하기’이다. 내 실내 정원의 식구들은 작다. 화분 두 개로 나눠 심은 싱고니움도 다른 집보다 유독 잎이 조그맣고, 커지면 토끼 귀 같은 잎을 내준다던 캄포스포토아넘도 어찌 된 영문인지 자랄수록 내놓는 새순이 작아졌다. 식물을 잘 키우는 사람들의 큼직하고 시원시원한 대품 식구들을 보며 ‘앞으론 그냥 처음부터 다 큰 애를 살까?’ 생각한 적도 있다. 하지만 내심 ‘그렇게 작았던 애가 이렇게 커졌어요!’라고 말하고 싶은 이상한 욕망도 있었다. 우리집 작은 식구들을 괜히 얄궂어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우리집에도 커다란 친구가 있었다는 걸! 그 친구의 이름은 여인초. 여인초의 키는 나보다 조금 작고 잎은 내 얼굴보다 크다. 여인초는 인외식구..
살면서 처음으로 숏컷을 한 건 약 10년 전, 대학교 2학년 신학기가 시작된 봄이었다. 줄곧 긴 머리와 단발 기장 사이에서 길렀다가 잘랐다가를 반복하며 딱히 숏컷에 대한 갈망은 없었는데, 스물한 살이 되면서 머리를 매우 짧게 자른 것이다.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지금이야 국가장학금 제도가 있어 학비를 면제 받거나 저금리로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가 있지만, 그때는 그런 제도가 없었고 집 경제사정이 좋지 않았기에 성적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을 계속 다닐 수가 있었다. 머리를 말리고 묶는 모든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기에 그 번거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 다행히 숏컷이 싫지 않고 공부가 괴롭지 않았다. 수도권 대학을 가려면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전공을 선택해야 했기 때문에 줄곧 희망하던..
어지러운 나의 방에 도착했다. 오늘은 꽤 고된 날이었다. 별다른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바람이 서늘해진 탓이라고 날씨 탓을 해본다. 보일러 기운이 들어오니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서늘한 바람에 얼어붙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다. 늘 그렇듯이 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네 옆에서는 늘 너와 하나가 되길 바랐는데. 네가 떠나고 나서 나는 느꼈다. 이제야 너와 내가 하나가 됐다는 것을. 내가 그토록 바라던 일이 너와의 물리적 분리로 이뤄져버렸다는 것을. 멈칫한다. 생각도, 글도. 자꾸만 의심이 든다. 물리적 분리라니. 너와 하나가 됐다니. 단어가 흩어진다. 멀리 날아간다. 다시 돌아온다. 흩어지고, 날아간다. 물리적으로 분리된 너의 마지막 말은 그거였지. 내 생각을 있는 그..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본 친구가 있다. 마지막으로 만났던 것이 작년 여름인지 재작년 여름인지 헷갈릴 정도로 시간이 많이 흐른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친구를 보았을 때 우리는 건대 앞, 도삭면이 유명하다는 집에서 밥을 먹었다. 딤섬 찌는 통에서 나온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이 왁자지껄한 식당이었다. 비가 오는데 좁은 처마 밑에 앉아 입장 순서를 기다리던 기억이 난다. 코로나 핑계를 대기는 했지만 약속을 매번 미루기만 한 것이 마음에 걸려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만나자고 날짜를 정했다. 우리 집 강아지가 보고싶다는 친구의 말에, 그럼 강아지를 데리고 한강으로 산책을 가자고 했다. 우리는 언젠가 함께 갔었던 서래마을의 버거집에서 음식을 포장했다. 한강 공원은 인산인해였다. 강아지를 태운 채 운전을 하고 꽉..
매년 새해가 되면 올해의 운세를 꼭 확인하는 편이다. 사주를 MBTI 급으로 신봉하는 것에 비해 돈을 쓰지는 않아서, 거의 3초에 한 번 광고가 뜨는 사주 어플을 애용한다. 어플에 따르면 올해는 경쟁의식이 매우 심해지는 시기라 하였다. 눈에 걸리는 문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슈가 많은 시기'라는 부분이었다. 친구나 일하는 곳의 상사, 동료와의 관계에서 울고 웃는 일이 많을 것이라고. 그땐 나쁜 말은 잊어야지 하고 넘어갔는데, 2021년도 10월까지 지나온 이 시점에 돌아보니 일종의 경고였던 것 같아 마음이 좀 쑤신다. 회사에서의 관계..뭐. 굳이 설명하는 게 클리셰지. 어른들은 본인이 꼰대임을 왜 인정하지 못할까. 그 것만 달라져도 회사의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질걸. 논리라는 명목으로 텍스트 한 줄까..
손보미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탈진실 시대의 진실연대자들 회원) 1. 디지털 최근 포스트휴먼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며 관련 논의들도 활발해졌다. 그중에서도 이 책, 『디지털 포스트휴먼의 조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디지털’이라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디지털’이 무엇일까? 단어 자체가 낯설지는 않다. 오히려 너무 익숙해서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다. 문제는 그에 반해 정작 단어의 의미는 잘 파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을 펼치기에 앞서 디지털이라는 말의 기본적인 개념부터 찾아봐야 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게 된 간단한 정의는 다음과 같다. “디지털이란 기술의 하나이며 정보의 형태를 지칭하는 말이다. 디지털 정보는 0과1로 구성된다.” 그렇다면 ‘디지털 정보’란 무엇일까 하는 ..
친구가 포인세티아를 한 포트 줄 수 있다고 해서 집에 놀러 갈 겸 약속을 잡았다. 새로운 식물을 얻으러 간다는 생각에 들떠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평소엔 문을 바로 열어주던 친구가 유독 뜸을 들였다. 조금 기다리자 문이 열렸고 생전 처음 듣는 발소리가 들렸다. 오도도도도. 그건 기니피그 오구가 운동하는 소리였다. 오구는 유기된 기니피그였고, 친구는 오구를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입양을 결심했다고 한다. 기니피그를 실제로 본 건 오구가 처음이었다. 상상하던 것보다 컸는데, 또 내 몸집에 비해서는 아찔할 정도로 작았다. 가방을 아무 데나 턱 내려놓는 순간, 근처에 있던 오구가 놀라 우다다 도망을 갔고 그때 나는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기니피그는 이름에 피그가 들어있는데 생물학적으로는 설치류고 얼굴만 보면 ..
나는 붉은 꽃을 주면 좋겠어.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설핏 고개를 들어 엄마를 바라봤을 때 보인 건 차곡차곡 쌓인 새하얀 국화였다. 붉은색이라곤 없는 이곳에서 엄마는 뭐가 그리 좋은지 환히 웃고 있었다. 엄마는 꽃을 좋아했다. 들여다 놓으면 죄다 시들게 만들어 문제였지, 이건 꽃이 예쁘고, 저건 잎이 독특하다며 틈이 나면 하나씩 가져왔다. 햇볕 좋고 경치 좋은 자리는 사막의 식물들이 차지했다. 선인장과 같은 식물은 강렬한 태양 빛을 받아야 한다며 한겨울에도 볕 좋은 베란다에 내다 둔 탓에 선인장은 얼어붙었다 녹기를 반복했다. 엄마는 그런 식이었다. 나도 식물이었다. 내가 가져본 식물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너야, 하고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그저 아끼는 자리를, 아..
그는 방금 집에 돌아왔다. 닫히는 문의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적막. 습관처럼 신발을 벗는다. 집에는 가구나 집기가 거의 없다. 전등을 켜지 않는다. 어둡다. 그러나 그는 어둠이 두렵지 않은지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표정이 궁금하다. 좀체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 방이 어둡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도 그의 표정은 좀처럼 선명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넌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같아.” 그녀는 그를 여러 이름으로 정의했다. 경계선이 흐릿한 사람, 순수가 가려진 사람, 회색 인간,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다른 정의들로. 그는 누군가로부터 정의 내려지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무도 그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도 그에게 그만한 관심조차 없었다..
자조모임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색색의 팔찌다. 각 색깔은 고인과 사별자의 관계를 상징한다. 고인이 자신의 형제자매라면 주황색을, 애인이나 파트너라면 빨간색을, 친구라면 보라색을, 부모라면 흰 색을 착용한다. 이렇게 팔찌를 착용하는 이유는 고인과 어떤 관계에 있었는지가 애도의 모습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모든 죽음은 관계 속에서 일어나고, 살아있을 때나 죽었을 때나 그 관계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것이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숙제다. 그런데 이 팔찌 색깔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간에 긴장을 만들어낼 때가 있다. 나도 2년 넘게 매달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특히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이러한 갈등은 말하는 사람의 문제라기보다..
병원에서 오래 엄마를 간병하면서 알게 된 건, 병원에 있는 건 생각 이상으로 많은, 대부분의 시간을 기다린다는 데 쓴다는 것이었고, 이 기약 없는 기다림의 시간 동안 괴팍해지지 않기 위해서는 꽤 노력이 필요하단 거였다. 장기 입원 환자들이 시시때때로 간호사를 호출해서 발이 시리다, 약이 제대로 투여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 등등의 말도 안 되는 불평을 하는 것도 모두 시간을 보내는 방법들 중 하나였다. 이다도 이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 수 있을지, 별의별 방법을 써봤다고 했다. 입원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땐 검정고시 공부를 했고, 겨울에 두를 목도리를 짜기도 했고, 유투브로 베이킹 기초 영상을 모조리 찾아보기도 했단다. 하지만 점점 뭔가 하는 걸 멈췄다. 이유는 간단했다. 검정고시를 보기 위..
어린 나에게 ‘돼지’는 가장 화가 나는 욕이었다. 스스로 뚱뚱하다고 여겼다. 확실히 마른 몸은 아니었다. 조금만 더 많이 먹으면 금방 비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주변인들에게 돼지 소리를 들을 것 같았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돼지 호칭을 경멸하면서도 삼겹살 냄새를 맡으면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왔다. 동생이 고기를 워낙 좋아해서 고깃집에 자주 갔다. 외식을 하면 집에서 먹는 것보다 많이 먹게 되었고, 고깃집에서 집으로 돌아와 누우면 뱃살이 평소보다 더 나와 있었고 그런 나의 몸이 징그러워 보였다. 그런 날들로부터 십여 년이 지났고 난 돼지는 물론 모든 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다. 처음 비건 선언을 했을 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그런다고 살 안 빠진다..
너에게 편지를 써. 이제는 닿을 수 없는 너에게. 네게 편지를 쓸 때마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는 기억들을 마구 꺼내어서 내 작은 방에 무지막지하게 쏟아 놓는 기분이야. 그렇게 쏟아 놓다 보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도 떠오르곤 해. 그 만남이 무척이나 반가워서 이렇게 자꾸 네게 편지를 써. 나중에 정리하는 게 아무리 고된 일일지라도 말이야. 오늘은 사실 몸이 무척 아팠어. 아프다 보니 차갑던 네 방이 떠오르지 뭐야. 오랜만에 찾은 네 방은 벽이 깨끗했어. 우리가 함께할 때는 낙서와 담뱃진으로 벽이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아마 도배를 새로 한 모양이더라고. 함께한 시간이 기록된 벽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기가 힘들었던 거니? 새로운 마음으로 네 삶을 꾸려가고 싶었던 거니? 어떤 이유든 ..
“사람들이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가다가 묘지라는 전차로 갈아타서 여섯 블록이 지난 다음, 극락이라는 곳에서 내리라고 하더군요.” “여기가 거기예요.” “극락이라고요?” “여기가 바로 극락이에요.” “그 사람들이, 내가 찾는 주소를 잘못 안 게 분명해요…….” 시적인 제목의 는 실제 작품의 배경이 되는 뉴올리언스에서 운행되던 열차라고 한다. 이 작품은 급변하는 사회에 적응하는 인간과 변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방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부유한 집안에서 나고 자란 블랑시는 가문의 몰락과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으로 삶이 망가져 버렸다. 방황하던 블랑시는 여동생 스텔라가 사는 ‘극락’이라는 곳으로 떠난다. 그러나 그곳이 결코 극락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은 열차에서 내린 순간 알 수 있..
행복한 사람의 도시 자신의 도시에서, 자기 공간의 주인으로서, 즐겁고 금빛인 인생의 아침부터 꼭 같은 장소에 계절이 돌아오는 풍경을 음미하고 차분한 오후가 따라오는 낮 시간을 만나는 행복한 사람 아름다운 비둘기처럼 변함없고 꾸밈없는 달과 해는 그의 저택으로 향하고, 싹을 틔우는 장미나무와 같이, 행복한 사람의 삶은 매시간 빛에서 꽃피운다. 그는 나아가지, 운명의 그루터기에 새싹을 돋게 하고, 들쑥날쑥한 나뭇가지와 먼저 난 나뭇가지를 섞으면서, 그의 정연한 마음은 꼭 그의 정원처럼 오래되어 잎이 없는 나무껍질 위에도 새로운 꽃들이 가득하지. 행복한 사람은 그림자와 사랑, 노을에 타는 듯한 풍요의 언덕들을 만끽할 줄 아는 사람, 그리고 이어지는 무수한 날들 속에서, 도시를 흐르는 강가에서 꿈을 향한 목마름을..
2015. 02. 15 영혼을 갈아 넣는 느낌이다. 아니, 갈아 넣는다기보다는 영혼의 외피를 전부 벗겨서 말랑하고 여리고 투명한 영혼의 속살을 안이 뾰족한 상자 속에 구겨 넣는 느낌이다. 내 영혼이 치명상을 입지는 않겠지만 계속 거슬리게 아픈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아무리 생채기가 나도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나를 그 작고 차가운 상자 속에 밀어 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기는, 대가 때문이지. 내 영혼을 밀어 넣는 대가. 그것은 안정감이다. 밥을 먹고 숨을 쉬고 어딘가를 나다닐 수 있게끔 하는 동아줄. 돈이다. 안정적으로 지급되는 돈.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그 안정감을 주는 동아줄이 고작 115만원이기 때문이다. 내 영혼의 대가가 고작 115만원이라니. 물질에 매몰된 삶, 안정에 ..
돌이켜보면 나는 한 번도 혼자 살아본 적 없다. 독립과 홀로서기에 대한 열망은 매우 컸지만, 청소년 시절엔 부모님과 살았고 스무 살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러다 대학을 졸업하고 또 부모님과 살다가 지방을 떠나 서울로 와서는 친구들과 살았다. 그러다가 결혼해서 지금은 배우자와 산다. 별일이 없는 이상 나는 이대로 평생 2인 가구로 살 것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공유 공간이 사유 공간보다 넓다는 이야기이다. 공유 공간과 분리된 사유 공간은 어쩔 수 없이 좁았고 그곳에서 효율적으로 휴식을 취할 방법을 찾아내야했다. 내가 선택한 건 유튜브 시청이었다. 그렇게 스무 살부터 틈만 나면 유튜브를 들여다봤다. 유튜브를 보다 보니, 유튜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대학을 다..
『키오스크』의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가판대)를 지키는 사람이다. 한 평 남짓한 공간에서 올가의 하루가 열리고 닫힌다. 그림책의 문장처럼 “키오스크는 올가의 인생이나 다름없”지만 키오스크의 좁디좁은 공간과 각진 테두리는 올가의 세상이 아니라 올가가 세상과 만나도록 하는 몸 혹은 피부에 더 가깝다. 키오스크를 통해 올가는 세상과 이어지고, 그러면서 올가는 매일매일 환해지니까. 미소 가득한 얼굴로 단골손님을 맞는 올가는 그들이 무엇을 살지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또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을 찾는 것인지를 거의 알고 있어서, 그 마음과 필요에 걸맞은 물건을 정확하게 건넨다. “연애에 늘 실패하는 숙녀는 여성 잡지에서 도움말을 찾아요.” “머리를 올려 묶은 아주머니는 낚시랑 고양이랑 정치에 관심이 많아요.” “..